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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부자의 전유물인가"…실천하는 먹거리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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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부자의 전유물인가"…실천하는 먹거리 정의

[마을주의자]<3>장수 호덕리 마을먹거리사업가 박진희

귀농촌 인구는 가히 폭증(Boom)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2년간 증가율은 전년 대비 약 2.6배에 달한다. 2010년 4000여 가구에서 2011년 1만500여 가구, 2012년 2만7000여 가구가 도시를 떠나 농촌마을로 하방했다. 귀농촌은 더 이상 일부 선도자나 선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귀농촌을 결행하는데 남다른 용기와 역량이 필요하다. 여전히 귀농 생활은 불안정하고 힘겹다. 귀농촌 초기에 초보농군 처지로 농사를 지어 수지타산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자면 날품이라도 팔아야 한다. 순정한 농부의 꿈을 접고 부업을 전업 삼는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귀농촌은 도시인에게 삶의 대안이다. 미래의 희망이다. 대부분 그저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고 보자는 충동적, 감상적 목적은 아니다. 오로지 처자식과 먹고 살려는 이기적, 동물적 목적도 아니다. 대개 인간답고 생태적인 공동체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사회적 열망이 더 크다. 장수 호덕리 하늘소마을에 귀농촌해서 '먹거리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 박진희(40) 씨의 생활이 그 증거다.

"
▲ 지니스테이블 박진희 대표. ⓒ정기석
유기농은 부자의 먹거리일까?"

귀농인 박 씨는 어엿한 사업가다. 유기농산물꾸러미 직거래사업을 주로 하는 사회적기업 지니스테이블의 대표다.

2009년에 하늘소마을로 귀농촌을 결행했다. 서울에서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민주관광연맹 사무차장과 증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으로 노동운동을, 2008년부터 3년간은 녹색연합 정책실에서 환경운동에 헌신했다.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이타적인 삶을 일관되게 살았다.

그런 박 씨가 특급호텔 호텔리어였던 남편, 세 딸과 함께 산골마을로 귀농촌한 이유는 명쾌하다. "지속가능한 삶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열망이 마을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적 이민'을 선택한 셈이다.

도시의 노동운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단련된 박 씨에게도 농부의 삶은 고달프다. 부부가 농사를 지어 딸 셋, 아들 하나를 포함한 여섯 식구가 넉넉히 먹고 사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돈을 모으는 건 고사하고 서울생활에서 모아둔 저축을 까먹는 나날이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도시생활보다 더 치열한 삶의 현실을 농촌마을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 귀농촌 생활은 손실과 적자만 남기지 않았다고 자평하고 자족한다. "귀농촌 생활은 삶의 치열한 과정이다"라는 값진 교훈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중장기 사업계획서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여생을 전부 투자할만한.

그 사업계획은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사업이다. 미국에서 '먹거리 정의'를 실천하는 단체 '피플스 그로서리'(Peoples Grocery)가 눈에 들어 왔던 것.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스폰서 후원금, 일반 판매 이익금으로 저소득층에게 유기농 생산물을 싼값에 공급하는 단체다. 이후 박 씨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 하는 '유기농 초록텃밭의 농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은 과연 부자의 먹거리인가 하는 의문과 자조가 컸어요. 사회의 소득 양극화로 가난한 사람들은 유기농 같은 좋은 먹거리에서도 소외되는 양극화의 피해자가 되곤 하죠. 그게 현실이잖아요. 유기농 농산물을 소득 하위층과 나누고 싶었어요.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아예 사회적기업 '지니스테이블'을 창업했다. 아름다운재단의 소셜펀딩, 소셜벤처경연대회, SK행복나눔재단 스타트업 사회적기업 등으로 선정되면서 기부금, 후원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전북의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쉼터, 장애인공동체 등에 안전하고 좋은 유기농산물 꾸러미를 보내고 있다. 박 씨가 나누는 '정의로운 먹거리'는 감자, 고추, 토마토, 쌈채소, 고구마, 콩, 쌀, 잡곡류에서부터 유정란, 청국장, 된장 등의 장류까지 50여 가지가 넘는다.

"사시사철 제 마음은 밭에 씨 뿌릴 생각보다 사람들 마음에 씨 뿌릴 생각에 가 있어요.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 가난해도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 그래서 누구나 살아갈 기운을 내고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해서 사람들 마음밭에 씨 뿌릴 생각 말이죠."

▲ 유기농 농장. ⓒ정기석

'먹거리 정의'로 정의로운 세상을

박 씨가 도시에서나, 농촌마을에서나 사회적인 책임을 앞세운 이타적 삶을 살게 된 건 다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겪은 아픈 체험의 기억에 뿌리가 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강남의 무허가 판자촌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휘황찬란한 고급 아파트와 주택들이 즐비했지요. 어느 날 과자를 사러 가게에 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물어요. 왼쪽(판자촌)에 사는 아이인지, 오른쪽(고급주택촌)에 사는 아이인지…. 그 뒤로 그 가게에 다시는 가지 않았죠."

이때 박 씨는 "소외계층의 먹거리 빈곤은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이며 누구나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자 사회의 차별을 없애는데, 사회의 정의를 실천하는 데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기농산물의 생산은 60배, 시장규모는 2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해요. 대형마트에 가도 유기농매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쉽게 접근할 수 있죠. 그런데 과연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은 유기농산물을 사서 먹을 수 있을까요? 대체 왜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값싼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정크푸드만를 먹어야 하는걸까요?"

박 씨는 스스로, 그리고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끊임없이 '먹거리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제안을 보내고 있다.

"저는 경제력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유기농을 먹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소득과 관계없이,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세상 이 정의로운 세상 아닌가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해줄 수 있는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요?"

박 씨는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한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결식아동의 도시락, 공부방 급식, 장애인시설에서 먹는 음식이 모두 유기농으로 공급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이 운영되는 공부방 아이들, 지자체 지원은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급식지원을 받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가난과 결손, 학대를 이유로 가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함께 생활하는 청소년들,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우들에게 정의라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유기농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올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도시농업을 꿈꾸는 서울시민식생활학교 프로그램'도 그 일환이다. 먹거리 양극화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서울시민들이 바르고 공정한 먹거리에 대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교육·체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다. 여기서 박 씨는 텃밭체험·먹거리 시민식생활교육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먹거리 교육을 시작할 때는 명상으로 시작할 것. 끝날 때는 아이를 안아줄 것. 아이들이 떠든다고 절대로 혼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걸 박 씨는 잊지 않는다.

▲ 하늘소마을 입구. ⓒ정기석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 씨가 맡고 있는 감투는 많다. 장수군 최초의 협동조합 초록누리협동조합 기획이사, 진안데미샘방과후학교 열두달밥상 교육자, 진안에코에듀센터 자문위원, 초록빛마을교실 교사, 슬로푸드무진장지부 준비위원 등이다.

최근에는 슬로푸드문화원, 서울 송파구 마을기업 '즐거운가'와 함께 먹거리 정의를 실현하는 시민식당과 시민야채가게 만들기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홍보를 하고 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성장 위주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생존권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먹거리에 대한 소외현상이 만연해있다. 우리가 함께 '먹거리 정의'를 위해 노력하면 인간 사회와 지구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교육생이 박 씨의 블로그에 남긴 교육후기다. 박 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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