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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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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연속 기고 - 론스타 ⑤] 지방자치단체와 ISD

2012년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은 끝났지만, 론스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2012년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② 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③ 전두환 정부는 미국 무기 회사에 얼마를 건넸을까?
④ '제2의 론스타'로 가는 지름길 민영화, 박근혜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친다는 중국의 전술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한참 뜨거웠던 2012년 11월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을 때 떠오른 말이었다. 어쩌면, 론스타라는 오랑캐를 이용해서 ISD라는 오랑캐를 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대한민국은 ISD로부터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하던 근거 없는 낙관론이 무너지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주류 정치권 어느 진영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ISD 문제에 대해 대선 후보들의 진일보한 입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슈는 부각되지 않았고 국민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을 해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전히 피부로 다가오는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일 성싶다.

그렇다면 좀 더 피부로 다가오는 사안들을 얘기해 보자.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이다. ISD 문제는 외환은행 매각으로 발생한 론스타 소송과 같이 중앙정부와 관련된 거대한 소송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 멀리 경남 남해군에 화력발전소가 지어졌다면, 경북 영주의 수돗물 민영화가 현실화되었다면, 그리고 동네의 코스트코 주말 휴무를 서울시가 계속 강제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이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순기능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자체의 순기능이 ISD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1년 미국의 메사전기회사(Mesa Power Group)가 지방정부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캐나다를 상대로 제소한 ISD 사건이 있다. 에너지 재생산 프로그램 운영 시 일정량은 지역 생산할 것을 지자체가 강제하자, 해당 기업이 '이는 외국투자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반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메사전기회사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8000억 원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사건은 아직 계류 중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 지자체에도 유사한 조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1년 고양시는 시가 발주하는 공사 계약에 대하여 50% 고양시민을 고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의 조치가 법적 분쟁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먼저 국내의 사법 구제 절차에만 한정해 보자. 고양시민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와 관계가 좋은 A사가 있고, 이와 대조적으로 작업 인력의 대부분을 서울시민으로 충당하는 B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B사는 고양시의 이러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 판결 내용에 상관없이 사건은 국내에서 종결된다. 하지만, B사가 외국인 건설업자일 경우, 혹은 외국인 투자자가 B사의 주식을 일정 지분 소유하고 있을 경우를 상정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외국인 투자자는 곧바로 ICSID로 직행할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ISD가 이제는 골목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뉴시스

지자체는 ISD로부터 안전? 정부의 이상한 논리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지방자치단체는 ISD 소송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2012년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행된 "한미FTA 주요 내용"을 보면, "ISD 대상으로서 협정상 의무 위반 외에 투자 계약 및 투자 인가 위반 사항을 포함(제11.16조)"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투자 계약은 중앙정부와의 계약에 한정하고 지방정부 및 국영기업체는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FTA 주요 내용", 96페이지).

이러한 입장은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이다.

외교통상부는 서울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을 둘러싼 서울시와 '메트로 9호선' 간 갈등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외국인 간 계약은 ISD 제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지자체 계약은 국가소송 성립 안 돼" 외교부, 일부 주장 반박, <동아일보> 2012년 4월 14일)

이러한 주장은, 일견 지방자치단체는 ISD 소송에 대해 면책권이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미FTA 제11장 제1절 제3조(제11.1.3조)를 보면, 투자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투자유치국의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11.1.3. 이 장의 목적상,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라 함은 다음을 말한다.
가. 중앙 지역 또는 지방 정부와 당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 그리고
나. 중앙지역 또는 지방 정부나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여 비정부 기관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

이 조항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ISD 소송의 당사자 자격은 당사국인 투자 유치국이다. 즉, 중앙정부를 의미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당사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위 조항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의 내용은 광범위 하다. 지방정부나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 기관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소송의 원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주정부의 조치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가 ISD 소송을 하면 주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관계자도 "ISD의 피소 당사자는 중앙정부로 지자체가 될 수 없으며 그 책임 또한 중앙정부가 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시가 ISD 영향평가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자, 정부가 이에 대해 반박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서울시의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부분이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에 대해 "미국 기업이 지방자치단체를 ISD 제소할 가능성이 급격히 늘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법무부 법무실장은 "ISD의 피소 당사자는 중앙정부로 지자체가 될 수 없으며 그 책임 또한 중앙정부가 진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엔 ISD 소송 못 건다", <중앙일보> 2011년 11월 9일)

지자체의 조치, ISD 사유 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미성년자의 과실에 대해서 부모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민법의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미성년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소송의 원인 제공자는 되는 경우이다. 지자체가 취하는 모종의 조치가 ISD 소송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당사자는 중앙정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자체는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니 ISD 소송을 신경 쓰지 않고 어떠한 조치도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은 지자체의 조치로 인한 ISD 소송의 비용은 고스란히 중앙정부에서 충당할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ISD 소송은 "중앙정부와의 계약에 한정"한다고 하는데, 한미FTA 제11.16조 어디에도 ISD 소송의 근거는 "중앙정부와에 계약에 한정"한다는 문구는 없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는 앞 다투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코트라 외국인투자통계시스템의 발표에 의하면, 서울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7년 1842건, 2008년 1721건을 비롯하여 해마다 약 1300여 건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위하여 인센티브까지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외국인투자 지원조례 제15조, 제16조에 의거하여, 외국인투자비율 30% 이상 외국인투자기업 중 고용인원 10명을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1인당 월 100만 원씩 최대 6개월분을 기업당 2억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기업이 R&D센터를 유치할 시, 외국인투자촉진법 제14조의 2, 서울시 외국인투자지원조례 제14조에 의거,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을 현금 지원한다. 국비 40%, 시비 60%의 비율이다.

인센티브는 비단 이러한 서울시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지역인 인천광역시나 경기도의 경우, 부지 제공이나 세금 감면은 기본 옵션이며, 서울시와 같이 현금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센티브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이 지자체의 사정에 의해 어느 날 중단되거나, 혹은 형평의 문제에 의해 변경되는 경우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혜택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제공하면서도 이제는 되려 ISD 소송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애초의 약속을 지키면 될 것 아니냐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이나 교통과 같은 공공정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조치에 대해서도 ISD 소송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수도권과는 다르게 지방에 유치된 외국인 투자의 경우 화학제조와 같이 환경에 예민한 산업들이 다수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친환경적인 조례를 제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외국인투자회사는 투자 환경의 변화로 인해 투자에 손실을 입었다며 간접수용을 들어 ISD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멕시코 지자체의 환경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여 180억 원을 배상받은 미국 회사 메타클레드를 생각해 보면 쉽게 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18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서 '교통정책과 관련한 ISD 소송이 현실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후보자가 민자로 건설된 거가대교와 마창대교의 반값 통행료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2007년 캐나다 정부가 제정한 "국제 교량과 터널에 관한 법"에 의해 통행료가 규제 대상이 되자, 미국 투자자인 디트로이트 국제 교량 회사가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사건이 떠올랐다. 외국인 투자가 섞여 있을 것이 거의 당연시되는 민자 교량에 대해 통행료를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 전에 후보자들이 자본 구성 비율에 대한 분석이라도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모든 사항이 지자체가 외국인 투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비는 중앙정부가 일차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법적 네트워크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울러 지자체의 조치로 인한 ISD 소송 시 재정 부담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ISD 소송의 당사자는 대한민국이지만, 지자체의 행정조치나 조례에 근거한 소송인 경우 지자체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연재가 일주일 정도 지연되었다. 대선 결과에 대한 국민적인 반응이 극대화되던 시점에 ISD 관련 연재가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였다. 그 와중에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자들끼리 게임을 해서 완장을 차고 제한된 시간 동안 리더 역할을 하는 내용이었다. 독재자부터 무개념 리더까지 다양한 리더십이 교차하는 동안, 두세 명은 여전히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노역(?)을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리더가 바뀌어도 우리의 삶은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한다. 이 땅의 민초들을 암시하는 대사이지만, 동시에 내게는 ISD 이슈를 연상시키는 지점이었다. 오십보백보 차이로, 정치권의 어느 진영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이슈는 그래서 계속 제기되어야 하며, 연재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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