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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벌에 한 번 쏘여봐야 기사도 잘 쓸텐데…"

[현장] 벌과 함께, 사람과 함께…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최근 '아빠'로 등극한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박진(31) 대표는 노들텃밭 한 귀퉁이서 아기와 같은 벌을 기르며 양봉가들의 성장을 도와준다.

지난 9일 추적이는 빗길을 따라 한강대교를 건너다보니 한강 중간에 자리 잡은 노들섬의 노들텃밭이 보였다.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박진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은 순탄치 못했다. 멈출 줄 모르는 자동차의 질주. 쏟아지는 소나기. 우여곡절 끝에 찾은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의 양봉 실습시간. 숲 덤불을 뚫고 들어간 곳은 은은한 쑥 향으로 가득해 텃밭까지의 힘든 여정을 잊게 했다. 쑥을 통한 훈연기는 벌들을 순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노들 텃밭 한 곳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벌통은 색색으로 칠해져 교육생들의 벌이 길을 잃지 않는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양봉 기구를 통해 온 몸을 무장한 기자지만 수많은 벌 떼를 보는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다.

"가만히 있으면 벌들은 먼저 공격하지 않아요."

도시양봉 프로그램 막내 김혜성(13) 군이 말을 걸었다.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벌들이 예민한 상태니 조심하세요."

김 군은 경기도 광명시 볍씨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벌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 김 군은 꿀이 가득한 밀랍(벌집을 만들기 위한 분비물질)을 내밀며 "저는 나중에 멋진 양봉가가 되고 싶어요. 벌에게 쏘이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제가 기르는 벌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은 단지 벌을 기르는 것만이 아닌 한 어린이의 꿈까지 키워주고 있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도시양봉 프로그램은 총 10주 과정으로 벌에 대한 이해부터 벌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한 이론 교육을 실시하고, 초보자들이 혼자서도 양봉을 할 수 있도록 벌통 관찰부터 채밀까지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궂은 날씨 탓인지 벌들은 꿀을 찾아 나서지 못하고 벌통 주변만 맴돌았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강성호(32) 씨는 "벌들은 건조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벌통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이죠"라고 설명했다. 벌통을 유심히 살피며 진지한 실습이 진행됐지만 야속한 날씨는 교육생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세차게 퍼붓는 비 때문에 실습이 중단됐다.

다 함께 하고 싶었던 도시 양봉

박 대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단지 주말농장을 가꾸는 환경적인 취미를 가졌다는 특이점이 있다고나 할까?

"시골에서 살 때는 옥수수들이 토실토실하고 굉장히 알찼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가꾸는 작물들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죠."

이유는 벌 때문이었다. 농장 주인의 흘러가는 말에 박 대표는 모든 것을 걸었다. 벌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자연스레 작물이나 열매가 맺는 데 필요한 수분활동이 미흡해졌다는 것이다.

벌은 농업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최근 도심 경관과 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이에 상충하는 매개체로서의 사회적 공헌도 또한 높다고 한다. 양봉 공부를 통해 도시가 농촌보다 오히려 양봉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된 박 대표는 외국의 생활화 된 도시 양봉 사례를 발견했다. 도시는 꽃으로 조성된 공원이 많아 벌들이 꿀을 찾기 쉽고 따뜻하므로 벌에게 좋다고 한다.

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박 대표는 국내에서 도시 양봉을 하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박 대표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흔들 듯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무작정 인터넷 홈페이지에 '꿀벌 지기'라는 도시양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귀농하고 싶어 1년간 농사를 지었던 30대 청년 박형규(32) 씨는 "도시양봉은 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어요. 귀농을 생각하는 제게 도시 양봉은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지요"라며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고 사람들이 도시 양봉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벌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양봉업으로 혼자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좋은 일을 하고 모두 함께 살아가고자 협동조합 구조의 회사를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벌은 모기가 아닙니다

도시 양봉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도시에서 벌을 키워?'라는 말을 시작으로 절대로 되지 않을 거라던 사람들의 손사래를 뒤로한 채 박 대표는 여기까지 왔다.

박 대표는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벌 떼들이 무섭게 동물들을 공격하는 부분을 봤습니다. 어렸을 적 아이들의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라며 "벌은 모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해요. 꽃을 찾아다니는 곤충이기에 섬세하고 예민하죠"라고 설명했다. 양봉장을 찾았을 때 교육생 혜성군이 처음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벌은 모기 아니다. 생존을 위해 물고 쏘는 행위는 모기와 같지만, 벌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면 사람을 쏘지 않는다. 도시 양봉 프로그램 교육생 정현정(26) 씨는 "유학 시절, 파리 시내 공원에서 벌을 키우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사람들이 조금만 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해외와 같이 시내 곳곳에서 양봉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기자 또한 벌에 대한 거부감과 무서움이 가득했지만 직접 실습을 거쳐 그 안에 체험해보니 생각과 많은 부분 달랐다.

교육생들은 벌에 대한 추억을 제각각 이야기하는데 끝맺음은 모두 같았다.

"한번 쏘여보면 무서움도 무뎌지고 그때부터 벌과 친구가 돼요. 기자님 안 쏘이셨어요? 아, 한 번 쏘여야 기사도 잘 쓰실 텐데."

교육생들의 얼굴은 해맑게 들판을 뛰노는 아이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지속되는 근무 스트레스로 지친 일상에 노출 돼 있다. 그러나 평일 5일을 꼬박 일하고도 주말에 양봉장에 나오는 이유는 힘든 삶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꿈을 꾸기 위한 것도 있다.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

할 일 산더미, 어반비즈

서울시에 주관하는 몇 개의 양봉장이 있지만, 민간단체로서 유일한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은 할 일이 산더미다. 처음 일궈낸 일이기에 튼튼한 밑거름이 되고자 많은 일을 구상하고 있다. 박 대표가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내에 맞는 '양봉 설명서'이다. 스티브 벤보우의 책 <도시 양봉>(이은주 역, 들녘 펴냄)을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어떻게 양봉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그러나 국내 기후와 맞지 않는 양봉법이라 국내 양봉가들에게 썩 좋은 책은 아니다. 그래서 박 대표는 국내 환경과 기후에 알맞은 '양봉 설명서'를 만들고 있다.

"도시양봉에 대해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 해외사례에 비춰 봤을 때, 주택 옥상에서 양봉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옥상은 작은 정원을 만들기 좋고 벌들이 날아다니기 편하죠."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 전시관, 백화점 등의 옥상에서 양봉이 진행되고 있다. 어렵게 양봉장을 만들 장소 구비 없이도 손쉽게 양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백화점 옥상에서 벌을 키운다고 하면 누가 그 백화점에 자주 출입할까?

어반비즈의 가장 먼저 할 일은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양봉 프로그램, 체험교육, 커뮤니티활동 등 문화콘텐츠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 강성호 씨는 "단순히 도시양봉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린이 교육에 많은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벌의 6차 산업(6차 산업이란 1차 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그리고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을 말한다)'이라는 큰 꿈을 갖고 있다. 단지 벌을 통해 수입을 얻고자 시작한 일이 아닌 것처럼 벌과 함께 공존하고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싶다는 박 대표와 사람들. 그들에게 벌은 아기와 같은 존재다. 아기는 손도 많이 가고 아프면 걱정되고 잘 성장하면 기분이 좋은, 바라만 봐도 행복한 그런 아기. 아기는 부모의 새로운 꿈이 되곤 한다.

벌을 키우며 열린사회를 만들고 싶은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다함께 잘 살고 싶은 그런 꿈. 박 대표의 '양봉이'(첫 출산 아기 태명)도 함께.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은 오는 17~18일 한강대교 노들섬 노들텃밭에서 도시양봉교육을 진행한다. www.facebook.com/urbanbeesseoul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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