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무역, 달콤한 기적 ① 열살짜리 꼬마가 맨발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까닭 ② 식수도 없이 굶주리던 그들에게 어느날… |
육중한 소리가 날 때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농장에서 운반된 사탕수수가 대형 즙착기(사탕수수를 으깨 즙을 짜내는 기계)에 들어갈 때마다 '철컹' 소리가 반복됐다. 그 소리에 맞춰 즙착기에서 나온 사탕수수 즙액은 파이프를 통해 커다란 용기로 이동했다.
커다란 용기로 이동한 즙액은 함께 포함된 사탕수수 찌꺼기를 침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 뒤, 사탕수수 껍질과 야자수 나무 등을 땔감으로 즙액을 가열시킨다. 즙을 가열하면 상당수 수분은 증발하고 이내 걸쭉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의 즙이 2000L까지 모이면 천연유기재인 'LIME(라임)' 1kg을 넣는다. 라임은 즙 내에 있는 찌꺼기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을 2~3차례 반복한다.
그 뒤 탁구대만 한 알루미늄 판에 용액을 쏟은 뒤, 삽으로 걸쭉해진 즙을 지속해서 휘휘 젖는다. 약 30분 정도 끊임없이 휘저으면 걸쭉한 즙은 이내 고체가 된다. 그러면 이 고체를 채에 거른 뒤 포대에 담아 운반한다. 설탕 '마스코바도' 제작 과정이다.
▲ 마스코바도를 만들기 위해 사탕수수를 자르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
영양가 만점인 마스코바도
마스코바도는 스페인어로 '근육'이라는 뜻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힘을 써야 한다. 제조법은 스페인이 필리핀을 지배했을 때, 자신들이 이 설탕을 먹기 위해 필리핀 원주민들에게 가르쳐주면서 필리핀에 전파됐다고 한다.
정제 설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에 좋은 게 마스코바도다. 비정제 설탕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흰설탕, 황설탕, 흑설탕 등은 정제 설탕이다. 정제 설탕은 사탕수수에서 설탕 성분만을 추출한 뒤, 비당분 성분을 제거하고 열을 가해 녹이고 탈색시키는 정제과정을 반복한 끝에 만들어진다.
간혹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오해다. 정제과정을 거친 후 캐러멜색소를 넣어 만든 게 시중 흑설탕이기 때문이다. 흰설탕과 비교해서 옷 색깔만 다를 뿐이다.
정제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의 즙액을 여러 단계 화학적으로 가공하여 생산된다. 이 공정과정을 거치면서 90%에 이르는 섬유질과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이 모두 제거된다. 따라서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단지 열량만 낼 수 있을 뿐이다.
반면, 비정제 설탕은 원심분리를 통해서 비당분성분만을 제거한 것이다. 그 이상의 정제과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색도 인위적인 색이 아닌 사탕수수 색을 가지고 있다.
비정제 설탕은 사탕수수 즙을 낸 뒤 그대로 졸여서 얻은 것으로 화학적인 여과 용매는 전혀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탕이 된 후에도 자연성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설탕이다. 이에 정제된 설탕은 칼슘, 인, 마그네슘, 철, 단백질 등의 성분이 제로인 반면, 비정제 설탕은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생산자-소비자 모두 '윈윈'하는 마스코바도
특히 두레생협과 민중무역을 진행하고 있는 ATC(Alter Trade Corporation)는 마스코바도는 재료가 되는 사탕수수를 유기농으로 생산해 화학비료로 키운 사탕수수와는 구별된다.
네그로스 섬에서 두레생협과 민중교역을 진행하는 14개 농가는 유기농으로 키운 사탕수수를 마스코바도 제조회사인 ATMC(Alter Trade Manufacturing Corporation)에 보낸다. ATMC는 사탕수수 1kg당 1500페소(약 3만7500원)를 농민에게 지급한다.
ATMC는 2005년 네덜란드 NGO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약 8억 원의 돈을 빌렸다. 작년에 공장 건축 비용을 모두 갚았다. ATMC 관계자는 "유기농으로 키운 사탕수수를 이곳에서 마스코바도로 제작한다"며 "여기서 제작한 마스코바도가 한국으로 수출됨으로서 농민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은아 APNET 대표이사는 "두레생협회원이 질 높고 믿을 수 있는 설탕을 먹을 수 있고, 그러면서 필리핀 농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게 마스코바도이다"라고 말했다.
▲ 사탕수수 즙액에 야자수 나무 등을 태워 열을 가해 뒤, 일정정도 쫄여지면 탁구대 크기의 대형 알루미늄 판에 즙액을 뿌린다. 쫄인 즙액을 알루미늄 판에 붓고 있는 장면. ⓒ프레시안(허환주) |
▲ 쫄인 즙액을 30분간 삽으로 뒤섞으면 이내 고체가 된다. 삽으로 뒤섞고 있는 장면. ⓒ프레시안(허환주) |
▲ 고체는 채로 걸러 입자에 따라 분리한다. ⓒ프레시안(허환주) |
▲ 얇은 입자의 고체를 마스코바도 마크가 찍힌 봉지에 넣으면 마스코바도 설탕이 완성된다. 행여나 공정 과정에서 철이 들어갔을지 모르기에, 포장된 마스코바도는 철 성분 포함 유무 검사를 더 거친다. ⓒ프레시안(허환주)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