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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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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12> 카이로선언과 'in due course'의 저주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라이벌 세계사>, <지하철 史호선>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in due course

한국인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은 이 영어 표현은 그 어떤 한글보다도 더 현대 한국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흔히 '적당한 시기에'라고 번역되지만 더러 '적절한 절차를 밟아'라고 옮기는 이도 있다.

이 표현은 1943년 11월 27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합의한 '카이로 공동성명'에 들어 있었다. "세 강대국은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이 '공동성명'은 그해 12월 1일 테헤란에서 스탈린 소련 원수의 동의를 얻고 4대 강국의 '공동선언'으로 격상되어 전 세계 라디오의 전파를 탔다.

국제무대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공동선언'에 한국의 독립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50여 개의 식민지 중 유독 한국만을 지칭"(정일화)했다며 영광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 조항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환영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선언이 발표되자 실망해서 모임을 취소해 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충칭에서는 한인들이 여기에 대한 항의 집회도 열었고, 임정 간행물에도 이에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김자동)."

왜 그랬을까? 열강이 한국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싫었을 리는 없다. 그들의 실망은 바로 'in due course' 때문이었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지만 즉시 해줄 수는 없다는 저의를 즉시 간파(김자동)"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꼬여 버린 강대국과 임시정부의 관계는 2년 후 남한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파탄에 이르렀다. 그 후 임시정부 요인은 물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자들 상당수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운영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임시정부가 카이로선언에 실망한 이유

이처럼 한국인에게 희망과 좌절을 함께 선사했던 카이로선언이 최근 들어 다시 한 번 한국인 사이에 뜨거운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승만 신봉자 유영익은 지난 5월 출간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란 책에서 카이로선언에 한국 조항이 들어간 것은 루스벨트와 그의 특별보좌관 홉킨스 덕분이며 여기에는 이승만의 독립 외교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았다. 이것은 카이로선언에 한국 조항을 넣자고 한 사람이 장제스이고 카이로 회담 전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제스와 만나 이를 요청했다는 기존 학설과 충돌하는 내용이다. 바야흐로 이승만과 김구, 분단 세력과 통일 세력, 대외 의존 세력과 자주 세력의 역사적 대결이 현대 세계의 분수령 가운데 하나인 카이로선언을 놓고도 재연된 형국이다.

유영익은 카이로선언과 관련된 내용을 2010년에 나온 정일화 박사의 <카이로선언>에 의존해 서술하고 있다. 정일화는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가 한국 독립을 제기했다는 설을 일축하고, 한국 조항이 포함된 카이로선언은 "'약소국들을 구하는 전쟁'을 벌인 루스벨트의 철학과 그의 측근 해리 홉킨스가 결합된 기적"이라고 일갈했다. 장제스는 공식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거론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장제스와 단독 회담한 루스벨트가 처칠에게 "그의 목적은 한국의 재점령"이라고 밝힌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이승만이 루스벨트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은 몇 가지 정황에 따른 추측일 뿐 구체적인 물증은 없다. 그에 비해 중국보다 미국이 카이로선언의 한국 조항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시나리오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미국이 먼저 제기했든 중국이 먼저 제기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in due course'라는 문구가 왜 들어갔나 하는 것이다. 정일화에 따르면 홉킨스의 초안에는 '가능한 빠른 시기(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라고 되어 있던 것을 루스벨트가 '적절한 시기(at the proper moment)'로 고치고, 이를 다시 처칠이 평소 입에 달고 살던 'in due course'로 고쳤다고 한다. 루스벨트는 훗날 얄타 회담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을 포함한 식민지들이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처칠은 한국 조항이 영국의 식민지들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이해관계들이 카이로선언의 최종 문구에 반영된 것이다. 'in due course'는 강대국들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벌인 이해관계 게임의 산물이었다.

▲ 1943년 카이로에 모인 중국의 장제스 총통,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앞줄 의자에 앉은 사람, 왼쪽부터). ⓒ연합뉴스

정일화의 말처럼 '50여 식민지' 가운데 유독 한국만 거론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일까? 카이로선언은 일본의 식민지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연합국과 관련된 땅이다. 그중 만주, 타이완, 펑후제도는 중국에 반환되는 것으로 명문화되었지만 나머지는 일본으로부터 빼앗은 뒤 어떻게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태평양의 섬들은 대부분 미국 땅이 되었고, 동남아시아의 점령지들은 일본이 빼앗기 전의 종주국으로 되돌아갔다. 말레이시아는 영국, 베트남은 프랑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다시 차지했다. 따라서 한국이 특별히 들어간 것은 다른 식민지보다 독립 역량이나 외교 역량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서방 연합국에 연고권이 없는 추축국(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설령 정일화의 주장대로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이 한국 조항에 더 적극적이었다 해도, 그것은 중국의 연고권 주장을 막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세력 균형의 추로 한반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카이로 회담 38년 전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떠밀어 버린 미국이 그 잘못을 반성하고 한국인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잘나서 카이로선언에 독보적으로 명문화되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시시덕거리며 미국한테 고맙다고 아양을 떨어대야 할까? 이거야말로 요즘 말로 '왕따'감 아닌가? 50여 식민지가 노예 상태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강대국들이 우리만 콕 집어서 풀어주겠다고 하면, 그게 과연 고맙기만 하고 영광스럽기만 한 일이었을지 잘 좀 생각해 보시라.

게다가 그렇게 혼자만 명문화되었으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다른 곳이야 어떻든 한국의 독립은 탄탄대로를 걸었어야 옳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는 과연 어땠는가? 임시정부가 직시한 것처럼 'in due course'의 저주에 걸려 험난한 길을 걸어 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권도 없던 미국과 소련이 군대를 진주시켜 독립을 지연시키더니 급기야 나라를 두 동강 냈다. 카이로선언에 이름이 언급되는 '명예'를 얻지 못했던 연합국의 구식민지들은 대부분 자주적인 역량으로 독립운동을 벌여 연합국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했다. 반면 한국인은 민족 역량을 동족상잔에 쏟아 부은 끝에 원치 않았던 분단만 고착화되었고, 그 상처는 지금도 한국인을 할퀴어 대고 있다.

'이승만 띄우기' 위해 카이로선언 이용하는 유영익

유영익은 바로 그 분단을 앞장서 추진하고 분단 현실에 기대어 독재를 했던 이승만을 부활시키는 데 카이로선언을 이용하고 있다. 분단과 독재의 어두운 유산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정권에서 그가 한국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은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비롯된 위기 국면에서 현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이승만, 박정희 때와 똑같이 '분단'밖에 없어 보인다.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가동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종북'으로 몰아 위기를 모면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니, 북한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날 걸핏하면 '종북 좌파'로 몰리는 이들의 대다수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민주주의와 민족 화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다. 김구 주석이 이끄는 임시정부의 주류야말로 프랑스의 드골 정권과 비견되는 우익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왼쪽으로 밀어내고 팔자에도 없는 우익의 자리를 꿰어 찬 기이한 세력의 존재는 분단이라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이런 기형적인 구도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좌우의 균형 감각을 찾는 날이 곧 'in due course'의 저주가 풀리는 날이다. 그때 우리는 카이로선언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국제 사회에 그것을 극복했노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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