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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대표로 대통령상 받았는데 이젠 '유령'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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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회사 대표로 대통령상 받았는데 이젠 '유령' 취급?

[박점규의 동행] 세상에 하나뿐인 차를 만들며 가슴 벅찬 막내 조합원

1980년에 태어난 유제선은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중 막내입니다.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보다 스무 살이나 어립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에서 일한 경력은 10년이 넘습니다. 쌍용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인 유제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가장 오래 일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가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정규직인지 사내 하청인지 파견직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2년 동안 차체부에서 용접을 하다가 2003년 9월 조립부로 옮겨 체어맨과 로디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시트를 차에 조립하는 일이었습니다.

조립 라인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뒤섞여 일했습니다. 무거운 자동차 시트를 조립하는 일은 비정규직이 했고, 바로 옆에서 핸들이나 범퍼를 다는 일은 정규직이 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최고 부자들이 타고 다녔던 체어맨을 9년 동안 만들었지만 그는 한 번도 타보지 못하고 2009년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회사는 사내 하청 노동자 350명을 먼저 쫓아내고 정규직 노동자 2646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된 후 4년이 흘렀고, 스물둘에 자동차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서른넷이 되었습니다.

22세에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다

며칠 전 그는 깨끗이 다려 놓은 작업복을 꺼내 입고 선배들과 함께 용인의 어느 공장에 갔습니다. 공장 안에는 코란도 차체와 자동차 부품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4년 만에 목장갑을 끼고 임팩트를 들었습니다.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제선 씨는 자동차 부품을 들어 하나씩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9년 동안 체어맨과 로디우스를 만들었던 손끝의 감각이 금세 살아났습니다.

15년, 20년을 일했던 선배들은 훨씬 능숙했습니다. 코란도는 처음 만져보지만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제선 씨는 지금 당장 공장으로 돌아가도 하루 이틀이면 금방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선 씨와 동료들은 코란도를 만들었습니다. 임팩트를 내려놓고 싶지 않을 만큼 흐뭇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선 씨가 더 행복한 이유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위해 이름도 모르는 시민들이 마음과 정성을 모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부품을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4년 만에 목장갑을 끼고 임팩트를 들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350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 2646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후 현장에 조금씩 사내 하청을 늘려왔습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직접 생산 207명, 생산 지원 254명, 청소 경비 318명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779명까지 늘었습니다.

여기에 회사는 5월 주야 맞교대로 전환하면서 82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추가로 뽑아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는 86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회계 조작을 통해 부당하게 정리해고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뽑아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

정규직 이마트를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쌍용차는 비정규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아마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고 시민들의 연대나 사회적 관심이 없었다면, 무급 휴직자들은 복귀하기 어려웠을 테고 비정규직은 훨씬 더 늘어났을지 모릅니다.

▲ 쌍용차 평택공장과 창원공장의 협력업체 현황. ⓒ박점규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861명으로 늘어

제선 씨를 포함해 쌍용차 사내 하청 노동자 4명은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근로자파견법에 따라 2년이 지난 후부터 쌍용차 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입니다.

2011년 4월 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소송을 낸 지 2년 넘게 지났습니다. 5월 결심 공판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다급해진 회사는 갑자기 사내 하청 노동자 4명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쌍용차에서 최소 6년 이상, 10년 가까이 코란도와 렉스턴, 체어맨을 만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유령인 셈입니다.

쌍용차 비정규직 서맹섭 지회장은 2003년 9월 23일부터 평택공장 차체부에서 7년 동안 정규직과 함께 일했고, 쌍용차 차체 2팀 대표로 정규직과 함께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31회 국가품질경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서맹섭 지회장은 경기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5년 전국대회에서 대통령 은상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쌍용차 대표로 정규직과 함께 품질대회에 내보내 대통령상까지 받았고, 자신들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은 노동자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노동자들이 유령인지 사람인지는 오는 6월 20일 열리는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심공판과 7월로 예정된 1심 재판에서 확인될 것입니다.

쌍용차 대표로 대통령상 받은 노동자를 모른다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정리해고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고, 정리해고법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6일 재벌 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고용 안정을 위해 기업의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논의됩니다. 정리해고의 조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범위를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자는 내용입니다.

또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추진하기 전 자체 수행해야 하는 의무 조항도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노동자 대표에게 해고 사유와 해고 회피 노력, 해고 대상자 기준, 해고 예정 인원 등을 통보하도록 개정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 법안, 6월 임시국회 쟁점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한다고 해도 사용자들은 법안을 교묘하게 피해나갈 것입니다. 우선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해고할 것입니다. 이어 영업 손실을 과장하고, 회사가 금방 망할 것처럼 회계를 조작한 후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리해고를 신청할 것입니다.

회계 조작을 통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만들어내고, 아무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로 내몰아 24명의 노동자와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자동차가 명백한 증거입니다.

회사가 어려워져 정리해고를 한 회사 중에서 '사장님'이 파산해 알거지가 되었다거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해외의 차명 계좌로 회사의 돈을 빼돌린 '사장님' 일가의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야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이유로 만들어진 정리해고법을 일부 개정할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법을 없애는 논의를 해야 합니다. 약속한 국정조사를 실시해 회계 조작을 통한 정리해고를 한 쌍용차 사용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정리해고를 막는 길입니다.

▲ 코란도를 재조립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정리해고 요건 강화해도 교묘하게 빠져나갈 사장님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중 막내인 제선 씨는 6월 7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정성과 마음이 한 땀 한 땀 모여 만들어진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과 웃음이 담긴 자동차, 작가들의 혼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자동차가 서울광장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관련 기사 : 쌍용차 해고자들 "반갑다 코란도…솔벤트 냄새도 친근")

제선 씨는 세상에 하나뿐인 자동차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네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엄마, 아빠의 실직으로 힘들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 동료들이 힘을 모아 해고를 막아낸 사연, 하루하루 땀 흘리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모두 쌍용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해고 생활 4년 동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제선 씨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이름 없는 시민들의 따뜻한 연대였습니다. 지난 3월 3일 쌍용차 분향소에서 자다가 방화범이 낸 화재로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대한문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데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함께 지켜주고 함께 싸워준 사람들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막내 제선 씨는 정규직으로 복직되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만 명의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2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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