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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빼는 재주 없던 박정희 정권이 '용' 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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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빼는 재주 없던 박정희 정권이 '용' 된 비결

[왼쪽에서 본 경제 민주화 ①] 냉전으로 인한 체제 대결 효과에 주목해야

경제 민주화는 2012년을 상징하는 화두 중 하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에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말은 무성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하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논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프레시안>에서 진행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정태인·이병천 교수 등의 논쟁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논쟁을 통해 경제 민주화에 관한 적잖은 논점이 제기됐지만, 아쉬운 대목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좌파,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에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프레시안>에 '인사이드 경제'를 연재하고 있는 오 정책위원은 그간 진행된 경제 민주화 논의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좌파 현장 활동가의 눈으로 짚었다. 독자들이 다른 시각으로 경제 민주화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총선 직후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한국경제 성격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내로라할 경제학자들의 글이 쏟아졌다. 언뜻 보기만 해도 두 그룹의 학자와 전문가들, 즉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정태인·이병천 그룹이 거의 30편에 가까운 글을 써냈는데, 여기에 한두 편의 글을 보태기로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석학 또는 경제 전문가들 아니던가. 나 같은 비전문가 내지 얼치기 전문가가 끼어들어서 크게 손해 볼 일은 없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본다. 그래, 붙어도 차라리 최고로 센 놈들하고 붙어야 이름이라도 남기는 법! 논리가 좀 딸리더라도 석학들과 논쟁하다 깨지면 내상도 그리 크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박정희와 재벌

두 그룹 학자들이 벌인 토론의 쟁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핵심적으로는 현재 한국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깊숙이 들어가면 과거로부터 펼쳐진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 및 현재의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거대한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나는 그 모든 쟁점에 대해 입장을 피력하고 설명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끼어들기로 한 이상 한두 가지 핵심 논점을 먼저 파고들면서 내 생각을 펼쳐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얘기를 먼저 풀어놓기보다 다른 이들이 써놓은 글을 논평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속편한(!) 끼어들기 수법 아니겠는가.

그런 취지에서 최근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된 문제, 즉 '재벌'과 '박정희 정권'이 한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는 쟁점을 선택해 보겠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재벌과 박정희 정권이 절대악이 아니라 한국 경제 발전에서 일정하게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정태인·이병천 그룹은 이를 재벌 옹호론 또는 박정희 옹호론이라 공격하며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치달은 바 있다.

사실 박정희 정권과 재벌 문제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경제의 규모와 수치상 발전이 이뤄졌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대자본 형태가 탄생했음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 문제는 뒤로하고 먼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주장을 살펴보자.

박정희는 남미나 아프리카, 필리핀의 독재자들과 달리 외국자본의 무차별적 자유와 권리를 승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GM이나 IBM, 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같은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조립공장만 세우고 기술이전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사의 국제생산 네트워크에 우리 기업들을 종속시키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박정희 체제=절대악? 어리석은 규정")

이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독재자들의 경제 정책과 박정희의 그것은 분명히 달랐다고 주장한다. 외국 자본을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유입된 자본의 대부분은 압도적으로 차관(부채) 형태였다. 다른 독재자들은 외국의 개별 기업이 직접 들어와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도록 문을 활짝 열었지만 박정희는 이런 방식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차관을 들여와, 국유화된 은행을 통해 정권이 계획해온 투자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해외 기업이 직접 들어오는 사례가 극히 적었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박정희 정권이 적절하게 통제를 했다는 것인데, 이들은 이러한 조건 덕에 한국 재벌들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장기적인 투자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나 해외의 다른 기업에게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경영권 안정'이라는 제도적 기반 덕택에 한국의 그 '사악한' 재벌들이 그나마 '잘한 짓', 즉 모험적인 장기적 대규모 투자(자동차, 반도체 등)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받는 바이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사악한' 재벌들의 '잘한 짓', 그 비밀은…")

이들의 주장에 대한 정태인·이병천 그룹의 반론을 요약해보면,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성장은 노동에 대한 억압적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재벌이 정권에 기대어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 역시 재벌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국가·재벌의 지배연합 체제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 ⓒKBS 새노조 제공

박정희 정권에겐 '용'빼는 재주 있었나?

각각의 주장에 포함된 사실관계와 논리들 중에는 동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물론 박정희 정권 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로서는 삶의 경험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보고 듣고 배운 것에만 입각해 보더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그 시절에 해외기업이 직접 한국에 들어오기보다 차관(부채)의 형태로 외자 도입이 이뤄졌다는 것, 그 덕에 한국의 재벌들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선진국 자본과 경쟁해야 할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것, 노동에 대한 억압적 통제에 기반을 둔 성장이 이뤄졌다는 것, 정권과 재벌 사이에 우연적 대립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협력적 관계에 있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하지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주장을 듣다 보면, 지울 수 없는 의문점이 몇 가지 생긴다. 도대체 박정희 정권에겐 무슨 재주가 있어서 외국 기업이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혹은 들어온다 하더라도 강하게 통제를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런 기업들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경제력과 정치·군사력을 가진 선진국 자본일 텐데 말이다.

군사독재의 철권통치로 아직 거대화되지 않은 한국 재벌들이야 통제할 수 있었겠지만, GM·IBM·도요타·폭스바겐과 같은 거대한 외국 자본을 박정희와 같은 제3세계 정권이 통제했다니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이다. 지금이야 국가경쟁력 랭킹 19위에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수준이지만, 당시로서는 북한과 비교해도 명백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 힘든 경제력 수준이었는데?

또한 해외에서 차관(부채)을 얻어오는 데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IMF 공황을 겪어봤으니 평범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IMF 공황 당시에는 시장 개방을 비롯해 엄청난 경제정책 변경을 강요받았다. 그런데 아무 조건도 붙지 않는 차관을 박정희 정권은 어떻게 그리 쉽게 구해올 수 있었을까? 가상 소설에서나 보던 얘기처럼, 비밀리에 핵무기라도 보유하고 협박을 했단 말인가?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

글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에 대한 해답은 찾아볼 수 없다. 정말로 박정희에게 '용'빼는 재주가 있었다고 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오히려 정태인·이병천 그룹과 감정 대립을 더욱 낳게 만든 얘기들을 반복해갈 뿐이다. 심지어 '박정희 옹호자'라는 호칭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박정희가 아무리 극악한 반(反)노동, 반(反)서민적인 폭압적 독재자였다 할지라도, 그에 못지않게 폭압적이었던 이디 아민(우간다)이나 마르코스(필리핀)와는 뭔가 다른 '경제' 정책을 운용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경제정책상의 그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발견한 결정적 차이는 바로 박정희가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매우 강하게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박정희 옹호자'니 '박정희주의자'니 하는 모욕적인 호칭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목하고 싶은 점이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박정희 체제=절대악? 어리석은 규정")

이들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박정희 시절 경제성장이 이뤄졌던 이유에 대해 정태인·이병천 그룹의 답변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극도의 억압적 체제였다는 답을 하고는 있으나,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국내 자본에 대해 행해졌을지 모르나 해외 자본에 대해서도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해외 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이뤄졌다면, 이는 미국과 유럽 정부 그리고 대자본의 엄청난 반발과 자본 철수를 야기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 국가로부터 차관을 얻어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집권기간 내내 해외 차입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럼 '용'빼는 재주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박정희, 아니 정확히 말하면 1960~1970년대 한국은 이디 아민의 우간다나 마르코스의 필리핀에는 없는 중요한 조건을 하나 갖추고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세계가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로 양분되기 시작해, '냉전'이라 불리는 체제 간 대결과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북쪽에는 사회주의 종주국이라 할 소련이, 그리고 1949년에 탄생한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버티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대결 구도 속에서 한반도 역시 서로 다른 체제로 분단되고 말았다. 남쪽에는 일본이 있었지만 2차 대전 패전국으로서 막대한 배상금과 전쟁 비용으로 인해, 자국 경제 재건에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이렇듯 한반도 남단의 한국은 소련·중국과 인접한 채 체제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상태였다. 미국·서유럽을 비롯한 자본주의 종주국과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지역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에 밀리거나 뒤처지는 것은 경쟁에서 패배를 의미한다. 사회주의 국가들과 접경지역에 위치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발전을 보여주는 것은 체제 경쟁의 필수 요소였다.

즉, 2차 대전 이후 한국 경제는 체제 경쟁의 최전선에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쇼 윈도우' 역할을 부여받았다. 막대한 차관이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되었고, 심지어 몇몇 산업 분야에서는 기술 이전도 이뤄졌다. 냉전 시기에 한반도는 체제 경쟁의 전쟁터나 다름없었고,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초국적 자본이 한반도에 취했던 태도는 분명히 달랐다.

박정희 정권에겐 '용'빼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이 될 지정학적 조건을 갖고 있었다.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이 어디인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만 제외하면 모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인접해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였던 분단국가들 아니던가. 체제 경쟁의 '쇼 윈도우'라는 항목을 빼놓고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빠른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 체제 경쟁의 '쇼 윈도우'라는 항목을 빼놓고는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진은 한국전쟁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009년 6월 23일 한밤중에, 한 장병이 휴전선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지인 육군 백두산부대 최전방 초소에서 북녘을 응시하는 모습. ⓒ연합뉴스

신(新)식민지 이론? 종속 이론?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고 있던 북한을 상대로 한 체제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한국은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상당한 경제 원조를 제공받았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박정희 정권이 그나마 잘한 지점이라 평가하는 항목의 상당 부분은, 박정희의 공적이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제공한 조건이었다.

미국은 남미나 아프리카를 상대로 해서는 자국 기업이 자유롭게 진출해 이들 나라 산업의 토대를 장악하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자국 기업의 진출이 아니라 차관 제공의 길을 선택했다. 박정희 체제가 외국 자본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사실상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남미와 아프리카, 동아시아 모두 미국의 패권 아래 놓여 있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경제 발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선진국 자본이 직접 진출해 산업 토대를 장악하려 했다면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자리에는 GM이나 폭스바겐이, 삼성전자의 자리에는 애플이나 구글이 앉아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남미 대륙 국가들 역시 박정희가 울고 갈 수준의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바 있다. 독재정권의 성격은 비슷했지만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 발전의 경로를 겪었기 때문에, 독재에 맞서 저항하던 이들이 발전시켜온 대안 경제 이론도 사뭇 달랐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냐, 반(半)자본주의냐의 주장 차이는 있었지만 그 앞에는 예외 없이 '식민지' 또는 '신(新)식민지'라는 규정이 따라붙었다. '식민지'라는 말에는 경제적 예속 개념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정치·군사적 예속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한 방식은, GM이나 IBM 등 대자본이 직접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군사동맹·정치동맹의 형식을 띠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미의 경우에는 독재에 맞선 저항세력 내에서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이라는 독특한 경제 이론이 발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미에서도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표적 완성차 메이커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GM·포드·크라이슬러를 비롯한 미국의 빅 3와 일본의 도요타가 직접 진출해 현지 생산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미 노동자들이 죽어라 일해서 벌어준 이윤의 대부분은 기업의 본국으로 송금되거나 이들 해외 기업의 성장에 재투자될 뿐, 남미 경제 성장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자국 경제는 더 피폐해지는 이 독특한 현상에 대해, 미국과 서유럽에서 발전한 경제 이론들은 거의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미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독특한 이론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패권 아래 놓여 있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남미의 종속 이론을 활용해 한국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 반대로 한국의 신(新)식민지 이론을 활용해 남미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 그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서로 처한 조건이 달랐고, 따라서 걸어온 경제 발전의 경로가 달랐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의 자본 통제가 아니라, 체제 경쟁의 최전선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이 좀 더 결정적인 변수였던 것이다.

한국은 체제 경쟁의 쇼 윈도우 역할을 부여받아 자국 경제의 외형적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대자본의 존재 형태가 만들어졌다. 반면에 남미의 경우에는 해외 선진국 자본의 거침없는 진출로 인해 온통 수탈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자연자원·천연자원이 그토록 풍부한 남미 대륙의 경제가 1960~1970년대에 왜 그토록 저성장에 머물렀던가 하는 점을 잘 설명해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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