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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동 역사책에 빨간딱지 '악마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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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동 역사책에 빨간딱지 '악마의 편집'

[기고] <조선>의 마녀사냥과 그에 편승한 학자들

<조선일보>가 9월 28일 "어린이용 역사 교양 도서 상당수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편향된 관점으로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반미(反美)주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폄하 ▲대한민국의 비(非)자주성 등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최소 1만 부 이상 팔린 9종의 어린이 역사서에서 그런 문제점을 발견했다며 "학부모들이 꼼꼼히 살펴보기 전에는 이런 문제점 파악이 어려워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보도 후 일각에서 '역사 교과서 논란에 때맞춰 <조선일보>가 마녀사냥을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가 표적으로 삼은 9종의 책 중 한 권인 <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저자인 김정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이 <조선일보> 보도를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지금 한국에서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시작된 논쟁들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내년부터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이 극우적인 역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되었다고 평가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그 논쟁의 전면에 있다. 이러한 '역사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역사 전쟁'의 과정에서 <조선일보> 9월 28일(토요일) 6면의 '어린이 역사책도 좌편향 심각'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교학사 교과서를 줄곧 옹호해왔던 <조선일보>가 자신의 입장에 거슬리는 어린이 역사책에 대해서도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선전포고를 했다.

이 기사의 의도는 명확하다. 우리 사회 각 부분에서 '빨갱이가 설치고' 있는데, 어린이 역사책 부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순진무구한 새싹을 빨갱이가 나쁜 역사관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부모들이 각별히 조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시중에 나와 있는 '수십 종'의 역사책 가운데 9종이 좌파 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되었다고 규정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쓴 <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웅진주니어)가 다른 책에 비해 기사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판단하건데, <조선일보>는 이 책을 가장 좌편향으로 평가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책을 쓴 저자의 입장에서, <조선일보>의 이런 딱지 붙이기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조선일보>가 최근 논란이 된 교학사 고등학교 교과서를 비판하기는커녕 옹호하는 기사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일보>의 역사관은 명확하다. <조선일보>의 극우적인 역사관에서 볼 때 객관적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필자의 책을 좌편향으로 모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 <조선일보>는 9월 28일 '어린이 역사책도 좌편향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북한·김일성 비판 부분 쏙 빼고 "핵 개발 옹호" 날조

그런데 문제는 좌편향의 근거로 내세우는 논거가 황당하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필자의 책에서 3가지 논점을 들어 좌편향임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조선일보>는 필자를 주사파로 몰고 있다. <조선일보>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소련이 간 길을 뒤따랐다(사회주의 체제를 버렸다는 뜻). 중국은 제 앞가림하기만도 바빴다. 이때 북한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온 세상에 혼자 남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중략) 소련이 무너지면서 세상에 겁날 것이 없어진 미국은 북한을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나섰다. 북한으로서는 이제야말로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곱씹었을 것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에 맞서기 위해서 북한이 선택한 것은 바로 핵무기 개발이었다."를 인용했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연구원장인 허동현 씨가 나서서 "미국은 침략을 일삼는 제국주의 국가로 묘사한 반면, 북한은 자주 국가로 묘사함. 북한의 핵 개발을 미국의 탓으로 돌리며 핵무기를 자위용 수단으로 옹호하는 서술"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와 허동현 씨는 필자를 반국가 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북한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주사파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위 인용문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에 맞서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바로 핵무기 개발이었다. 핵무기만 있으면 제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북한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의 눈과 귀를 한반도로 쏠리게 한 북한 핵 문제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민족의 운명을 걸고 하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었다." (202쪽, 이 글을 위해 강조)

필자를 주사파로 몰기 위해 같은 문단의 "민족의 운명을 걸고 하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쏙 빼고 앞부분만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학자적 양심의 문제를 넘어 필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모는 범죄 행위이다. 필자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예를 들어 6.25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커다란 잘못이었다. 목적을 이루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6분의 1 정도인 500만 명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다. 전쟁 때문에 남북한 사이의 통일은 더욱 먼일이 되어 버렸고 동족 사이에는 증오와 사생결단의 경쟁심만 남았다."(201쪽)고 평가했다. 또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분단 탓에 사라져 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도 남북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남한에서 군부 독재가 30여 년간 지속되고 북한에서 부자 세습이 이루어진 것도 분단이 가져온 크나큰 피해였다. 남과 북에서 지배층은 분단을 핑계로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212쪽)고 서술했다. 그리고 북한의 미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현재 북한의 위기를 부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206쪽)고 북한을 실패한 사회주의로 명백히 규정했다.

필자는 6.25를 일으켜 분단을 고착화한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으며, 분단을 핑계로 부자 세습을 하여 정치적 자유를 박탈한 실패한 사회주의 체제라고 북한을 명백히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북한을 옹호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없다. 북한을 옹호했다는 <조선일보>와 허동현 씨의 주장은 명백한 날조이다.

필자는 단지 왜 북한이 1980년대나 1970년대가 아닌 1990년대 초반에 핵 개발을 시작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서술했을 뿐이다. 북한의 입장을 소개하고 그것이 왜 잘못인지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북한을 옹호했다고 볼 수 없다. 검사가 공소장에서 피의자의 범죄 의도를 설명한다고 해서 그 검사가 피의자를 옹호한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필자는 북한의 의도를 말하고 그것이 분명히 '민족의 운명을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을 침략을 일삼는 제국주의 국가로 묘사"했다는 허동현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먼저 물어보자. 미국을 비판하면 모두 좌파이고 미국은 절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예를 들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는 2003년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단 한 개의 대량 살상 무기도 찾아내지 못했다. 퇴임 후 부시조차 재임 기간에 겪은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을 언급했다.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고자 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양심적 학자들의 평가이다. 미국의 북한 제거 작전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우여곡절 끝에 1994년에 제네바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아 파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면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인식하는 좌파'로 규정하는 허동현 씨에게서 학자적 양심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필자는 1945년 이후 제국주의라는 규정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대외 정책에서 패권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비판했을 뿐이다. 필자가 언급하지도 않은 말인 '제국주의'를 가지고 필자를 매도하는 것은 유신 시절 공작 정치 때도 없었던 상식 밖의 행동이다.

'반공 위해 원조' 명시했는데도 '미제 비판'으로 왜곡

두 번째로 미국에 대한 인식이다. <조선일보>는 필자의 책에서 "(6.25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한국에게 준 농산물은 자기 나라에서 먹고 남은 농산물이었다. (중략) 한국 정부는 미국이 준 농산물을 한국 사람에게 판매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미국의 무기를 구입했다. 미국의 무기 회사가 이익을 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인용했다. 그리고 허동현 씨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지키려던 가치는 외면한 채 미국을 먹다 남은 잉여 농산물을 주고 무기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제국주의 세력으로 묘사함"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인용과 평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다. 길지만 인용문 앞뒤 전체를 보자.

"당시 엄청난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런 한국에게 미국은 농산물 원조를 포함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국이 한국을 도와준 이유는 분명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우방이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사회주의 세력과 마주 보고 있는 한국이 무너지면 자본주의 진영을 이끌고 있는 미국은 크나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경제적 계산이 없이 순수하게 한국을 도와주었을까?

미국이 한국에게 준 농산물은 자기 나라에서 먹고 남은 농산물이었다. 즉 미국 정부가 자기 나라 농민을 돕기 위해 남아도는 농산물을 세금으로 사서 한국에 준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준 농산물을 한국 사람에게 판매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미국의 무기를 구입했다. 미국의 무기 회사가 이익을 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한국은 미국의 도움이 고마웠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한국 입장에서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필요 없어진다거나 한국을 도와줄 여유가 없어지면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빨리 힘을 키워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1958년부터 미국의 도움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미국이 가진 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경제력에서 미국을 당할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이 무렵 영국, 프랑스, 서독 등 유럽 나라들과 일본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미국의 경제는 차츰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은 이전처럼 돈을 물 쓰듯 쓸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대한 원조도 줄이기 시작했다." (183쪽, 강조는 이 글을 위해 한 것임)

위 전체 인용문에서 보면, 허동현 씨가 주장하듯이 "대한민국과 미국이 지키려던 가치는 외면한" 것이 아니라 원조의 목적이 남한을 사회주의 세력에 맞선 반공 기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허동현 씨의 주장은 명백한 날조이다. 만약 필자 글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미국의 원조가 반공이라는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위해 행해졌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허동현 씨는, 필자의 책에서 원조가 반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행해졌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했는데, 마치 필자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처럼 공격했다.

그리고 "미국이 먹다 남은(책에는 분명히 "먹고 남은"이라고 표현했다. 어감이 상당히 바뀌었다.) 잉여 농산물을 주고 무기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제국주의 세력으로 묘사함"이라는 평가는 더욱 황당하다. 이 문장은 당시의 객관적인 원조 과정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 서술이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이를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반박은 못한 채, 이 문장을 서술했기 때문에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묘사했다는 억지 평가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와 관련된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1870년대에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끝났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1945년 이후 역사를 서술하면서 제국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일부 극단적인 학자들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1945년 이후 제국주의 세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허동현 씨는 필자의 입장과 전혀 관계없는 개념을 마치 필자가 사용한 듯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필자를 좌파적 입장으로 몰기 위한 딱지 붙이기에 불과하다. 허동현 씨는 자기가 반박하지도 못하는 객관적 사실을 서술했다고 필자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라고 매도하고 있다. 허동현 씨의 주장이 제대로 기사화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왜곡은 학자로서 기본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 이승만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승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그렇게 못마땅했나

이제 세 번째 논점을 보자. <조선일보>는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었다. (중략) 이승만과 그 참모들은 잘못을 하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매서운 요구에 결국 이승만은 하와이로 도망을 갔다."고 인용했다. 그리고 신용철 경희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 없이 저속한 표현으로 매도"했다고 필자를 공격했다.

이 논점은 입장의 차이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과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입장의 차이로 넘어가기에는 평가하는 용어가 거슬린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 없이('공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공'에 대한 평가 없이 '과'만 썼다고 표현해야 한다) 저속한 표현으로 매도"했다고 하는데, 먼저 지적할 것은 사전적 의미의 '저속한 표현'은 필자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 책에서 쓴 적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과 입장이 다르면 '저속'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혹시 '나쁜'이라는 표현이 저속하다고 느꼈을 수 있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도 썼던 표현이다. '일방적'으로 평가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을 '저속'하다고 표현하면서 마치 필자가 이승만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무고하게 인신공격을 한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아니면 혹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에서 '무슨 일이든 하는'이라는 말이 저속한 표현에 속할까? 필자로서는 이 말이 저속한 표현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왜 '무슨 일이든 하는'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근거는 제시하겠다. 이 문장 다음에 이른바 사사오입에 의해 헌법을 뜯어고쳐 1956년 대통령에 당선된 점과 4.19가 일어난 1960년 당시 부정 선거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책에서 서술하지 못한 내용도 많다. 예를 들어 1950년 국회의원 선거 결과 자기편이 적어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1952년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폭력배를 동원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간첩으로 몰아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직선제 개헌을 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또 1956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맞선 조봉암을 훗날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최근에 이 판결이 잘못이라는 점을 법원에서도 인정하고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면 관계상 더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사실만으로도 이승만이 대통령을 계속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근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4.19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굳이 이승만의 공적에 대해 서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필자의 이승만 평가가 극단적이라고 느낀다면, 정당하게 논쟁할 의사가 얼마든지 있다.

▲ <조선일보>는 2007년 김정 씨를 인터뷰해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6년 후, <조선일보>는 태도를 바꿔 김정 씨의 책 곳곳에서 반미주의적 시각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황당한 <조선>, 두 번이나 소개했다가 갑자기 빨간딱지 붙여 매도

끝으로 이 기사를 낸 <조선일보>의 태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면서 마무리하겠다. <조선일보>는 필자의 책이 좌파적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당부하고 있다. 특히 필자의 책에 대해선 판매 부수까지 거론하면서 위험성을 환기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필자의 바로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해, 공부 방법에 관한 필자의 조언을 두 번이나 독자들에게 전했다(2007년 8월 19일자, 2012년 3월 5일자). 그랬던 <조선일보>가 필자의 견해가 바뀌지도, 책 내용이 수정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그리고 이번 기사를 작성한 이미지·이순흥 기자의 언론인으로서 태도도 지적하고 싶다. 필자의 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반론권을 주고 싶으면 필자에게 직접 의견을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 당시 편집에 관여하지도 않은 현재의 출판사 편집장과 인터뷰한 내용만 소개하는 것은 '알리바이' 만들기였다는 혐의가 짙다. 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조선일보>답게 꼼수를 쓰지 말고 정정당당했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선일보> 기사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근거 없이 필자의 책에 빨간딱지를 붙였다. 이 반박문 말고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선일보>의 마녀사냥에 맞서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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