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일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이 논란거리다. 최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정부가 직접적인 재정 지출을 하지 않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채권 발행을 통해 채무 불이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지출이 없다는 박 후보의 주장과 달리 이 기금에 사실상 국민 세금이 투입돼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이에 대한 반론을 보내왔다. 지난 12일 <프레시안>에 게재된 김상조 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박이다. (☞관련 기사 : 세금을 세금이라 부르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 <편집자> |
가계부채 1000조 원, 채무불이행자 320만 명. 차기 대통령의 과제를 이 보다 더 잘 요약해주는 통계는 없다. 소득양극화, 부족한 일자리, 과잉경쟁의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이 만연한 경제에서, 상당수의 경제주체는 빚을 내게 되고 다시 그 중 상당수는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되면서 만들어진 숫자다.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상호작용한 합작품이고, 대선후보의 경제공약은 이 두 수치를 줄이는데 목표를 두어도 좋다.
두 개의 수치를 줄이려면 각각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가계부채 1000조 원을 줄이려면 경제의 근본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세 대선후보는 공통되게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대표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모두 서민이 빚을 늘려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뜻이므로 좋아 보인다.
그렇지만 채무불이행자 320만 명을 줄이려면 구체적인 미시 처방이 필요하다. 채무불이행자가 신용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최근까지 두 가지였다. 법원 판결을 통하는 방법, 금융회사들이 운영하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두 방법을 통한 신용회복자는 연평균 25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채무불이행자 320만 명에 비하면 족탈불급, 언 발에 오줌이다. 보다 다양한 신용회복 경로가 모색되어야만 한다.
그런 가운데 2008년 재미있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할인하여 사들이고, 채무불이행자에게는 채무를 30% 감면해 줄 테니 갚도록 독려하였다. 이른바 '배드뱅크' 프로그램이다. 그 결과가 지난 달 노회찬 의원에 의해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캠코는 약 20%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신문기사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경제적 불행으로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채무자에게는 '갚을 수 있는 최대한'을 갚도록 하고 나머지는 면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갚을 수 있는 최대한'의 판별이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그 것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캠코 사례는 채권자 동의 아래 50%까지는 채무감면을 하면서 손실을 보지 않고 배드뱅크 운영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 조성을 골자로 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
지난 11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기금' 방안을 발표하였다. 핵심은 성공적인 캠코 프로그램을 현재의 3500억 원 수준에서 18조 원 규모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또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전제로 해서, 채무 감면율을 최대 50%까지 허용하겠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불법추심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의 공약인지를 차치하고, 320만 채무불이행자 문제를 고민하며 기존 제도의 성과를 평가하여 왔음은 분명한 대책이다. 검토해볼 만한 그림이 나왔으니 이제 금융 전문가들이 운영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차례다.
그런데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데 이를 숨긴다고 비판하는 일부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과연 그런가. 두 개의 '만약에'라는 가정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기금'에 손실이 발생한다면, 또 만약에 그 손실을 정부재정으로 메꿔준다면. 물론 두 개의 '만약'은 실현될 수도 있다. 과거 캠코의 성공사례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10%의 확률로 2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이 손실을 모두 정부재정이 부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10% 확률로 2조 원의 재정부담이 있을 수 있으니 320만 채무불이행자 문제는 덮어 두자는 주장을 하여야 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굳이 세금을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이 10%의 확률을 줄일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맞다. 저축은행 사태에서처럼 부실금융회사에 무작정 자금을 지원하자는 것도 아닌데, 이도 저도 생략된 채 국민세금을 내세우는 비판은 진영논리에 의한 트집 잡기로 보여 안타깝다.
'신용회복'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질문이 9만1000건 가까이 끝없이 이어진다. 답변마다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의 조회도 기록되어 있어, 신용회복을 꿈꾸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가늠케 한다. 채무불이행자 문제는 진영논리로 접근하기에는 정말 부적절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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