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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DSLR' 든 나라! 이제 공부 좀 할까?

[글로 사진을 읽다] 한국의 거장 사진가 강운구, 육명심, 최민식

다양한 예술적 행위가 존재하지만 요즘 대세는 역시 사진이다. 프로나 엘리트적 관점도 아니고 장르의 파괴력도 아니라면 누구나 즐기는 미적 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만 렌즈 교환형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1000만대에 육박한다. 별다른 수고 없이 쉽게 찍을 수 있는 '똑딱이형' 카메라는 그보다 많을 것이고, 핸드폰에 탑재되어 있는 '폰카'까지 이야기한다면 전 국민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헝가리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인 나즐로 모홀리 나기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재임하면서 유명한 말을 한다. "미래의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80년 전 이야기인데 오늘에 비추어 반쯤은 맞았고 반쯤은 틀린 것 같다.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글 쓰는 것보다 자주 하고 있지만, 타인의 사진 이미지를 읽어 내는 데는 여전히 서툴러 보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사진은 소수의 사람들이 찍어 대수의 사람들이 소비하는 형태였다. 즉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들은 포토 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몫이었고 수많은 광고판과 전단지는 상업 사진가들의 바닥이었다. 소수의 사진가들이 생산한 사진이 대중매체라는 형식에 실려 유통된 것이다. 일부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주로 살롱풍의 전시장을 선호했기에 대중들이 그들의 작품을 접하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일거에 바뀌어 혁명적인 시대로 돌입한다. 필름과 인화 스캔 과정이 생략된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성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인터넷망을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삼아 폭발적으로 사진을 생산했다. 플리커(www.flickr.com)와 같은 사진 이미지 포털이 나타났고 구글 이미지로 전 세계의 사진이 검색된다. 각국의 포털 사이트들은 앞 다투어 사진 이미지를 올리고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이트를 선보였다. 개인들은 블로그를 만들고 모여서 카페를 형성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그런 사진들을 공유할 수 있는 다시 또 새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소수가 생산하고 다자가 소비하는 행태에서 다자가 생산하고 다자가 소비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필터 한 개 값도 아까운 사진집 시장

▲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최민식 지음, 로도스 펴냄). ⓒ로도스
하지만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진 인구에 비해 사진의 담론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으로 출판 시장에서 팔리는 사진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이 카메라를 작동하고 사진의 형식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한 기술을 팔고 있다. 취미로 따진다면 등산보다 못하고 낚시만도 못한 듯 보인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이 다른 예술, 예를 들면 미술이나 음악의 장르와 조금 다른 사진만의 독특한 창작 과정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원시적인 도구로 다년간의 훈련이 필요한 장르들에 비해, 최첨단의 기계 공학적인 산물인 카메라가 있어야만 사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카메라를 사면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사실이 그렇다. 평생 피아노를 배운 일 없는 사람에게 바로 연주해보라며 피아노 앞에 앉힌다면 참으로 낭패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카메라는 누구에게나 쥐어주면 바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좋고 나쁘고는 다음 문제다.

따라서 사진은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특별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게다가 장비가 좋아지면 더욱 좋은 사진을 얻게 될 것이라는 물신주의는 더욱 좋은 카메라에 투자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카메라가 전 지구적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렌즈를 보호하는 소비품인 필터의 경우 개당 5만 원 정도에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5만 원짜리 사진가의 작품집이 팔리지 않는 현상은 매우 독특한 사진계의 풍토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
이왕 책 이야기를 꺼냈고, 이 자리가 서평 섹션이므로 좀 더 책에 집중을 해보자. 사진은 현재까지 그 이미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미디어를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은염 프린트(최근에는 잉크젯 프린트)에서 종이 인쇄를 통한 대중 출판, 각종 모니터를 통한 디스플레이까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질감과 선명도를 두루 겸비한 것이 책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사진집은 과거부터 무척이나 소중하게 대접받아 왔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진집은 좋은 종이에 숙련된 인쇄공이 작업하여 수작업의 제본과 양장을 갖춘 형태로 출간되었고, 책 중에서 고가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진집은 이제 내리막길이다. 첫째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궁금한 작가의 사진 이미지를 거의 공짜에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자가 거의 없이 사진 이미지로 채워진 책의 해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쉽게 이해되지만 후자는 의아할 것이다.

▲ 최민식 작가의 <부산, 1975 >. ⓒ사진 제공 로도스

사진가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의 이야기처럼 현대는 이미지로 채워지고 그것을 해독하는 능력이 필수로 요구되지만, 사실 이 해독에 필요한 교육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저 사진 이미지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 안에 작가가 숨겨놓은 중의적인 텍스트들은 간과되며, 즉각적인 아름다운 이미지들만 빠른 시간에 보고 지나간다. 대형 서점 사진집 코너의 책들은 헤질 정도로 손을 타지만 정작 팔리는 것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 20년째 사진집을 만들어 오고 있는 눈빛 출판사의 이규상 사장도 "1000권 만들면 한 5년 팔아야 하죠"라고 한다. 그나마도 다 팔리면 좋겠지만 작가가 자기 책을 사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작가들과 출판인들이 생각해낸 장르가 '포토 에세이'이다. 친절하게 사진과 글을 반반 섞어서 독자들에게 내보이는 것이다. 이 장르에서는 베스트셀러도 여럿이 나올 정도로 출판계에서 원고를 기다리는 종목이 되었으니 사진집과는 그 대접이 다르다. 그런데 정작 사진계에는 그렇게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들이 희귀하다. 그렇다 보니 주객전도로 글을 잘 쓰는 이들이 사진을 배워 포토 에세이집을 내고 있다. 문학계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은 이제 너무 많고, 손호철, 조돈문 교수처럼 인문사회계 학자들도 사진을 찍는다. 그 범위는 계속 확장되어 박찬욱 감독처럼 문화예술계에서 자신의 주전공을 보조하는 매체로 사진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글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정작 사진계에는 '작가는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글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정말 글이 사진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계에서 글을 쓰는 것은 오직 평론가들만의 특권처럼 되어버렸다. 필자는 사회생활 첫걸음을 볼펜 기자로 떼었기에 지금도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글 쓰는 시간이 더 많은 특별한 작가로 취급받지만, 가끔은 "당신은 사진보다 글이 좋다"라는 꽤나 모욕적인(!) 인사를 받기도 한다. 나 역시 마음 한켠에는 '사진가는 역시 사진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수십 년 동안 스태프 사진가로 활동하며 전 세계를 기록한 윌리엄 앨버트 앨러드는 "언어와 사진은 그 둘 중 한 가지로만 소통할 때보다 함께 소통할 때 훨씬 파워풀해 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 사진가의 철학과 사상, 사진관을 엿볼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해 볼까 한다. 출간 순으로 적어보면 <강운구 사진론>(강운구 지음, 열화당 펴냄, 2010), <陸明心 이것이 사진이다>(육명심 지음, 글씨미디어 펴냄, 2012),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최민식 지음, 로도스 펴냄, 2012)이다.

노(老) 작가들은 모두 브레송의 후예?

▲ <陸明心 이것은 사진이다>(육명심 지음, 글씨미디어 펴냄). ⓒ글씨미디어
이 책들의 필자는 모두 나이 70을 넘긴 노 사진가들이다. 작가들마다 뒤에 붙이는 호칭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다. 최민식은 1928년생으로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하면서 평생을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출신은 황해도다.

육명심은 1933년생으로 연세대 영문과를 나온 후 독학으로 사진을 해 신구대학교 사진과와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를 창설하기도 한 이론가이자 교육자 사진가이다. 대전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했다.

강운구는 1941년생으로 경북대 영문과를 나와 독학으로 사진을 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진부를 거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해직 기자가 되어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했다.

이 세 사람은 공간적으로 다른 곳에서, 60년대라는 같은 시간 속에 리얼리즘 사진을 기반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공간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비단 출신 지역만이 아니다. 최민식의 경우 부산 자갈치가 그의 작업 공간이었고 사진이 발표되는 공간은 세계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사진 콘테스트였다.

"사진은 민중으로부터 이해되고 사랑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민중으로부터 건강한 생명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 27쪽)

그에 비해 육명심은 평생 고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까지 강단이 주 거주 공간이었다. 가르치고 글을 쓰며 가끔 짬을 내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는 편이다. 한 발짝 물러나서 대상을 일단 떼어놓고 건너다본다. 즉 전체를 통해서 한 부분으로 대상을 파악한다." (<陸明心 이것이 사진이다>, 32쪽) 그에게 사진을 작업하는 공간은 특정의 공간이 아니다.

▲ 육명심 작가의 <1968년 서울>. ⓒ사진 제공 글씨미디어

이에 비해 강운구는 처음부터 프로의 공간에 있었다. 서울에 올라 온 것도 신문사에 취직을 했기 때문이었고 좀 더 깊은 사진을 찾아 간 곳도 신문사 출판국이었다. "우리나라 포토 저널리즘은 제 궤도에 들어서질 못했다. 그래서 1977년 현재까지 단 한명의 순수한 프리랜서 사진가도 탄생시키지 못했다."(<강운구 사진론>, 71쪽) 하지만 스스로가 그 한 명이 되었다.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고되는 바람에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이들은 사진 콘테스트에 꾸준히 지원하면서 성장을 했거나, 사진사를 통해 새로운 사진 언어에 눈을 떴거나, 고단한 현실의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모두 사진적 변형이 없는 스트레이트 사진에 기반을 두고 리얼리즘을 구현했다. 당시로서는 사진에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특정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문사에 있으면 '보도 사진'이었고 밖에 있으면 '살롱 사진'이었다.

60년대 리얼리즘 사진을 개척한 임응식은 1966년 <사단 40년사>에서 "종래의 회화 종속적인 살롱 사진을 적극 배격하고 육이오 사변에서 받은 가지가지 충동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이나 현실 소외 모순과 부조리를 적발하고 비판하여 현실 수정을 꾀하며 새로운 현실 발견"을 사실상 리얼리즘 사진으로 규정했다.

세 사진가 모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대 사진의 세례를 받고 사진을 시작했으며 사진을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최근 들어 쓴 책을 통해 사진에서 유의미한 몇 가지를 추출하기로 했다. 사진은 예술인가? 99퍼센트가 상업 사진이거나 기념사진 같은 기록 사진인데, 사진을 꼭 예술로만 취급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또는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는 이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존경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그는 평생 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발표한 글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대표작 <결정적 순간>의 서문은 그래서 매우 귀중한 텍스트로 취급된다. (☞서문 전체 보기)

우리는 서문을 통해 카르티에 브레송이 꽤 사진의 여러 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과 형식 뿐 아니라 유통 면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그의 핵심인 '결정적 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간에 어떤 사실의 의미작용과 형태의 엄격한 조화를 동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떤 사실 또는 사물의 의미가 주변 환경의 선이나 면, 그리고 빛과 자동적으로 어울리는 순간이 있으며, 바로 그런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런 결정적 순간을 대기하고 있다가 한 장 찍는 것이 아니라, 한 피사체를 결정하면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수많은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사진 중 한 장을 고른 것이다. 이는 그의 밀착 인화지가 증명을 한다.

▲ <강운구 사진론>(강운구 지음, 열화당 펴냄). ⓒ열화당
이에 대해 가장 공명한 이는 강운구다. 그는 "이 땅에서는 '회화로서의 사진'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사진으로, 새로운 사진으로 폭넓게 퍼졌다. 그것은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아무리 카메라로 찍고 인화지 위에 그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하더라도 그것의 정체가 수상하다면, 밥그릇에 담겼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밥은 아닌 것처럼, 본디 사진이라고 할 수 없다"고 그 의미를 갈파한다.

육명심은 6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반동으로 모홀리 나기의 '사진적 시각'에 천착했지만 "어느 날 브레송 사진의 참맛을 알게 됐다.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담담하나 오묘하고 깊은 맛이 있다. 그것은 여느 인공 음료수하고는 비길 수 없는 깊은 물맛"이었다고 했다.

이에 비해 최민식은 바로 찔러 들어간다. "우리의 카메라 워크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나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분노를 담은 사회 고발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텍스트를 서로 다르게 읽고 실천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진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시각에는 예외가 없다. 그것은 이들이 독학을 통해 얻어낸 확신처럼 생각되어지는데, 여타의 사진 장르와는 다르게 상업적인 주문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찍히는 순간 예술적이라거나 예술품이 된다는 이야기는 사진의 무한 복제성이나 기록성에 비추어 속성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시간의 속성으로 사진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후에 사진 아우라가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그들의 사진은 찍힌 당대보다는 지금 더 예술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강운구의 이야기가 사진과 예술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글이나 그림이나 소리라고 해서 다 예술이 아니듯이,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진이 다 예술인 것은 아니다. 사진의 두 가지 경향 중에서 사실적인 쪽은 예술이냐 아니냐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사진은 사진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 또는 낭만적인 쪽은 예술에 집착을 많이 한다."

그는 사진 예술에 있어서 최민식이나 육명심과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는 "사진의 본령은 사실적 기록에 있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사진의 쓰임새도 다르다.

▲ 강운구 작가의 <수분리, 장수면, 장수군, 전라북도. 1973> ⓒ사진 제공 열화당

강운구는 "중요한 깨달음은 사진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진 밖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점"이라 했다. 최민식은 "사진은 사진에 대한 지식이나 기법 뿐 아니라 위대한 사상의 체득이 중요하다. 이것이 사진을 하는 진정한 목적이다"고 한다. 육명심은 더 나아가 "명상에 잠기다 보면 '지혜의 문'이 열리듯 나 자신이 열리고 인간 존재를 넘은 세계가 보인다. 무당의 신기처럼 '임계의식'을 경험하기도 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스님'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까지 한다. 결국 사진이라는 미디어는 이 노 사진가들에게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목적은 나와 사회를 이어주고 소통시키는 도구였던 것이다.

한국 사진 50년의 영욕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노 사진가들의 저작을 당돌하게 평가해 보자. 우선 가장 근래에 나온 최민식의 <사진의 사상과 작가정신>은 읽기 쉬운 글과 작기 자신의 대표작들이 함께 편집되어 사진 입문자들에게 적당할 듯하다. 하지만 사진, 예술, 작가정신, 리얼리즘, 휴머니즘 등 한정된 소재의 글이 중복 나열되면서 책의 밀도가 무척 떨어진다. 과감하게 처내고 반쯤으로 줄여 들고 다니기 좋은 책으로 만들었으면 어떠했을까 한다.

육명심의 <陸明心 이것은 사진이다> 역시 사진 이론을 가르쳤던 노 교수의 언어답지 않게 무척 쉬운 글쓰기가 장점이다. 또한 그가 최근 5년간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사진집(<영상사진>(글씨미디어 펴냄), <예술가의 초상>(한미사진미술관 펴냄), <백민>(한미사진미술관 펴냄), <검은 모살뜸>(눈빛 펴냄), <장승>(뿔 펴냄))의 엑기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쩌면 이 책은 그간의 사진집에 실지지 않았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보너스인 동시에 더 궁금하면 사진집을 사라는 유혹으로 보이기도 한다. 즉 사진집으로 가기 위한 '맛보기'인 셈이다.

강운구의 <강운구 사진론>은 작가가 청년 시절이었던 197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 45편과 3편의 대담을 엮은 것이다. <샘이 깊은 물> 시절부터 작가의 미문은 정평이 나 있었고 이번 책 역시 글의 맛을 느끼기 충분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사진 없는 사진론인 셈이다. 그래서 사진판 10년 이상의 내공이 없다면 작가가 이야기하는 글 속 사진을 연상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의도된 불친절이다. 이 책들은 장점과 단점 모두를 갖고 있는 동시에 작가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60년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사진을 시작했던 70대의 노 작가들은 이제 십여 명이 채 안 된다. 그들은 나름의 사진 세계를 구축했고 그에 걸맞은 작가 정신을 닦아왔다. 사진이라는 시각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모호하지 않은 글 언어로 스스로의 세계를 정리한 이 책들에는 그간의 성과와 실패가 모두 담겨있기에 오늘 사진을 찍는 당신의 반면교사다. 만일 당신의 손에 지금 카메라가 들려있다면 당장 이들의 책을 읽어 볼 일이다.

"내용 없는 화면에서 기술만 빛나는 사진을 볼 때 나는 허탈감을 느낀다. 표현 기술은 결국 한 작가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데 소용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작가 정신은 기술과 관계될 때보다는 주제와 관계될 때 빛이 더 나게 된다. 작가는 즉각적이고 직선적인 포착 방식, 즉 스트레이트에 의한 접근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주제와 정면 대결할 수 있다." (<강운구 사진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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