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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수, 현대차 정규직…둘다 '귀족'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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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수, 현대차 정규직…둘다 '귀족'이라구요?

[현대차 희망버스 연속 기고 ②] 희망버스의 의미

7월 20일, 저는 현대자동차 "희망버스"를 타려고 합니다. 버스를 타고 이미 거의 300일 가까이 현대차 비정규직 분들이 싸우고 계시는 그 울산 송전탑 근처로 가서, 그들에게 뜨거운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사실, 제게 개인적으로 이렇게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은 좀 쉽지 않습니다. 멀미 문제도 그렇지만, 요통 등이 있어서 좀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꼭 그 "희망버스"를 타고 싶습니다. 그저 "인간적으로" 거의 300일 동안 고공 투쟁을 해오신 분들에게 마음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 이번 투쟁이 앞으로의 노동 운동과 사회 운동 전개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라는 생각이 있어, 어떻게든 여러 사람들의 성심을 모아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일이 "계급" 문제의 어떤 핵심적인 부분과 직결돼 있다는 것은 저의 느낌입니다.

우리는 통상 "노동자 계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신자유주의가 수십 년 동안 구미권에서, 그리고 거의 15년 동안 국내에서 각각 버틸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노동자 계급"을 철저하게 분산하고 파편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단결, 투쟁"을 함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내부 결속이 가능한 대자적인 "노동자 계급"이 있나요?

다소 심한 경우지만, "대학교"라는 "지식 경제"의 한 중요한 공장을 보시죠. 제가 한때 다녔던, 그때만 해도 "민족 고대"라고 부르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급진주의자들이 약간 보였던 고려대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인제 1억5468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약 1300만 원 정도인 셈인데, 거기에 비해서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평균적으로 한 달에 받는 120만-130만 원은 약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같은 자격증(박사 학위)을 가지고 같은 노동을 하는데 보수 차이가 10배라면 과연 "같은" 노동자일 수 있을까요?

거기에다가 전임 교수에게 주어지는 각종 지배층 포섭 기회(<조선일보> 기고부터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일까지)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대학의 경우에는 "노동자 계급"의 최상위가 이미 체제 안으로 완벽하게 편입됐다는 것을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포섭이 가능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시간강사에 대한 초과 착취로 얻는 잉여를 전임 교수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의 노조 조직률이 과연 왜 1.8%에 불과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강사는 그나마(그 월급이 시간강사 보수의 60-70%가 될까 말까 한 대학 청소 노동자 등 진지한 "최말단 비정규직"들과 달리) 그래도 언젠가 "귀족화"될 확률, 혹은 "귀족화"는 못 되더라도 정부 연구직 공무원이라도 될 확률이 좀 있기 때문입니다. 저학력 말단 비정규직들에게는, 그런 희망마저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주체는 요즘 과연 누굴까요? 맞아요. 학생들도 아니고 바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입니다.

한국에서 "교수"의 특수한 위치 등을 고려하면 대학은 좀 특별한 케이스긴 합니다. 그러나 경향은, "일반" 공장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현대자동차를 보시죠. 물론 그쪽 정규직 노동자들을 "귀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려대 정교수라면 아마도 "귀족"은 맞겠지만, 심하면 1년에 3816시간(!)까지, 즉 미국이나 일본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두 배(!)나 일해야 하는 현대차 노동자는, 궁극적으로 회사 주주들에게 그들의 돈벌이를 위한 "인간 기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손에 (살인적 노동의 대가이긴 하지만) 한 달에 270만-280만 원 가까이 주어집니다. "귀족"은 말도 안 되지만, 적어도 자녀들을 대학 보내고 가끔 동남아 휴가를 갈 정도가 되는, 중산 계층 하부층에라도 편입할 수 있는 수준의 돈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들의 임금은? 똑같거나 더한 수준의 살인적 노동이지만, 실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에서 150만 원 선이랍니다.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지요. 맞벌이를 하더라도, 100만 원 버는 노동자는 과연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가 쉬울까요? 그런 노동자에게 "바캉스"가 의미 있을까요? 그 노동자의 소속은 어디일까요? 맞아요. "중산층 하층부"도 아니고 도시 빈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안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세계들이 존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동자 계급을 파편화하는 자본이 이렇게 해서 그 "단결 투쟁"을 원천 봉쇄하려고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희망버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와 같은 자본과 국가의 "파편화 전략"에 맞서는 것은 그 의미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사무직, 생산직, 저학력층, 고학력층, 국내인, 외국인 따질 것 없이 우리 노동자들이 다 같이, 하나의 함성으로 자본가 측에다가 "Basta", "그만!"이라고 힘차게 외쳐보자는 것입니다. 대법원을 포함한 모든 공공 기관의 정규직 전환 관련 판결까지 무시하고 최악의 '갑질'을 그만하라! 비정규직 임금 착취로 그만 배를 채워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그만 무시하라! 노동자를 기계로 취급하지 말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에게 아직 힘은 미약합니다. 아직 대중적인 노동자 정당도 없고, 그 대신에 아직도 "섹트(sect)"의 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군소 좌파 정당 세 군데가 사회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정치력은 건설업주 조합 하나에도 못 미칠 것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희망버스의 "외침"은, 한국 노동자 계급의 단결 노력 역사에 새로운 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 버거운 일상이 있고 어려운 개인적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서 어렵더라도 타야 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연대, 만남 속에 생명의 힘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 글은 <레디앙> 등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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