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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수' 없어진다고? 비정규 교수들 '공장'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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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수' 없어진다고? 비정규 교수들 '공장' 될 뿐

시간강사 개선 방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제 가운데 하나인 대학의 비정규 교수, 속칭 '보따리 시간강사'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려는지 요동을 치고 있다. 2008년 한경선 박사가 자살을 한 후 본격적으로 요동을 치기 시작하던 이 문제는 지난 2010년 5월 25일 서정민 박사가 교수 채용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자살을 하여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여름이 되면서 "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천막을 접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의 국회 앞 천막 농성은 1000일을 넘겼다. 그러면서 7월 29일에 교육과학기술부가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를 채용, 최장 5년까지 임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그 아무도 찬성을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분노만 지필 뿐이었다.

ⓒ이광수
9월이 시작되자마자 또 다른 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철학자의 죽음, 이후로 한국 대학 사회의 야만성은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봇물 터지듯 했다. 그 목소리는 교수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대학원생과 학부 학생들에게까지 퍼져 헌법 문제로까지 다다를 수 있는 학습권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지난 10월 22일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소속 조합원 수십 명이 모여 기간제 강의전담교수제 철폐를 요구하였고, 국회 앞 천막 농성은 1200일을 향해 가면서 유엔을 포함한 세계 시민 사회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한국 사회의 야만적 병폐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자 며칠 전 2010년 10월 25일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가 지난 23일 시간강사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고용 안정성 확보, 열악한 처우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학시간강사제도 개선 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신문들은 33년 만에 '보따리장수' 시간강사 제도가 이제 없어지게 되었다고 해석하면서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도하였다. 보도는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데 필요한 채용조건·신분보장·복무 등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신분의 본질적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교육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이 방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는 강사의 계약기간이 1년이라는 것은 비정규직을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현가능성이 약하며, 교원지위보장이 확실치 않고, 여전히 시급제를 유지하는 것이며, 강사들의 노동 (즉 연구성과물) 강도만 높일 뿐이라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일부 간부는 사립대학이 고비용의 강사를 채용하지 않고, 저비용의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를 채용하는 편법을 부릴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 타당한 지적이지만 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거나 강조되지 않은 것 같아 한 마디 거들도록 한다.

이번 방안은 언론이나 일부 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일보'한 것이 결코 아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에서 주장하듯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다. 의견 일치만 되고 법안만 통과되면 그들이 더 앞장서서 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실현시키려 안간힘을 다 할 것이다. 강사 대신 겸임교수 등을 채용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것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번 방안의 핵심은 교원 지위를 부여한 강사의 비율을 법정교원확보율에 20%까지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20%라는 숫자의 논리는 현재 비정규 교수인 겸임교수 3인이면 정규직 교수 1인 즉 법정교원으로 쳐서 산정하되 그 한도가 2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정과 동일한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전혀 타당치 않으면서 치명적인 독소조항일 뿐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겸임교수 3인을 정규 교수 1인으로 인정받아 법정교원확보율을 20% 한도 내에서 확보하고 있는 대학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교육계 바깥에서 전문직 (변호사, CEO, 정치인, 방송인, 예술인, 부동산감정사, 의사 등) 인사를 그렇게 많이 초빙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시간강사'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강의 수로는 36%, 강사 수로는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광수
따라서 이번 방안에서 다른 조항 모두를 양보하더라도 이 (교원 지위를 부여받은) 강사를 법정교원충원율에 20% 한도 내에서 인정한다고 하면 현재 교육부에서 정하는 법정교원충원율 기준 61%가 실질적으로는 41%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비정규교수를 20% 채용하면 - 이 20%를 채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 기존의 정규직 교수를 퇴출하거나, 학과를 폐과시키거나, 은퇴한 자리에 새 교수를 충원하지 않아 41%만 유지하면 되는 논리다. 사립대학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대학 교원을 저비용에 언제든지 처분이 가능한 비정규 교수로 대거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좋겠는가!

따라서 이번 방안이 핵심은 시간강사의 처우라든가 교원 신분 부여, 교원 신분의 구체적 권한 등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비정규 교원을 법정 교원 확보율에 20% 포함하여 결국에는 대학 교원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꿔 채우겠다는 발상에 있다. 그렇게 되면 1년짜리 (설사 계약 기간을 2년으로 하자는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 2년으로 하더라도) 계약의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 교수들이 대학 교육의 1/3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대학 교육은 인간 계발에 바탕을 둔 교육의 질 향상이 아닌 기업체가 요구하는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본질적으로 계약이 불안정한 비정규 교원은 정부나 사립 재단에 대해 옳고 곧고 쓴 소리를 할 수 없다. 결국 교육은 아웃소싱하는 체계로 바뀌고,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교원 지위를 회복한 강사는 반드시 법정 정원 외로 계산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번 사회통합위원회의 방안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번 방안은 단순한 '반대'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적극 '저지'해야 하는 문제다. 강사들에게 허울 좋은 교원 지위만 부여하고, 교수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이런 방안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법제화 되는 것을 저지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교원 지위를 부여받은 강사는 반드시 정원 외 교원으로 하여 법정교원확보율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정규직 교원과 비정규직 교원의 모든 권리가 동일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정원 외 학생이 학생으로서 모든 권리를 정원 내 학생과 동등하게 갖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그 많은 교원 강사가 다 정규직화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의 불안한 신분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려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연구하고 강의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교원의 지위를 당연히 받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교원의 지위가 정규직 교수가 되는 가능성을 갉아 먹는다면 그런 교원의 지위를 받고자 하는 시간강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는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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