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고향처럼 느껴지는...외할머니 품속 같은 곳.
바로 전주입니다.
전주를 배우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문화공동체인 전주학교가 9월 강의를 준비합니다.
지난 6월 개교한 전주학교는 전주 한옥에서 1박 하면서 전주 한옥과 음식, 전주 소리와 한지 등 격조있는 공연과 명강, 체험을 통해 우리 전통의 깊은 맛과 멋을 체득하는 <움직이는 학교>입니다.
교장선생님엔 전주 출신의 이두엽 교수(군산대 겸임교수). KBS-TV 프로듀서를 거쳐 예원예술대 문화영상창업대학원장과 새전북신문 사장을 지낸, 이름난 문화기획자입니다.
▲ 그림을 클릭하면 슬라이드 쇼를 볼 수 있습니다. |
이두엽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주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향 같은,
'고향지수'가 아주 높은 곳이지요.
나지막한 한옥 담장 햇살 가득한 골목길에서
오래전 잃은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전주 막걸리를 마시면 네 번 취한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흥(興)에 취하고,
두번째는 안주에 취하고,
세번째는 맛에 취하고,
네번째는 정(情)에 취한다는 뜻입니다.
막걸리뿐 아니라,
전주에 오시면 네 가지 취할 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운 한옥 골목길이요,
둘째, '간장(肝腸)의 썩은 눈물'을 토해낼 만큼 애절하고
'금새 숨이 탁 막히게 벌어지는 사랑놀이'처럼 흥미진진한,
옹골차고 푸진 우리 소리요,
셋째, 심성 고운 여인네들의 섬세한 손맛이요,
넷째, 천지만물에 깃든 한울을 공경하고 모시는
'전라도의 속깊은 마음'입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주를 '꽃심의 땅'으로 불렀습니다.
꽃의 심(心),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운을 다해 '꼿꼿이' 버텨온 땅이 전주입니다.
동학혁명의 중심지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자유와 평등의 '꽃'이 한때 피었던 곳입니다.
전주는 또한 전통문화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을
꿈꾸는 도시입니다.
전통문화는 우리들 삶을 든든하게 하는
'뿌리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전통문화는 또한, 우리들 마음을 너그럽게 적시는
'샘이 깊은 물'과도 같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삶의 근본이 되는
전통문화를 잊고 살았습니다만,
힘겹게나마 이를
껴안고 지켜온 도시가,
바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천년의 도시 '전주'입니다.
전주는 바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해야 할,
'오래된 미래'입니다.
전주는 전라도의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전통문화도시의 '보통명사'입니다.
전주에서
우리 문화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우리 한옥,
우리 한지,
우리 소리,
우리 음식,
우리 사상(思想)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위하여,
전주학교를 엽니다.
마음 편히,
외할머니 품과도 같은,
전주로 오십시오.
전주는 비록,
많은 것이 '부족한' 지방도시이지만,
정성을 다하여 여러분을 맞겠습니다.
전주학교의 9월 강의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 ⓒ프레시안 |
9월 12일 토요일 아침 8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합니다(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 아침식사 거르신 분들을 위해서 김밥이 한 줄씩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주까지 가시는 동안 이두엽 교장선생님이 '전주, 재미있는 이야기 여러 편'을 서툰 유머를 섞어가면서 진행합니다. 일종의 전주 입문(入門) 과정인 셈이지요. 추사 김정희 선생과 창암 이삼만 선생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소박하고 편안한, '전주적인' 미의식에 대해서도 말씀드립니다.
여산휴게소에서 전주학교를 맞아주실 우석대 조법종 교수(한국사)는 고구려사 전공이지만 전통문화, 사상사, 인문지리에 두루 밝은 학자입니다. 조 교수의 해박한 전주 이야기를 들으며 곧 전주에 이르면 톨게이트의 한글현판 <전주>를 만납니다. 원광대 여태명 교수 작품으로 우리 미학(美學)의 핵심인 '기운생동'이 느껴지는, 초탈한 듯 거침없고 힘이 느껴지는 글씨입니다.
첫번째 방문지인 전주향교는 조선유학의 손꼽는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였기 때문입니다. 500년 넘은 은행나무와 대성전, 통이 큰 건물 명륜당이 빚어내는 '아우라'는 '천년 전주'로의 시간여행의 문(門)을 열어 줍니다. 향교 쪽에서 동고산성과 남고산성을 바라보면서 후백제 견훤왕에 얽힌 비화를 들어 봅니다.
12시경에 오목대에 도착하면 비빔밥 전문점 고궁(古宮) 주방장님과 안주인 강미희 여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목대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개선하던 이성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주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인 곳입니다.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오목대 정자에서 수십 명이 함께 대형 비빔밥을 비벼서, 한 그릇씩 즐겁게 나눠먹습니다. 비빔밥은 화합과 상생(相生)의 철학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세계인의 음식이 될 것입니다.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오종수 선생이 사설시조창 <완산10경>을 공연하십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전주 미인(美人) 이은자 여사의 우시조 <나비야 청산가자>도 우리 옛 가락의 힘과 아름다움에 젖게 해드릴 겁니다.
▲ 전주 한옥마을 약도(그림을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전주시 |
나무 계단을 내려 오면서 한옥마을을 바라봅니다.
7백여 채의 '도시형 한옥'이 밀집하게 된 배경에는 전주사람들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서문 부근에 자리잡고 상권을 장악해가자, 이에 대한 반발로, 전주의 중산층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집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전주사람들의 기질을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말합니다. 너그럽게 융합할 줄 알지만, 자신의 근본을 잃지 않는, '꼿꼿함' 같은 게 있습니다. 선조 재위 당시 정여립의 기축옥사 때 천명이 넘는 호남의 선비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한마디로 씨를 말려버린 것이지요. 동학 때는 전북에서만 20만이 넘게 희생되었습니다. 화이부동의 기질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이기도 합니다.
천년을 가는 세계적인 '명품' 전주한지는 그 동안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고, 전주 합죽선과 전통가구, 전통악기, 옻칠공예 등도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자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검박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儉而不陋 華而不侈)' 전주의 미학은, 전통문화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전주 한지는 임실 등지의 질좋은 닥나무와 전주의 좋은 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완판본'의 고장인 전주는 출판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전주는 완산(完山)이니 완판본은 곧 전주판본이지요. 한지가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지역이었기에, 서민들이 완판본 <춘향전>이나 <심청전>을 사서 읽을 수 있었겠지요.
이어, 우석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한방문화센터에서는 각 개인의 체질감별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양인인지 소음인인지 컴퓨터프로그램을 통해서 알아보시고, 온몸이 개운해지는 족욕도 즐기시기 바랍니다.
전주는 대구와 더불어 약령시가 있었던 한의학의 본향입니다. 이 지역에는 한의대와 대체의학대학이 여럿 있어서 전주의 식품산업과 농업, 그리고 한방산업이 만나는 '불로초(不老草)산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옥마을 골목을 걸어 가까이 만나는 최명희문학관은 소설가인 김병룡 교수와 작가 최기우씨가 지키고 있습니다. 한옥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고(故) 최명희(1947~1998)선생은 '생(生)을 다해' 대하소설 <혼불>을 썼습니다. <혼불>은 우리 민족어와 전라도 민중의 삶이 담겨진 거대한 '공동체문화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경기전(慶基殿).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입니다. 경기전은 그 탯자리입니다. 조선조 서거정은 <공북루기(拱北樓記)>에서 '아조선근본지지(我朝鮮根本之地)'로 불러 전주를 '상서로운 곳'으로 높였습니다. 경기전에는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지켜낸 전주사고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경기전의 대나무 숲과 등 굽은 매화나무, 그리고 능소화는 전주시민의 마음을 여유롭게 합니다.
경기전 정문 앞에 자리 잡은 전동성당은 빼어난 건축미로도 유명하지만 비잔틴풍의 건축양식이 유입된 대표적 건물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입니다. 전동성당은 유철종 전북대 명예교수(정치학)께서 맡아주십니다. 정년퇴임을 하신 후 '신앙문화해설사'로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시는 유 교수께서는 60여 년 전인 유치원 때부터 이 성당을 다니셨습니다.
천년고도 전주에는 4대문이 있었습니다.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3대문이 동시 철거되고 현재 유일하게 풍남문만 남아있습니다. 풍남문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목이 효수되었던 곳이며,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에 입성한 관문이기도 합니다.
천년의 역사를 지켜본 풍남문 건너에는 전주 남부시장이 있습니다. 1905년 설치된 남부시장은 호남의 물산이 집결되는 경제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원래 지방에 가면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법입니다. 백화점이나 24시 편의점과 달리, 덤도 있고 에누리도 있고 사람 사는 정(情)도 있는 것이 재래시장이니까요.
다시 한옥마을 쪽으로 들어오시면 이곳저곳 자유롭게 골목길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옥생활 체험관이나 동락원 같은, 마당이 있는 한옥민박집도 둘러보시고, 한지체험을 할 수 있는 이지원(以紙園)이나 전통술박물관도 지척에 있습니다.
자유 시간을 즐기신 다음, 저녁식사는 6시 30분 양반가에서 합니다. 원래 전주음식은 궁중음식과 연관이 깊어서, 남도음식에 비해 맵거나 짜지 않고 어느 면에서는 담백합니다.양반가의 한정식에는 전주음식의 좋은 '고집'이 있습니다. 특히, 꽃게장은 그 웅숭깊은 맛이 오래 오래 입 안을 감도는 '기분좋은 맛'입니다.
전통술박물관에서 보내온, 때를 잘 맞춰 거른 우리 술도 맛보시기 바랍니다. 전주 음식과 전주 술에 대해서는 사단법인 전통문화 사랑모임의 이동엽 이사장께서 이야기해 주십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대금연주들을 들으시면서 우리 음악, 우리 소리가 얼마나 사무치는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판소리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크고 울림이 깊은 소리입니다. 판소리 <호남가>나 <쑥대머리>, <사랑가>도 기막히지만 가야금과 대금소리로 귀를 씻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음악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사단법인 '천년전주사랑모임'(이사장 김명곤 前 문화부장관)의 이종민 상임이사(전북대 영문과 교수)는 전주가 전통문화도시로 발돋움해온 과정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을 차근차근 짚어 주실 것입니다.
밤이 깊어지면 숙소인 양사재로 이동합니다. 한옥 6칸의 양사재는 원래 전주향교의 기숙사이지요. 난초와 시와 술을 사랑하셨던 시조시인 고(故) 가람 이병기 선생이 머무셨던 곳입니다(숙소 사정에 따라 학인당이나 한옥 민박집 동락원도 함께 활용하고자 합니다).
전주막걸리가 생각나시는 분들은 부근에 있는 선술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허름한 목노에서 옛 가요 하나쯤 부르시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우리 옛 가요, 특히 2절 가사에는 우리네 인생이 먹먹하게 녹아있습니다.
다음날인 13일 일요일, 아침 8시에 일어나 학인당을 방문합니다.
99칸의 큰 집이었던 학인당은 지금은 본채와 뒷채만 남아 있지만 한옥 마을의 종가(宗家)역할을 늠름하게 해냅니다.
전주는 재력이 든든한 중인들이 많았고, 동학 혁명의 영향도 크고 해서, 조선후기 반상의 차별이 다른 지역보다 일찍 허물어진 곳입니다. 판소리와 같은 '문화'가 꽃핀 사회경제사적 배경이기도 하지요.
학인당의 본채는 방과 방 사이를 트고 확장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백여명이 함께 앉아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임방울, 박녹주, 김소희 선생 같은 분들의 공연이 열렸던 민족문화사의 '큰 마당' 이었던 곳입니다.
이어 아침식사 시간. 벌들이 왱왱 날아들듯이 손님이 많은 왱이집 콩나물국밥은 전날 술을 많이 자신 분들에게 더 맛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주인 유대성(女)님의 전주 콩나물 이야기도 감칠 맛이 있습니다. 콩나물 국밥과 함께 모주(검은 설탕을 함께 넣고 끓인 막걸리)는 꼭 한 잔 하셔야 합니다. 알코올 도수는 높지 않으니 속풀이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식사를 마친 후, 한옥 마을에 있는 '지담(紙談)'에 들러 한지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집무실을 한지로 인테리어를 했던 예원예술대학교 한지문화연구소 차종순 교수와 유봉희 교수가 '한지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은은한 '빛'이 감도는 '한지 등(燈)'을 선보이겠습니다.
전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삶에서 전통문화는 무엇인가'를 화두로, 한옥체험관 김병수 관장 등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딱딱한 세미나 형식이 아니라 '전주식(式)'의 '땡기고 푸는' 방식이니, 무거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11시경, 전주를 떠나 '신선-개벽사상'의 고장 부안으로 향합니다(지난 6월 전주학교 개교 때는 모악산과 금산사 기행을 했습니다만 전주학교 2강은 방향을 바꿔보았습니다. 매번 '시절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해보려 합니다).
변산에서 유명한 생합요리로 점심을 한 후, 33km 새만금 방조제 너머 점점이 떠있는 고군산열도를 바라봅니다.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떠난 고군산열도는 '신선사상'의 고장입니다. 마주 보고 있는 부안땅은 진묵대사와 교산 허균이 개벽세상을 꿈꾸었던 곳이지요. 일찍이 해월 최시형 선생은 부안에서 "이땅에 새로운 문명(文明)의 꽃이 피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어 태풍이 불어도 잔잔하다는 아름다운 모항 앞바다를 거쳐, 오래된 숲길을 걸어 내소사(來蘇寺)를 둘러봅니다.
3시 조금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저녁 무렵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가을의 상큼한 햇살 따라 가벼운 '마실' 가듯이 전주학교로 오십시오.
이번 9월 참가 규모는 30명이며 참가신청과 문의는 www.huschool.com 또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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