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 초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캠프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내부의 격렬한 반발을 딛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박근혜 비대위'의 한 축을 이루던 이상돈 전 위원도 캠프에 합류키로 했다. '2030 공략'을 위해 영입했던 이준석 전 비대위원 역시 간접적으로 박근혜 캠프를 돕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영입으로 김종인 전 위원의 '브랜드'나 다름없는 경제민주화 정책은 더욱 속도를 내게 됐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박 전 위원장을 둘러싼 측근들의 '권력 투쟁'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 최근 박근혜 캠프에 합류키로 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왼쪽)과 이상돈 전 비대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김·이 영입으로 친박 견제·외연 확대 '두 마리 토끼'
벌써부터 이상돈 전 위원은 'MB 차별화'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전 위원은 4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현 정권이 지금까지 해온 많은 것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으로선 (현 정부가) 부담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를 시인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KTX·인천공항 민영화, 차기 전투기 사업 등을 줄줄이 비판하며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 하면서 조용히 정권을 넘겨줄 준비나 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전 위원은 김종인 전 위원과 함께 당 안팎을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대위의 쌍두마차로 꼽혔다. 총선 전부터 당 정강·정책의 '보수 용어' 삭제 등을 놓고 의원들과 거세게 대립했고, 친이계 공천, 대통령 탈당 논란 등의 중심에도 항상 이들이 있었다.
당시 비박(非朴)은 물론 친박계조차 "외부인사가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두 위원의 사퇴를 주장했지만, 이런 논쟁을 바탕으로 총선 전 새누리당이 '보수색 지우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내부 투쟁'이지만, 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에겐 "보수당에서 '보수' 용어까지 삭제하는" 치열한 쇄신의 과정으로 비춰졌고, 자연스럽게 여론의 관심은 야권에서 여권으로 옮겨 왔다. 결과는 총선 승리라는 '반전 드라마'였다.
박 터지게 싸우는 朴의 사람들, 웃고 있는 박근혜?
흥미로운 점은 이런 갈등 뒤에 선 박근혜 전 위원장의 '포지션'이다. 두 비대위원과 당내 인사들이 충돌할 때마다 시선은 박 전 위원장의 '입'으로 쏠렸지만, 특별히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논쟁을 유도했다.
때문에 당시에도 박 전 위원장이 'MB 차별화', '보수 삭제' 등의 민감한 주장을 김종인·이상돈이라는 두 인사의 '입'을 빌려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전형적인 '막후 정치'라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의 이런 스타일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뺴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확한 2인자를 두지 않고 경합을 시켜, 이기는 쪽을 곁에 두는 방식이란 얘기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유신 전에는 김형욱-이후락의 경쟁 구도, 유신 이후엔 차지철-김재규의 경쟁 구도로 측근들의 권력 투쟁을 유도했고, '패자'의 과오는 당사자의 과오로 정리됐다.
경제민주화, 속내는 달라도…노선 투쟁 '착시 효과'는 쏠쏠
대선을 앞두고도 벌써부터 치열한 '내부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캠프 사무실이 공개된 당일부터 김종인 전 위원과 친박 핵심인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날선 설전을 벌였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총선 전부터 꾸준히 주장해온 사안이지만, 전당적으로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두고선 당내 의견이 엇갈린다. 김종인 전 위원 등 강경파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재벌 개혁'을 꼽지만, 대다수 시장주의자들인 친박계 의원들은 '대기업의 횡포 제재'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인사의 대립은 "김 전 위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뭔지 모르겠다"(이한구), "경제민주화를 모르면 정치민주화는 아느냐"(김종인)는 수준의 격한 말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지만, 이 같은 노선 투쟁이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단 지난 4.11 총선 당시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슈 선점이 이뤄졌다. 연일 언론에서 두 인사의 논쟁이 보도되면서, 유권자들에게 경제민주화는 '야당'의 주장보다는 '여당'의 주장으로 각인됐다.
또 당내 분란을 일으켰던 비박계와의 '경선 룰 전쟁' 역시 자연스럽게 묻혀버렸다. 당시 고착된 박근혜 전 위원장의 '불통' 이미지 역시 이런 내부 논쟁으로 반감될 수 있다. 지난 총선 당시 '보수 삭제' 논쟁이 실제 용어 삭제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 자체로 당의 '쇄신'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시킨 것과 닮은 꼴이다.
결국 두 인사의 영입으로 박 전 위원장의 약점인 중간층 공략 효과를 낳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김종인 전 위원이 박근혜 캠프의 좌장을 맡는다고해서 '집토끼'인 보수층이 등을 돌릴 우려도 없다.
문제는 이런 '노선 투쟁'이 '권력 투쟁'으로 번졌을 때다. 이번 김종인·이상돈 전 위원의 영입으로 캠프 내 '견제와 균형'이 맞춰졌다고 하지만, 측근 그룹에게 휘둘리는 고질적인 '인(人)의 장막' 역시 박근혜 전 위원장의 대선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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