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의 얼굴을 봅니다. 얼굴로 정규와 비정규를 가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이전에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들이 다른 존재가 아님을 아는 과정이며, 차별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단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기회일 것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이기도 한 이상엽 기획위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자의 이야기를 사진과 음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엽 기획위원의 사진과 이혜정 <비정규노동> 편집장의 글이 어우러지는 이 연재는 매주 본지 지면과 이미지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됩니다. <편집자>
▲ 박영순 학교 급식 조리사 ⓒ이상엽 |
나는 학교 급식 조리사예요. 올해 60세, 내년이 퇴직이에요. 이 일을 한 지는 16년 되었어요. 45세 때 우리 작은애 학원비를 벌려고 일을 시작했어요. 미술 공부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조리사 1인당 300인분의 식사를 담당해야 했어요. 업무 강도는 굉장히 높은데 첫 월급을 받아보니 50만 원이 채 안되더라고요. 워낙 적었어요. 수당도 없었으니까요. 텔레비전에서 조리사들 월급을 보도했을 때 애들이 깜짝 놀라더라구요. 그렇게 적은 돈을 받고 일했느냐고요.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는 1인당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이 186인분 정도로 낮아지고, 수당도 생겼지만 여전히 부족해요. 수당을 포함해야 100만 원 정도 되니까요. 더군다나 호봉도 인정되지 않아서 처음 들어온 사람이나 20년 일한 사람이나 급여가 같아요.
7시 20분 정도 출근해서 물건이 제대로 왔는지 확인하고 수량 체크를 해요. 냉장고 온도도 체크해서 기록해야 하고요. 우리는 조리 단계가 나뉘어 있어요. 각 단계마다 작업복이 다 다르고요. 하루 세 번씩 작업복을 갈아입죠. 전처리 할 때 소독 과정을 다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단계마다 페이퍼를 담가서 소독 정도를 확인해야 해요. 조리 과정에선 다시 깨끗한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해요. 그러면서도 수시로 알코올 소독을 해야 하고요. 모든 과정을 기록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몇 시에 전처리를 했고, 튀김 중심 온도는 몇 도였고 등등. 얼마나 할 일이 많겠어요.
음식을 하다가 자리를 이동할 수가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요. 게다가 급식실 온도가 50도, 60도 되다 보니까 땀범벅으로 일을 하죠. 참다못해 화장실을 가게 되면 땀 때문에 비닐 작업복이 몸에 붙어서 바지가 안 내려가는 거예요. 급하니까 오줌을 지리게 돼요. 너도 지렸냐, 나도 지렸다.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끼리 농담 삼아 하기도 해요.
조리사 한 사람이 하루에 들었다 놨다 하는 무게가 어마어마해요. 쉴 새 없이 물을 퍼 나르고, 물을 들이붓고, 국통을 옮기고, 조리 재료들을 가져다 다듬어야 하니까요. 쇠로 만든 식판이나 어떤 과정이든 쓰이는 물, 국통, 조리 재료 등을 전부 따져보면 무게가 엄청나죠. 그러다보니 저처럼 10년 넘게 일한 사람 중에 골병 안 든 사람 없어요. 손엔 염좌가 생기고, 어깨는 석회화되고, 무릎, 발목, 팔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요.
나는 사실 초등학교만 나왔는데요. 가방끈이 짧다고 제 상사인 영양사에게 자주 무시를 당했었어요. 그래서 다니기 시작한 검정고시 학원이었는데 한 방에 붙은 거예요. 노동조합 일을 할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걸 다 했나 싶어요. 지금 수도여고 2학년이에요. 내년이면 학교 두 개가 끝나요. 수도여고 졸업반이고, 조리사 정년이거든요. 나는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해서 하나라도 더 해놓고 나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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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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