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말한다. 신문은 사회적 공기다. 이 상식적인 사실을 굳이 환기해야 하는 것은 '한국일보 사태' 때문이다. 그 사실을 새롭게 상기하는 이유는 그 사실이 곧 사태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에 따라 사주는 모든 편집권을 기자단에 되돌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방법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신문을 사주가 사유화한 일은 세계 언론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일보 사주는 이 상식적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민주화 투쟁의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경험과 이성을 내재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 성원들은 한국일보 사태의 부당함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사태는 국가적 수치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안국동 로터리를 지나다 보니 백상기념관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 분명히 헐려나가고 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한국일보 사옥이 자취를 감추고 낯선 유리 건물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한국일보가 어느 건물로 셋방살이를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몇 년이 지났는데 사주가 용역을 동원해 기자들을 다 내쫓고 편집권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한국일보의 쇠락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뜻있는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경영이란 음양이 교차하는 것이고, '내정 불간섭'의 상식을 지키려는 예의였다. 그런데 한국일보의 경영은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겪더니만 급기야 이번 사태까지 야기하고 말았다.
한국일보 사주는 그런 사회의 예의 바른 침묵을 사회의 무관심이나 무신경으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신문사 경영권은 사주가 독점하고 있었고, 기자들은 기사를 열심히 쓴 죄밖에 없다는 것을 세상은 다 알고 있다. 그 경영 악화의 책임을 져야 할 사주가 오히려 기자들의 편집권을 박탈하고 나서다니, 이건 우리 사회 전체의 부끄러움이다.
5.16 직후에 각 신문의 구독률을 조사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일보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현재의 사주는 아시는가. 그 시절 한국일보의 신선한 열정을 독자들은 사랑했고, 그 열정의 발원지가 창업자 '장기영 사장'이었다는 것을 발 없는 소문은 퍼지고 퍼져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신문사 사장으로서 유난히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장기영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작가의 긴 소설의 연재가 몇 차례씩 중단되는데도 "기다려라. 작가는 기계가 아니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해서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게 한 장기영 선생의 일화는 유명하다. 내가 졸작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장기영 선생의 그런 정신이 한국일보의 문화 애호 정신으로 뿌리내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일보가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으니 가족 같은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어찌 한마디 아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세상은 지대한 관심 속에 한국일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 상태에서 사주는 모든 사감과 사욕을 버리고 창업자 장기영 선생의 영전에 머리 조아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쭤보기 바란다.
그 길은 단 하나다. 더 이상 선친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고 한국일보를 사회적 공기의 위치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언론이라는 중요한 기구를 사주 개인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신문도 살리고 가문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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