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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미스매치' 사회…빈곤층·지방학생에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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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영어 미스매치' 사회…빈곤층·지방학생에 불리"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김희삼 KDI 연구위원 인터뷰

헛돈 쓰고 속 편한 사람 없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사도, 값을 깎아야 기분이 좋다. 그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제값보다 조금만 비싸게 사도 속 쓰려 잠 못 이루는 이들이, 어떤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뭉칫돈을 쓴다. 대표적인 게 자녀 사교육비다.

한국의 연간 사교육비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20조 원 가량이다. 돈 들인 만큼 효과가 있을까.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속 시원한 답은 듣기 어려웠다. 사교육은 주로 교육학자의 관심사지만, '혹시 헛돈 쓴 것 아닐까'라는 질문이라면 경제학자도 할 말이 있다. 마침 그런 경제학자가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김희삼 연구위원은 사교육의 효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꾸준히 발표했다. 지난해 내놓은 "왜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한가?"라는 자료가 대표적이다. 통계 분석에 능한, 경제학자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자료다. 사교육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사교육 많이 받은 학생이 성적이 좋다는 믿음은 상당부분 '착시 효과'에 기인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양한 변수를 잘 통제해서 통계 분석을 한 결과를 보면, 사교육 효과가 얼마나 허술한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학 과목의 경우 고교 3학년 때 주당 사교육 시간이 1시간 늘어나면 수능 백분위가 평균 1.5% 높아진다. 그럼 사교육 투자가 효과가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 혼자서 1시간 더 공부하면 수능 백분위는 1.8~4.6%까지 상승한다. 사교육 받느니 그 시간에 혼자 공부하는 게 대학 진학에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는 통계 분석이 평균적인 학생에 대해 말해주는 결과일 따름이다. 보고서 역시 모든 학생에게 사교육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교육으로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또 예체능처럼 사교육이 분명한 역할을 하는 영역도 있다. 그러나 사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하루 두 시간 이상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상당수 가계가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헛돈'일 가능성이 크다.

그뿐 아니다. 대학 진학 이후의 삶에서도 청소년기의 사교육 경험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입학생 수능성적이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이후 삶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교육을 많이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학점, 최종학력, 취업 후 실질 임금 등에서 더 뒤쳐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 진학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그런데 똑같이 A대학 B학과에 입학해도, 사교육을 덜 받았던 학생이 이후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말이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더 상위 계층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주 인상적인 조사 결과다. 청소년 시기에 남이 떠먹여 주는 공부에 의존한 경험이 낳은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더 이상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단계인 대학, 대학원, 직장 등에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이 지난 6월 발표한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내용이다. 한국 사회가 영어교육에 '헛돈'을 쓰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 내용이다. 기업이 구직자의 잠재능력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척도가 없는 상황에서 영어점수가 일종의 '선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가 별로 필요 없는 일을 하려는 이들도 영어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실제로 필요한 공부에 쓸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반면, 영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영어에 소홀한 경우도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을 '영어능력 미스매치(mismatch)'라고 불렀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기엔 아주 비효율적인 상황이다.

영어에 지나친 가중치를 두는 건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다. 김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영어 점수는 부모의 경제력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른 과목보다 훨씬 높다. 월 평균 가구소득이 100만 원 늘어났을 때, 영어 과목의 수능성적 백분율은 2.9% 오른다. 같은 조건에서 수학은 1.9% 오른다. 도시 학생과 농촌 학생 간의 점수 격차도 영어 과목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학생의 영어 점수는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 외에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방증이다. 대학 입시, 취업 시험 등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때가 됐다.

최근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사교육 문제를 거론했지만, 대부분 '가계부담 완화' 차원에서 접근했다. 막대한 사교육비가 가계에 부담을 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타당한 접근이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나면, 이런 접근에서 빈 곳이 보인다. 무리한 사교육은 단지 고비용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의 미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또 사교육 유발 요인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어의 경우,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사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이런 문제까지 아우르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김 연구위원이 있는 KDI를 찾았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KDI 연구실에서 김 연구위원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편집자>


"사교육 '착시' 효과…사교육 때문에 성적 높은 것 아냐"

프레시안 : 사교육 관련 보고서를 잇따라 냈다. 사교육은 계층 간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강남 사람들은 어떻게 하더라' 식으로 위화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보고서는 사교육 효과가 과장돼 있다고 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교육이 실제로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인데….

▲ 김희삼 KDI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희삼 : 사교육은 과열을 넘어서 중독 증상까지 나타나는 단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교육이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효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미리 결과를 예단하고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 결과다. 일단, 사교육 받는 학생과 안 받는 학생을 단순 비교하면 사교육 받는 학생이 높은 성적을 거둔다는 게 통계적으로 관찰된다. 그게 우리 사회의 현재 인식을 만든 듯하다. 즉,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건 사교육을 안 해서라고 생각하는 인식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정교하게 데이터를 분석하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교육이 보편화 돼 있다. 하지만 고액 사교육은 주로 특목고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뤄진다. 명문대 진학 사정권에 포함된다고 여겨지는 학생 고액 사교육을 받는다. 이런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걸 보고 사교육 착시 효과가 생겼다.

"사교육 효과, 학년 올라갈수록 감소"

사교육 효과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학생들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경제학자가 강점이 있다. 아무래도 통계를 다루는데 익숙하니까. 다른 차이를 제거하고 오로지 사교육이 성적향상에 미치는 효과만 분석하면, 사교육 효과는 대폭 감소한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성적이 좋았던 것은 사교육 효과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성적이 좋았을 학생들이었다. 사교육이 성적 향상에 미친 영향은 아주 미미했다.

물론, 사교육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효과가 뚜렷이 감소한다. 반면,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년이 올라가면 오히려 효과가 증가한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면, 혼자서 하는 공부가 사교육을 받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이게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인데,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해 봤다.

"같은 조건에선 자기주도적 학습이 사교육보다 수능 점수 높아"

학습이라는 말을 뜯어보자. '배울 학(學)' 자와 '익힐 습(習)' 자로 구성돼 있다. 배우는 것만으로는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 익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가서 어려운 개념을 배울수록 익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원 등 사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익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그래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하루 2시간 이상의 사교육은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년이 올라가면, 사교육 투자를 통해 하위권이 중위권이 되거나 중위권이 상위권이 되기는 아주 어렵다. 반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공식자료를 분석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조건이라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한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보다 높은 수능 점수를 받았다.

"부모 소득이 자녀 수능 점수에 미치는 영향, '영어>국어>수학' 순"

프레시안 : 보고서를 보면, 부모 소득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과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김희삼 : 통계 자료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영어 점수는 가구 소득과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교육 효과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정 환경, 부모 교육 배경, 해외 체류 경험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반면, 수학 점수는 학생 개인의 지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구 소득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100만 원 늘어났을 때, 영어 과목의 수능성적 백분율은 2.9%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조건에서 국어는 2.2%, 수학은 1.9% 오른다.

"영어 중시하는 입시 전형, 빈곤층과 지방 학생에게 불리"

프레시안 :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입시에서 영어 비중이 늘어나면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리하겠다. 특히 일부 대학들이 영어 특기자 전형을 실시하는데, 이 경우는 더욱 그렇겠다. 계층 간 형평성 문제가 있어 보인다.

김희삼 : 간단히 답하기는 힘들다. 다만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럴 수 있다. 통계 자료를 분석해보면,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경우, 지방 학생들의 영어 점수가 서울보다 낮게 나온다. 여러 이유가 있다. 영어 점수는 학생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쨋건, 영어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전형은 지방이나 빈곤층 학생에게 불리할 수 있다.
▲ 김희삼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사교육, 한국에선 '강화 전략', 외국에선 '보완 전략'"

프레시안 : 외국과 비교해서 한국의 사교육이 지닌 고유한 특징이 있나.

김희삼 : 한국처럼 사교육이 활발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외국에도 사교육이 없는 건 아니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중진국이면서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사교육이 활발하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사교육이 없지는 않다.

한국의 사교육이 외국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있다. '강화 전략'이라는 점이다. 외국에선 대체로 '보완 전략'이다. 한국에선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특목고,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강화 전략'이다. 하지만 외국에선 학습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외국에선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성적이 낮다.

"조기 사교육, 아이들 뇌 발달에 나쁜 영향"

프레시안 : 사교육이 비판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도한 사교육비가 가계에 부담을 줘서 내수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도 있다. 고액 사교육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이 있는데, 부잣집 아이들이 고액 사교육을 받는 것을 보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이미 자주 나온 비판이다.

하지만 사교육 자체가 지닌 폐해는 상대적으로 덜 거론됐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퇴화한다는 문제다.

김희삼 : 뇌전문가인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가 강연에서 한 이야기가 있다.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전두엽(대뇌에서 사고력, 기억력 등을 담당하는 부분) 발달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무리한 사교육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을 똑똑하게 키우려고 사교육을 시키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셈이다.

"'학원에 가 드린다'는 아이들, '학습장애' 넘어 '공황장애'까지"

문제는 그밖에도 많다. 사교육을 받는 계기 자체가 본인 스스로의 욕구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본인이 원해서 받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대부분 부모의 강제에 의해 이뤄진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니까 '학원에 가 드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다. 부모가 강요하는 것 말고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이다. 그걸 못하게 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물론 순응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일탈하거나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학원가로 유명한 지역에는 소아정신과 병원도 성업 중이다. 한 소아정신과 의사가 사교육을 많이 받아 문제가 생긴 경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학습장애를 넘어 공황장애까지 온다고 했다. 그런 아이와 같이 온 엄마를 보면 대부분 엄마가 강박증 환자라고 했다. 많은 전업주부 엄마들이 아이가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자기 성과 지표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모든 걸 걸다 보니, 엄마는 불안해지고 그게 다시 아이에게 전가된다. 과도한 사교육과 아이의 정신질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사교육 과잉, 지식경제가 원하는 인재 못 키운다"

프레시안 : 한국이 지식경제 단계에 들어섰다는 말을 흔히 한다. 실제로 정보기술(IT) 산업 등 지식이 경쟁력이 되는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연구개발직 종사자 등 지식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도 꾸준히 늘어났다. 이들 분야에선 학습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 그리고 그걸 창의적으로 응용하는 능력이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런데 사교육에 길들여져서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퇴화한 채로 성장한 이들이 지식노동자가 된다면, 지식산업의 경쟁력이 불안해진다. 이는 꼭 진보 진영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진영에서 더 걱정할 문제다.

김희삼 : 미래의 산업을 생각한다면 사교육이 갖는 문제점은 더 선명해진다. S&P 500대 기업의 시장 가치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를 보면, 1980년대 중반에는 실물 자산과 지적재산의 비율이 7대 3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실물 자산과 지적재산의 비율이 2대 8로 역전됐다.

기업이 노동시장에서 찾는 건 지적재산을 창출할 인재다. 여기에 사교육이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한창 재기발랄한 나이에 입시만을 겨냥한 문제풀이 연습을 하는 게 창의력 향상에 어떤 도움을 주겠나.

또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한 역량에는 창의력만 있는 게 아니다.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아이들을 종일 학원에 가둬놓으면, 서로 어울려 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게다가 부모와 나누는 대화마저 온통 성적 이야기다. 이래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울 수 없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위험한 일이다.

"구직자 능력 평가, 토익에 과잉 의존"

프레시안 : 지난 6월 발표한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보고서가 언론에 종종 소개됐다. 한국에서 '영어교육'이 워낙 뜨거운 관심사인 까닭일 게다. 실제로 영어는 입시뿐 아니라 취업 및 진급 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김희삼 : 그렇다. 한국에서 영어점수는 노동시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학연수 경험, 토익 점수 등은 일차 서류 심사와 면접에 도움이 된다. 토익 점수가 높은 사람이 면접 기회를 더 얻는다는 게 통계자료로 입증된다. 높은 토익 점수가 해당 직장에서 수행할 업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토익 점수는 학생의 영어능력을 보여주는 성과지표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 토익 점수가 다른 능력을 반영하는 지수로도 쓰인다. 토익 점수가 '표준화된 인증 점수'라는 점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예컨대 대학 학점도 구직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이는 대학마다 학과마다 기준이 다르다. 결국 '표준화된 인증 점수' 역할을 대체할 지표가 나오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바뀌기 어려울 게다.

"영어 능력 '미스매치'…영어 필요 없는 직장에 토익 고득점자 몰려"

프레시안 :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 잘 해서 나쁠 것 없지 않느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영어가 별로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영어 공부할 시간에 다른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무리한 영어 점수 경쟁, 이를 위한 사교육 투자. 경제학자 입장에선 어떻게 보나.

김희삼 : 영어 공부가 효율적인 투자인지 판단하려면, 개인과 사회를 구분해야 한다. 우선 개인 차원에선 높은 영어 점수가 취업 및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 차원에선 조금 달라진다.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영어가 덜 필요한 사람은 다른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취업자가 지닌 영어능력이 실제 업무에서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사무 직종은 취업자가 갖춘 영어능력이 업무에서 활용되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취업자의 영어능력이 필요치보다 높다는 말이다. 반면, 이공 계열이나 의약학 계열은 다르다. 취업자의 영어능력이 업무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일종의 '미스매치'다.

"고답적인 문과-이과 구분…문과는 영어 과잉, 이과는 영어 소홀"

이는 고답적인 '문과-이과' 구분과 관계가 있다. 흔히 문과로 분류되는 분야 학생들은 전공보다 영어 공부에 힘을 쏟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과 쪽 학생들은 영어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향이 있다. 이공, 의약학 계열은 전공에 따라 일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들이 인문사회계열 학생을 뽑을 때는 전공을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영어 스펙 쌓기에 골몰하게 된다.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에게 기대하는 업무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를 보다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그게 없다보니, 영어 점수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사무직 직원들이 영어를 쓸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영어 공부 투자에 비해서는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반면, 공학이나 자연과학, 의약학 계열 전공자들은 업무에서도 영어가 꼭 필요한데 영어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고답적인 '문과-이과' 구분의 폐해와 맞물려 있는 문제인데, 개선이 필요하다.

"영어 잘 하면, 영어와 무관한 일 해도 월급 더 받아"

프레시안 :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선 영어능력에 따라 임금 격차가 생긴다.

김희삼 : 영어능력이 높은 사람이 임금을 더 받는다. 역시 통계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능력이 업무에 도움이 돼서 받는 임금 프리미엄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자료를 보면, 영어능력이 있는 사람은 영어와 무관한 일을 해도 평균소득이 높다. 이는 영어능력이 노동시장에서 구직자의 업무능력을 알리는 신호로 기능하고, 기업은 그걸 선별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업무능력을 알리고 평가하는 척도가 지금보다 다양해져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20조 사교육비, 자원 배분 타당한가?"

프레시안 : 경제학자가 교육 문제에 천착하는 게 인상적이다.

김희삼 : 교육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꽤 있다. 사교육 역시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연구 주제다. 움직이는 돈 자체가 아주 크다. 공식 집계로 연간 20조 원이 쓰인다. 이렇게 지출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

경제적 자원배분이라는 면에서도 관심거리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노후대비를 희생하면서 자녀에게 사교육 '투자'를 한다. 그리고 학생은 혼자 공부할 시간, 체력 단련 시간, 자기 취미 시간 등을 포기하면서 사교육에 시간을 투자한다.

이런 식의 자원배분이 경제학적으로 타당한 걸까. 효율성과 형평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사교육은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무리한 사교육비 투자는 계층 간 격차를 확대하는 구실을 한다.

"'죄수의 딜레마', '모두가 서서 보는 극장', 그리고 사교육"

효율성 측면은 개인과 사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개인적 효율성. 이는 자기주도적 학습에 비해 효율이 낮다는 게 입증됐다. 그리고 사회적 효율성. 이건 여러 가지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죄수의 딜레마'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무리한 사교육은 함께 거부하는 게 가장 사회적 효율이 높은 선택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남이 하니까 나도 안 할 수 없어서 하게 된다. '교육은 순위게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모두가 일어서서 보는 극장' 개념도 적용할 수 있다. 다들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지만, 현실은 다들 서서 보는 쪽이다. 이밖에 '소비의 외부성' 등 다양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사교육 문제를 푸는 데 경제학자가 할 역할도 있다고 본다.

"사교육은 보완재에 그쳐야"

프레시안 : 그런데 사교육이 꼭 나쁜 역할만 하는 걸까.

김희삼 : 그렇지 않다. 사교육이 가진 긍정적인 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게 예체능 교육이다. 공교육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지식교육 영역에서도 '적당한 사교육'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통계자료를 봐도 그렇다. 꼭 필요한 과목에 한해 단기적으로 사교육을 받는 것은 좋다. 다만 세 과목 이상은 위험하다.

내 연구 결과가 사교육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교육이 지닌 긍정적인 역할도 함께 부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사교육 대책, 수요 관리가 먼저다"

프레시안 : 학원은 일종의 사업체이므로 수익에 민감하다. 개념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문제풀이 요령을 암기시키는 수업 방식은 이런 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아이들이 당장 치를 시험에 학원 수업이 도움이 된다고 믿게끔 하는 게 학원 입장에선 유리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긴 미래를 염두에 두면, 지금처럼 눈 앞의 시험 준비에만 연연하는 사교육은 부정적인 면이 크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앞서 거론된 것처럼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기르는데도 해롭다. 그렇다면, 사교육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희삼 : 사교육 시장의 인위적 구조조정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시도한 것처럼 밤 10시 이후 심야영업 규제 정도가 쓸 수 있는 수단이다. 공급자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으므로, 수요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학원의 '공포 마케팅'에 넘어가지 않도록 사교육 효과 객관적으로 알려야"

첫째로 비합리적인 사교육 수요를 줄여야 한다. 우선 사교육 효과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나와 같은 연구자들의 몫일 게다. 이를 통해 사교육이 합리적 수준에서 필요한 선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학원의 공포 마케팅에 넘어가지 않도록, 객관적인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 거품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둘째로 사교육의 유용성을 감소시켜야 한다. 어쨌든 외워서, 반복해서 익히면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오는 게 지금의 시험이다. 문제풀이 요령을 외우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시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누가 봐도 '이런 문제를 푸는 데는 사교육이 별 도움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시험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셋째로 사교육을 공공 영역이 흡수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EBS나 방과 후 학교 등이 그런 수단으로 주로 꼽혀 왔다. 전국 평균으로는 방과 후 학교의 학습 효과가 사교육보다 '투입비용 대비 성적'은 물론 '투입시간 대비 성적' 면에서도 높게 나타난다. 다만, 지역에 따라서는 사교육의 효과가 더 높은 곳도 있다. 예컨대 서울 강남 지역이 그렇다. 전국 평균을 냈을 때, 방과 후 학교의 학습 효과가 사교육보다 더 높았던 이유는 '질 관리'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교육이 고도로 발달한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사교육 쪽이 '질 관리'가 더 안 되고 있다는 말이다.

"사교육 비판, 공교육 혁신과 함께 이뤄져야"

거듭 이야기하지만, 사교육도 교육의 한 축이다. 또 사교육 종사자가 쏟아붓는 치열한 노력도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극한 학원 강사들도 많다.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를 사교육 탓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다. 지나친 사교육에 대한 비판은, 공교육의 각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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