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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알맹이는 어디가고 껍데기만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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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알맹이는 어디가고 껍데기만 남았을까?

[전시] 노순택의 <망각기계> 6월 10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80년 광주는 온전히 기억되고 있을까?

사진가 노순택은 그의 작업 <망각기계>를 통해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 기록에 의해 훼손, 변형,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억은 망각의 다른 의미'라는 니체의 말처럼, 피상적이거나 왜곡된 기억은 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518을 기억하는 동시에 망각하는 우리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518의 불완전한 청산, 그리고 망각

문민정부에 들어 '518 특별법'이 제정됐고, 518은 비로소 '공식 역사'에 편입됐다. 새롭게 국립묘지가 조성됐고, 매년 대규모 추모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에서 사진가는 불완전한 청산과 518의 '껍데기'를 발견한다.

국립 518민주묘역은 거대하고 웅장하게 조성됐지만 518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협함을 안고 있다. 사람들이 다시 옛 묘역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는 망월동의 옛 묘역에 80년 이후 민주화에 투신하다 희생된 이들의 유해가 같이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518희생자들의 유해는 모두 신묘역으로 옮겨졌지만 87년 민주화항쟁에서 희생된 이한열 등 일부의 묘는 아직 옛 묘역에 남겨져 있다. 작가가 희생자들의 얼굴을 찍어낸 것도 옛 묘역에서다.

묘역을 방문해 플래쉬 세례를 받고 사라지는 정치인들의 행위나, 울고 있는 유가족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취재경쟁을 벌이는 미디어의 풍경 역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518 당시를 재현하는 행위는 어떨까? 광주항쟁 계승기간에 작가는 시민군이 되어보는 체험행사를 보았다. 커다랗게 인쇄된 도청과 분수대 사진을 배경으로 시민군 복장으로 갈아입은 체험자가 소총을 겨누거나 확성기를 들면 진행자가 사진을 찍어주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총을 잡고 사진을 찍는 풍경은 마치 역사박물관에서 그렇듯 과거를 기념물로 소비시키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익단체들은 아직도 대북전단에 "80년 광주에 간첩들이 남파해서 폭동을 주동했다" 따위의 자극적인 문구를 넣어 날려보내고 있다. 518이 한편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반쪽의 역사로 남아 있다는 증거다. 국가보훈처가 2010년부터 공식행사에서 민중가요을 금지하면서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일도 이런 맥락에서라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이 노래는 올해도 공식 순서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학살을 자행한 자들을 단죄한 것도 아니다.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도 밝혀내지 못한 채, 비자금은 환수되지 않고 '반란의 수괴'는 아직 국가 원로로서 호화로운 경호를 누린다.

▲ ⓒ노순택

국가의 폭력성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진가는 또 80년 광주 이후 국가의 폭력성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이명박 정권에서만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사태, 용산참사 등 상상하기 힘든 폭력을 목격했던 그는 아직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광주의 희생에 힘입어 세워진 두 번의 '민주정부' 역시 공권력의 폭력성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국민의 정부'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폭력성'과 참여 정부에서의 평택 미군기지 건설 당시 대추리 무력진압 등이 그렇다.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에서도 현실은 다르지 않았다. 로케트 배터리를 만들던 해고자들은 20미터 높이의 교통탑에 올라가 70일간의 장기 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복직되지 못했다. 며칠 뒤 그 철탑에 사람이 올라갈 수 없게 철조망이 쳐져 있을 뿐이었다. 오늘의 광주의 풍경이다. "살아오며 목격했던 죽음의 풍경들에 5월의 광주가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공권력의 폭력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왜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는지를 말해준다.

"무언가 잊히고 있다는 생각, 여전히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 알맹이는 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오늘의 5월 광주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그래서 518을 기억하자거나,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518은 어쩌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기념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망각과 다르지 않은 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바로 그 왜곡이 본래의 정신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보편적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 눈물 흘리는 노모 앞에 미디어가 취재경쟁을 벌이는 풍경은 씁쓸하다. 작가는 이미지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으로서의 기억에 회의를 품는다. ⓒ노순택

광주의 희생자와 운주사의 불상들

사진전 <망각기계>는 5월 4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신관에서 열린다. 지상 1층부터 지하 2층까지 3개층의 공간에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당시의 중요했던 공간, 옛 묘역, 운주사의 불상 등 5개의 테마가 구성된다.

1층에는 망월동 옛 묘역 앞 고인의 영정사진을 찍은 포트레이트의 대형 액자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80년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한 이 사진들은 제각각으로 만들어져 제각각으로 해체되고 부식돼 있다. 오랜 시간 눈과 비를 맞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아버린 이미지들은 죽은자의 얼굴이면서도 '살아있는자의 삶'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하 1층에는 당시의 기념비적인 공간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살아있는 자'들의 이야기가 전새돼 있다. 518 당시를 조악하게 재현하는 풍경과 전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선주자 7명을 둘러싼 행위들이 음산하게 찍혀 있다. 한쪽 구석 맨 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518묘역에 보낸 화환 사진이 걸려 있는데 알고 보면 반은 생화이고 반은 조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권력의 고압적인 속성을 암시하면서 취임 첫 해 518묘역에서의 '파안대소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숨겨진 장치다.

지하 2층에는 전남 화순 운주사의 불상 사진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과 마주하고 있다. 518 이후 운주사에 가서 위로를 얻었다는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불상을 작업으로 끌고 온 배경이다. 문드러지고 목이 잘린채 널부러진 불상들은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살았을 적 모습이 부식돼 가는 모습과 동일시된다.

운주사에는 길이 12.7미터의 거대한 와불이 있기도 한데, 이 불상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작가는 운주사의 풀밭에 모로 누운 늙은 남자의 모습을 와불에 병치시킨다. 세상의 전복을 꿈꾼 민중의 바람과 지친 듯 잠을 자고 있는 남자가 일어나 다시 생활을 이어나가리라는 사진가의 믿음이 묘한 공감을 이룬다.

이 전시에는 사진가가 2005년부터 7년여간 작업한 사진 중 63점이 걸려 있다. 전시에 맞춰 미전시 사진을 모두 담은 동명의 사진집 <망각기계>(청어람미디어)도 출간됐다. 사진집에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일본의 시인 다나베 아쓰미씨와 나눈 대담 전문이 실려 있어 작가의 작업과정과 생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운주사의 토끼풀밭에 누운 노인. 사진가는 이 사진을 찍은 뒤 잊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와불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순택

▲ 운주사의 미륵와불. 이 불상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뒤집힌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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