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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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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

[연속 기고 - 론스타 ⑥] 일관성도, 투명성도 결여된 ICSID

2012년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은 끝났지만, 론스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2012년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② 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③ 전두환 정부는 미국 무기 회사에 얼마를 건넸을까?
④ '제2의 론스타'로 가는 지름길 민영화, 박근혜는…
⑤ 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오래전,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형사법원에 취직하여 우리의 국선 전담 변호사와 비슷한 Public Defender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첫 번째 사건으로 폭력 사건을 배당받았다. 단순범죄 사건이려니 싶어 긴장을 풀고 검찰의 기소장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무려 다섯 가지 다른 형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살인기도, 가중폭력, 단순폭력, 폭력 모의, 심지어는 풍기문란까지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선배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신경 쓸 것 없단다.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입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단 걸 수 있는 모든 혐의를 걸어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 파는 만물상도 아닌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츰 적응해 갔다. 론스타가 최근 대한민국 법원을 종횡무진하며 소송의 달인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기억이었다.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를 제기하자, 국민 여론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로 향한 이 국제중재재판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하지만, 드물게 알려진 바처럼, 론스타는 ISD뿐만 아니라 국내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외환은행 주식매각 시 원천징수한 3915억 원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이 있다. 현재 ICSID에 제소한 내용 중 일부와 동일한 조세 관련 사안이다. ICSID에서 금지하는 중복제소의 의혹이 드는 부분이다. 동시에, 론스타는 동일한 사안으로 국내 법원에서 피소하기도 했다.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밝힌, 국회의원 김기준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헌법소원과, 참여연대가 론스타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부당 이익 환수 소송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론스타는 이미 재미를 보았다. 론스타는 2004년 스타타워 매각 시 세무서가 부과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와 16억 원의 법인세에 대해서도 지난 2007년 이래 끈질기게 소송을 제기한 결과, 대법원에서 2012년 1월 1000억 원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16억 원에 대해서는 기어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밖에도 더 있다. 조금 다른 사안이기는 하지만, 부산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에서 생긴 손실에 대해 예금보험공사와 얼마 전까지 300억 원대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단한 집념이다.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국제중재재판을 신청했으면 그만이지, 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기대는 것일까? 답은 서두에서 밝힌 검찰의 기소 유형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 모든 법률적 대응을 다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사법구제절차를 이용할 테면, 도대체 ICSID에서 벌이는 ISD 중재재판은 왜 필요한 것일까? 대한민국 법원이 론스타에 편파적인 판정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스타타워 매각 시 징수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에 대해서 대법원은 이미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법원에 대한 일정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ISD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는 불필요한 제도인 셈이다.

국제투자법 전문가인 제스왈드 살라쿠제(Jeswald Salacuse) 교수가 "선진국 간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이라는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호주-미국 FTA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법치가 이루어진 국가 간에는 국내 법원의 구제절차로 국제투자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거듭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며 법치주의가 서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ISD가 필요하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론스타의 마구잡이 국내 소송을 보면서 ISD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시스

론스타의 전 방위 소송이 가능한 이유

론스타의 이러한 전 방위적 소송 전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국제중재재판의 사각지대(loophole) 때문이다. 중복제소에 대한 판단의 복잡성과 ICSID의 적극적인 재판관할권 확보 때문에 이길 때까지 가볼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는 것이다.

ICSID 협약 제26조를 보면 중복제소는 금지되어 있다. 이 점은 이어지는 협약 해설집(Report of Executive Director), 제32조에도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3915억 원 양도세 취소를 위해 론스타가 제기한 국내 행정소송의 당사자는 ISD 소송 당사자와 동일한 LSF-KEB 홀딩스 SCA이다. 차이는 ISD 소송의 당사자가 추가 5개 회사를 포함하여 총 6개의 회사로 이루어졌다는 점뿐이다. 근거가 되는 법률 또한 '은행법', '증권거래법', '조세법' 등으로서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소송이 ICSID와 국내 법원에 제기되어 사법권의 충돌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 사안은 중복제소로 판단함이 마땅하고 둘 중 하나는 취하되거나 각하되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ICSID에서 두 사건의 당사자가 다름을 들어서, 혹은 사안의 경미한 차이를 들어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ICSID에서 중복제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다룬 대한민국 사법주권의 무력화가 현실이 되며,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이길 때까지 재판을 할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소송에 임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전략은 중복제소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일 ICSID가 중복제소라는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소송이 각하되어야 할까? ICSID에 제기한 론스타의 ISD 소송이 각하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미 국내 법원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ICSID는 자신의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다소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실례로, 국제검증기관인 스위스 SGS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ICSID에 제소한 ISD 사건을 보면 드러난다. SGS는 파키스탄에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사전 검역과 관세 품목 지정에 관한 심사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1994년에 파키스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의 말미에는 분쟁이 발생할 시 오직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만을 이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1996년 분쟁이 발생했고, 2000년 파키스탄 정부는 국내중재재판소에 SGS를 제소하였다. 이에 2001년 SGS는 ICSID에 파키스탄을 제소하였다. 양 당사자가 1996년 체결한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 조정은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소로 국한함을 들어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의 대법원에 SGS의 ICSID 제소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고 대법원은 파키스탄 정부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한데, 동시에 SGS는 파키스탄 중재재판을 중지할 것을 ICSID에 요청하였고, ICSID는 SGS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파키스탄 사법부와 ICSID가 진검승부를 벌인 것이다.

결과는 ICSID의 승리였다. 분명히, 계약서에는 분쟁 조정을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으로 국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ICSID에서 진행되었고 결국 사건은 2004년 합의로 종결되었다. 파키스탄이 돈을 물어주었다는 얘기다. 이게 다가 아니다. SGS는 유사한 사안으로, 2002년 필리핀에 대해서도 ICSID에 제소하였고 2008년 합의를 이끌어냈다. 두 사건의 사안은 계약 분쟁이었고, 재판관할권은 국내 법원으로 한정했음에도 투자사건으로 해석되어 ICSID로 향했다는 지점에서 당혹스럽다. 개인적으로는, 1984년 콜트사가 대한민국을 ISD로 제소하여 ICSID에서 합의로 끝난 사건에도 이와 유사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중국 농산물 검역에 관한 서비스를 SGS에 의뢰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ICSID의 재판관할권에 대한 적극적인 유권해석은 론스타 사건이 결국 ICSID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3인으로 구성된 ICSID 중재재판부는 왜 이렇게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적극적일까? 그때그때 다른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 재판부가 자신들의 부와 명성에 집착한 사욕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제 투자 보호에 대한 중재재판부의 경향성일 성싶다. 어떤 점에서 보면, ICSID의 자기 존재감에 대한 적극적인 발현 의지로도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ISD만큼 생소한 이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는 그렇다면 어떤 기구인가?

▲ ICSID 홈페이지. ⓒICSID

ICSID가 공정? 일관성 없고 오판 위험 높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전후 세계 경제구도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44개 국가, 700여 명의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라는 작은 휴양도시에 모였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을 만들었다. 전쟁의 일등공신 미국과 여타의 승전국들이 자기식의 시스템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ICSID가 설립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개점 이후 거의 휴업 상태였던 ICSID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인 1996년이다. 그 후 수많은 투자 사건을 재판하면서, ICSID는 단기간에 성장하였다.

하지만, 단기간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ICSID 판결 내용의 일관성의 문제나 재판의 공개성 여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2011년 발표된 OECD 보고서를 인용해 보면, 먼저 ISD를 통한 투자자 국가제소 중재 재판이 일국의 공공정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재재판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중재재판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시인하면서, 그런 점에서 OECD가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ICSID의 중재재판 절차법에 의하면, ICSID의 판결은 선례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 점은 WTO 중재재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견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서 마음대로 결정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아는 재판부로서는 근거 없이 무리한 법적 해석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에 비슷한 사건을 다룬 이전의 판례가 있다면 재판부는 이를 인용할 것이다. 한데, ICSID에 사건이 몰린 시점은 최근 10여 년이라서 여전히 판례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재판부에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FTA가 일견 해결책이 되고 있다. 미국의 판례법을 그대로 FTA 조항에 인용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간접수용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미국과 맺은 FTA 조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이다. 분쟁이 생기면 법 조항의 해석이 항상 문제가 되는데, 그럴 때 이 조항을 해석해 놓은 미국의 판례법을 참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ICSID의 재판부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베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미국의 판례법에서 그러한 조항에 대한 해석을 참조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 변형해서 자신들의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미국의 판례법에 기인한 조약 해석의 경향은 당분간 꾸준히 진행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 길이 ICSID가 그동안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간 ICSID에 쏟아진 가장 많은 비판은 판결의 일관성 문제였다. 매번 재판부가 다르게 구성되는 특성과 근거가 되는 각각의 조약이 상이한 점 때문에 재판부마다 법 해석에 있어서 조금씩은 다른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WTO 중재재판부처럼 항소재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비판을 ICSID가 모를 리가 없다. ICISD 사무총장 또한 "궁극적으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고심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판례법이 그대로 이식된 FTA의 경우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손쉬운 대답을 중재재판부에 제공할 것이다.

론스타 ISD 소송의 주된 주장은 공정한 대우, 비차별적인 조치, 수용에 대한 보상과 같은 전형적인 투자 분쟁 사건의 내용이며, 미국 주도의 FTA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는 내용들이다. 과연 ICSID 재판부가 기존의 ICSID 판례와 미국의 판례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게 있다. 이처럼 일관성과 투명성의 결여 그리고 단심으로 인한 오판의 위험을 안고 있는 ICSID 국제중재재판 법정에 대한민국이 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론스타가 이미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우리의 국내 사법구제 절차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ISD는 표준약관과 같은 것이고 ICSID의 재판은 공정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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