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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폭로가 보여준 것: 언론의 타락과 미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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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폭로가 보여준 것: 언론의 타락과 미국의 몰락

[박인규의 지구촌 분석] "관제언론으로 추락한 美 언론"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28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지난 6월 23일 홍콩을 떠난 '세기의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6월 28일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공항의 환승구역에 머무르면서 중남미 국가인 에콰도르로의 망명을 추진 중입니다. 그의 '배신행위'에 분노한 미 당국이 22일 그의 여권을 취소하는 바람에 언제 그가 모스크바 공항을 떠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지난 9일 그의 폭로가 몰고 온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 관련 기사 : "구글·페이스북도 NSA 감시망…美 최고 정보기밀 폭로")

이번 폭로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곤경에 처한 모습입니다. 한때 미국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오바마'란 오명을 뒤집어쓰며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합니다. (☞ 관련 기사 : '스노든 폭로'에 지지율 급감…"조지 W. 오바마")

스노든의 폭로 직후인 지난 11~13일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전 53%에서 8% 포인트나 떨어진 45%로, 18개월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특히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17% 포인트나 떨어지면서 48%에 그쳤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통적 우방국인 독일마저도 미국에 등을 돌렸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베를린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위기와 시리아·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앞서 미국의 첩보 활동 문제를 우선으로 다뤘다"면서 "안보를 위한 정보수집이라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독일 <슈피겔>의 기사 제목은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였습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사찰에 대한 독일인들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관련 기사 :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인터넷감시국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중국도 미국 비판에 나섰습니다. 관영 <인민일보>는 "미국은 인권의 모범국에서 프라이버시를 도청하고, 국제 인터넷망에 대해 집중된 권력으로 조작했고, 다른 나라들의 네트워크를 침범한 미치광이"라고 맹비난하는 동시에 스노든에 대해서는 "미국의 위선을 찢어발긴 대담함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아가 홍콩시립대 조지프 청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해킹해왔다는 폭로로 서방권은 사이버 전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면서 "중국은 향후 대미 협상에서 이번 폭로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세기의 고발자' 처리 놓고 미·중 관계 삐걱?)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의 지도국가를 자처해온 미국은 우방국들의 신뢰를 잃는 한편 미래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도덕적 우위마저도 상실한 셈입니다.

앞으로 스노든 폭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다음 두 가지는 확실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첫째, 패권국가 미국의 몰락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우방국 독일 등의 반발과 경쟁국 중국 등의 비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렸던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이 스노든에 망명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언론인 스티븐 킨처는 지난 25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러한 상황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놀랄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Latin America is Ready to Defy the US Over Snowden and Other Issues)

킨처는 <뉴욕타임스> 특파원 출신의 언론인으로 미 CIA에 의한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 전복(1954년)을 고발한 <쓰디쓴 열매(Bitter Fruit)>의 공저자이며 19세기 말 하와이에서 2003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의한 13개 외국 정권 전복 사례를 다룬 <전복(Overthrow)>(2006년)의 저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반역 및 간첩죄'로 미 사법당국의 분노에 찬 추적을 받고 있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망명 수락 용의를 밝혔다는 것은 20세기의 중남미국가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에서부터 80년대 그레나다, 파나마 침공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킨처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차베스와 같은 일부 떠버리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다수 중남미 주민이 공유하는 열망이라고 지적합니다. 1990년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결국, 한때 중남미 국가들을 쥐고 흔들었던 미국의 영향력이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얘기입니다.

▲ 대니얼 엘스버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폭로"라고 평가한 NSA 내부고발자가 <가디언>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분까지 스스로 공개했다. 사진은 <가디언>이 제공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인터뷰 모습.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지난 2009년 워싱턴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미군 기지를 폐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미움을 받고 있는 또 한 명의 고발자,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에게 망명지(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은 자국민들의 지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게 킨처의 분석입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도 스노든 망명 허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26일 "어산지의 망명 허용 결정에 두 달이 걸렸다. 이번 경우에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에콰도르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까요? 그 경우 미국의 대응은 어떤 것일까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관련 기사 : Edward Snowden 'not likely to gain asylum in Ecuador for months')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언론의 비판정신이 완전히 실종됐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MSNBC의 PD 출신으로 현재 미 이타카 대학의 저널리즘 교수로 있는 제프 코언은 이번 스노든 사건에 대한 미국 주류언론의 보도 태도가 관제언론과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 관련 기사 : Snowden Coverage: If US Mass Media Were State-Controlled, Would They Look Any Different?)

스노든의 폭로를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정부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를 매국노로 단죄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 기자이며 CNBC방송의 단골 토론자인 앤드류 로스 소르킨은 "젠장, 우리는 일을 완전히 망쳤어. 심지어 스노든이 러시아로 도피하도록 놔뒀잖아"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소르킨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언론인이 아니라 CIA나 FBI에 근무하는 정부관리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주류언론은 스노든에 대한 옹호 발언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 토론의 경우 "스노든은 매국노니까 당연히 감옥에 쳐넣어야 해"(강경파)와 "그의 의도는 선했지만 그래도 잡아넣어야 한다"(온건파)로 갈려 논쟁하는 정도라는군요. <타임> 여론조사 결과 '스노든의 폭로가 좋은 일'이라는 반응이 미 국민의 53%, 특히 18~34세에서는 70%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은 주류언론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스노든의 폭로를 <가디언>에 특종 보도한 글렌 그린왈드 기자가 블로거 출신임을 지적하면서 이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은 독립언론의 몫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린왈드는 독립 블로거 출신으로 미국 인터넷언론 <살롱>을 거쳐 지금은 <가디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말한 소르킨은 그린왈드 기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고 하는군요. 이른바 언론인이, 진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언론인을 구속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미국 주류언론의 실상입니다.

사실 요즘 미국의 주류언론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고(<뉴욕타임스>)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워싱턴포스트>) 1970년대와는 매우 다릅니다. 코언 교수의 지적대로 관제언론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미 이라크 침공의 중요한 근거가 된 <뉴욕타임스>의 '이라크 핵무기 개발(우라늄 농축)' 보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이 신문의 주디스 밀러 기자는 특종이라는 정부 관리의 유혹에 넘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를 보도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은 아프간 등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이른바 Long War) 계속함으로써 귀중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를 해방함으로써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영향권 안에 두어 세계 패권을 영구화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입니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군사적 일방주의에 나서게 된 데는 부시 정부의 전쟁 정책을 독립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하기보다는 무비판적으로 따른 주류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언론의 타락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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