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일보 사주, 법원 결정마저 무시하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일보 사주, 법원 결정마저 무시하나

[기고] 한국일보 기자들의 싸움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

<한국일보>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기자들이 편집국으로 돌아갔으나 기사를 쓰고 신문을 편집·인쇄하는 일은 장재구 회장에 의해 좌절되고 있다. 신문 제작을 막지 말도록 한 법원 결정에도 불복하는 범법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장 회장이 드디어 17일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사주 비리로 인한 경영 파탄의 질곡을 끊고 제대로 된 '중도 언론'의 길을 걷겠다는 기자들의 염원이 하루바삐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 기대를 단지 <한국일보>에만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그를 넘어 한국 사회의 언론 생태계 전반 그리고 민주주의까지 전해지길 기원한다. 소통으로 쇄신하는 우리 사회로까지 이어지길 간절하게 바란다.

최근 민주주의 논의에서는 시민의 권력 박탈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시민들의 경제적 권력, 정치적 권력이 박탈당하고 있으며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진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기업의 인수 합병은 기업으로선 영리한 선택일 수 있지만 시민은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의 기회를 덜 누리게 된다. 기업이 더 낮은 임금 노동을 찾기 위해 해외로 옮기는 경우에도 시민의 경제적 권력은 박탈당할 처지에 놓인다. 경제적 권력 박탈의 심각성은 그것이 경제적인 사안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에 있다. 박탈은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지고, 시민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가정의 행복 및 개인의 자신감 저하 등으로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 비참여로 이어지는 일은 이미 경험한 바다.

정치적 권력은 어떤가. 정치적인 이득을 챙겨주려는 로비스트들이 느는 것과는 반대로 시민들의 정치적 권력은 갈수록 쪼그라든다. 유권자로 활약했던 시민들은 자신이 선출한 정치 권력으로부터 큰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 권력은 로비의 자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 로비를 체계적으로 해내는 대기업이나 특정 직업 집단의 이익에 공헌한다. 로비까지 동원하는 특정 권력으로 정치가 쏠림으로써 유권자 시민들의 정치 권력은 훼손된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정치를 신뢰하지 않고, 가볍게 대하고, 심지어는 포기하는 일에까지 이른다. 경제 사정이 나아져 경제 권력이 회복될 전망이 없듯이 정치적 권리가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순간이 당장 다가올 것 같지도 않다.

정치적·경제적 권력 박탈의 추이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대기업이나 정치 권력에 줄을 댈 잠재력을 가진 특정 직업 집단에 속하지 않는 쪽의 박탈감은 늘고 있다. 빈부 격차가 전에 비해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거나, 사회가 전에 비해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늘 지니고 있는 환경에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0세기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근대 사회에 심각하게 자신들이 지나온 성장의 시기를 돌아보려는 성찰이 생긴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일보 기자들을 응원한다
[박홍규] 회장 고발하자 직장 폐쇄…한국일보 사측의 불법 행위

[함성호] 한국일보 투쟁은 우리의 그릇을 지키는 싸움!
[장정일] 국정원의 점입가경과 <한국일보>의 막상막하
[이순원] 다시 <한국일보> 정기 구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윤태진] 장재구 회장, 한국일보는 당신 장난감이 아니다
[표창원] 한겨레·경향과 조선·동아 기자들이 한목소리 낸 이유

시민들의 정치·경제 권력의 박탈을 무엇 탓으로 돌려야 할까. 사회적 네트워크가 망가졌고, 그로 인해 정치적·경제적 권력의 박탈을 불평하고 불평을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에 그 탓을 돌리는 논의가 늘고 있다. 정치적·경제적 권력의 박탈은 결국 커뮤니케이션 공동체의 감소와 관련되었다는 말이다.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들이 펴는 커뮤니케이션 중심주의적 사고라는 비난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모바일 기기가 등장했을 때도 관심은 새로운 수단들이 사회 내 숙의적 소통을 가능케 할 것인가로 모였던 것을 감안해 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사회적 네트워크의 붕괴를 걱정하고 회복을 고민하고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과거에 비해 시민들이 소통 네트워크를 지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이 박탈당하는 것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언론인들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시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챙겨주고, 또 그 권력 챙기기의 기반이 될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녀왔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보수 매체든 진보 매체든 그 직업적 이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언론인들의 권력 또한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박탈당해 왔다. 그들의 직업적 자율성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적 지위도 하염없이 하락하고 있다. 시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챙겨주기 전에 자신들의 기본적 권력을 챙기기에도 바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시민들이 자신의 권력 챙기기에 소홀하고 세상에 냉담해지면서 덩달아 언론은 그 존재 가치가 희미해지는 소통 네트워크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시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력과 언론인의 사회 기여 권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사회적 소통 네트워크가 와해된 상황 이면에는 견제가 어려울 정도로 커버린 정부 권력, 관료 권력, 대기업의 권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권력에 줄을 대어 권력의 행진 말석에라도 서려는 언론 사주들이 있다. 끄트머리에라도 서야 사회적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더라도 권력 블록 내 같은 편으로 대접받고 영생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는 장재구 회장 같은 존재들이다. <한국일보> 사태는 단순히 사주와 기자가 나서 영역을 따지는 다툼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심하게 허물어져 내린 지금 시점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희미해지는 시민의 권력, 민주주의의 힘, 그리고 그에 기여해야 하지만 약해진 언론인의 힘과 권력 블록을 만들어 비민주적 사회 안에서 온갖 재주로 영원히 살려 하는 반사회적 세력 간의 다툼으로 파악해야 한다.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잃고 있는 시민의 역습을 기다린다. 정치 권력, 공권력과 언론 사주의 블록 만들기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역행하며 소통 네트워크, 공동체를 깨는 일인지를 절감하고 <한국일보>가 기자들의 손안으로 들어오도록 성원하길 제안한다. 신문의 일이 이미 시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력과 관련된 일임을 통감하고 적극적으로 성원하길 제안한다. 이미 긴 시간 충분히 싸워온 <한국일보> 성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개인적이거나 자사 이기적인 것을 넘어 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건강한 공동체 네트워크와 관련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진 만큼 더 힘내고 반드시 큰 뜻 이루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