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을 비판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전기 없이 어떻게 살 것이냐", "당신은 전기 쓰지 말고 촛불 켜고 살아라" 등의 비아냥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54기 중 52기를 가동 중단한 일본은 이러한 비난에 대한 정면 반박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대부분의 원전을 가동 중단하고도 소위 '전력 대란'을 겪지 않았고, 다음달 중순 홋카이도전력 도마리 3호기가 정기점검에 들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게다가 '탈핵'은 당장 모든 원전을 폐쇄하자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전력 수요 관리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독일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현실화된 시나리오고, 한국에서 낯설 뿐이다. 특히 이중 '수요 관리'는 공급 중심의 한국 전력 체계에서는 개념조차 생소할 정도로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전기를 아끼지 않는 '에너지 된장국가'의 전력 낭비벽은 누가 만들었는가? <편집자>
한국은 대표적인 전력 과소비국가다. 2009년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8833kWh로 1인당 소득이 한국보다 높은 독일(6757kWh), 일본(7818kWh), 프랑스(7512kWh)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속도도 엄청나다. 1998년에서 2008년 사이 한국의 전기소비는 두배에 가까운 수치인 90%가 늘어났고, 그 기간 동안 독일은 5%, 덴마크는 6%, 영국 7%, 프랑스는 18%의 증가에 그쳤다. 특히 2009년과 2010년에는 매년 10% 이상씩 늘어나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유럽 전기요금의 반값…전기로 난방하는 '에너지 된장국가'
전기 소비가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전기 요금이 전력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 요금은 가정용의 경우 OECD 평균의 81%에 불과하고, 산업용은 84% 수준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각각 59%, 64%로 반값을 살짝 넘는다. 지난 겨울만 해도 난방요금을 아끼기 위해 전기 난로나 전기 장판 등 전기를 쓰는 난방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유정민 안양대 교수는 "싼 전력요금으로 인해 전기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전기 수요를 줄일 유인 동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산업용 전기의 경우 감면 혜택 등으로 더욱더 전기를 아낄 유인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턱없이 낮은 요금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다른 에너지원보다 전력이 더 값싼 에너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에너지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유정민 교수는 "전기는 생산하고 사용하는데 투입 열량의 60%가 버려지는 고급 에너지"라며 "전력 사용의 증가는 그만큼 석유, 석탄, 우라늄 등 전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1차 에너지의 낭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싼 전력요금으로 인해 생산-소비 과정에서 손실이 많은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다시 열에너지로 바꾸는 난방기구를 쓰는게 '경제적'인 역진 현상이 일어난다. 서울 통인동의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은 이러한 역진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 가스 냉난방기를 사용하지만 저렴한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요금이 든다.
-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1>"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2> 방사능 오염 생태가 수산시장에, 그런데도 정부는… ☞<3> 체르노빌·후쿠시마, 그리고 MB의 '악연' ☞<4>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 |
한국은 대표적인 전력 과소비국가다. 2009년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8833kWh로 1인당 소득이 한국보다 높은 독일(6757kWh), 일본(7818kWh), 프랑스(7512kWh)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속도도 엄청나다. 1998년에서 2008년 사이 한국의 전기소비는 두배에 가까운 수치인 90%가 늘어났고, 그 기간 동안 독일은 5%, 덴마크는 6%, 영국 7%, 프랑스는 18%의 증가에 그쳤다. 특히 2009년과 2010년에는 매년 10% 이상씩 늘어나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유럽 전기요금의 반값…전기로 난방하는 '에너지 된장국가'
전기 소비가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전기 요금이 전력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 요금은 가정용의 경우 OECD 평균의 81%에 불과하고, 산업용은 84% 수준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각각 59%, 64%로 반값을 살짝 넘는다. 지난 겨울만 해도 난방요금을 아끼기 위해 전기 난로나 전기 장판 등 전기를 쓰는 난방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유정민 안양대 교수는 "싼 전력요금으로 인해 전기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전기 수요를 줄일 유인 동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산업용 전기의 경우 감면 혜택 등으로 더욱더 전기를 아낄 유인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턱없이 낮은 요금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다른 에너지원보다 전력이 더 값싼 에너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에너지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유정민 교수는 "전기는 생산하고 사용하는데 투입 열량의 60%가 버려지는 고급 에너지"라며 "전력 사용의 증가는 그만큼 석유, 석탄, 우라늄 등 전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1차 에너지의 낭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싼 전력요금으로 인해 생산-소비 과정에서 손실이 많은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다시 열에너지로 바꾸는 난방기구를 쓰는게 '경제적'인 역진 현상이 일어난다. 서울 통인동의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은 이러한 역진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 가스 냉난방기를 사용하지만 저렴한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요금이 든다.
▲ 지나치게 낮은 전기요금은 고급에너지인 전기를 다시 1차 에너지인 열에너지로 바꾸는 난방기구를 사용하는 '역진 현상'을 경제적인 선택으로 만든다. ⓒ뉴시스 |
"국민 세금으로 기업에게 '싼 전기' 공급한다?"
현재 한국의 전력 정책은 '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싸고 풍부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전력 정책의 정책 목표가 됐다. 지금도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저렴하고, 에너지 정책을 지식경제부에서 총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에너지 정책은 산업 정책의 하위 범주로 인식된다. 미국에서는 에너지부(DOE)에서 정책을 결정한다.
산업용 전기 소비는 전기 과소비의 주범이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한국의 전기 소비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월등히 많다. 한국에서 산업용 전기의 비중은 53.6%인반면 OECD 평균이 32% 가량이다. 요금도 가정용 전기보다 산업용 전기가 훨씬 저렴하다. kW당 단가로 비교하면 주택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는 120원인 반면 산업용은 76원으로 더 저렴하다. 기업들은 밤 11시에서 오전 9시 사이에 전기를 쓰면 원가의 73%에 쓸 수 있고, 일요일에도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국에는 에너지 소비 집약적인 기업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중국보다 싸기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세운 탄소섬유 사업체도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저렴한 전기 요금이 우리나라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를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라며 "전력 수요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전력이 과소비 되는 패턴이 구조화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제철, 포스코, LG디스플레이 등 전기사용 상위 10대 기업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1조4847억원의 전기요금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렇게 혜택을 제공하는 한전은 2008년 이후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0년 한전의 부채 규모는 50조3천306억 원에 달한다. 이중 원가 부족액 4조4000억원 중 35%인 1조5000억원이 산업용 전기요금에 의한 것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생산비 중 전기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업종일 수록 저렴한 전기 요금으로 인한 특혜를 받는 반면 한전은 적자를 면치 못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민이 세금을 내서 기업들의 영업 이익을 보전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원전과 전기 과소비, 싼 전력요금의 악순환
값싼 전기요금과 함께 전력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원자력 발전소다. 기본적으로 대용량 발전소인 원전은 전력 상황에 따른 탄력적 공급이 불가능하다. 지난 겨울 정전 사태 당시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나 미국처럼 대용량 발전소에 의존하는 나라는 급작스러운 전력 피크가 왔을 때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
이에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것처럼 전력 피크에 맞춰 원전 추가 건설 등을 강행하면 평상시에는 전력이 남게 되고, 이를 소비하기 위해 심야 전기 등 싼 전력 요금으로 전기 소비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이 '악순환'의 결과가 2030년 원전 비중을 59%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전력정책은 수요보다는 공급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기 사용을 부추기는 구조를 고착화시킨다"면서 "수요관리를 하겠다는 계획은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애초에 '저렴한 전기를 공급한다'는 논리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지만, 사고 처리 비용이나 보험, 폐로 비용, 핵폐기물 처분 비용 등을 반영하면 결코 싸지 않다"면서 "애초에 발전 단가 책정을 자의적으로 해놓고 숨긴 비용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바이거 교수 "독일의 기업들, '전기 절약' 미래 산업으로 인식"
전기 요금이 워낙 낮게 책정된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2011년 8개의 원전을 폐쇄한 독일의 경우 원전 폐쇄 이후로도 전기 요금 증가는 없었다.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인 분트(BUND)의 의장을 맡고 있는 후베르트 바이거 교수는 9일 국회에서 열린 '핵없는 미래를 위한 시나리오' 강연에서 "원전을 폐쇄한 이후로도 실질적으로 전기 비용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후베르트 바이거 교수는 "독일 내에서도 '원전을 정지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등의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면서 "올해 초에 전기료를 인상하긴 했지만 원전 폐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기 발전 운영 비용 자체가 올라 그 비용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 정부의 탈핵 결정이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독일에서 원전 건설, 보수, 운영에 모두 참여하는 최대의 원전 공급 기업 지멘스는 지난 9월 원전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바이거 교수는 "원전을 폐쇄해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통한 혁신에 주력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멘스사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미래 사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실제로 독일은 기계 분야에서 독보적이기도 하고,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라 에너지 절약 기술이 확산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원전을 폐쇄하고 전기요금을 올리면 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원전을 폐쇄하고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은 시장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유인동기가 될 수 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기요금을 올리게 되면 당장은 기업체들이 부담을 지게 될지 모르나 그간 이뤄진 많은 연구를 보면 대부분 기업체가 지는 부담은 잠깐이다"라며 "전기요금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개발해 짧은 시간에 적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환경 규제를 강화할 당시에도 기업들이 '경제활동에 타격을 받는다'고 했으나 실제로 든 비용은 예상치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물마다 에너지 사용량을 명시하게 한다면"
에너지대안포럼은 지난 6일 전력 수요관리와 원전의 단계적 축소 가능성을 검토한 '2030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들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사회적 비용 등을 적극 반영해 결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로부터 독립적인 규제적 전기요금 결정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이들은 "2030년까지 가정용 전기요금은 현재 OECD 평균 수준으로, 산업용 전기 요금은 현재 OECD 유럽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인상하자"고 제안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인상분의 일부는 근로소득세 인하 또는 연금 부담률 경감에 투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병옥 소장은 "한국은 워낙 전기 요금이 낮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며 "건물 단열 기준 강화, 연료 대체 등 여러 방안이 필요하지만 전기 요금 자체가 낮은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전기요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이 갖는 부담 등이 문제기 때문에 전기 요금을 올리면 인상분의 일부는 다시 노동자, 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전기요금 인상만으로는 수요 조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현재 원자력과 관련해서 발전 단가가 지나치게 낮게 잡혀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한전의 적자를 메꿔주는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너지 역진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스 냉난방이나 건물 단열 강화, 고효율 전동기 교체에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가령 각종 부동산 거래에서 '이 건물은 단위 면적당 얼마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을 명시하게 하면 건물의 단열 정도에 따라 거래가격이 달라질 것이고, 이에 더해 단열 강화한 건물에 세제 혜택을 준다거나 하면 집주인들은 건물 단열에 더욱 투자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수요관리 시장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전력 정책은 '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싸고 풍부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전력 정책의 정책 목표가 됐다. 지금도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저렴하고, 에너지 정책을 지식경제부에서 총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에너지 정책은 산업 정책의 하위 범주로 인식된다. 미국에서는 에너지부(DOE)에서 정책을 결정한다.
산업용 전기 소비는 전기 과소비의 주범이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한국의 전기 소비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월등히 많다. 한국에서 산업용 전기의 비중은 53.6%인반면 OECD 평균이 32% 가량이다. 요금도 가정용 전기보다 산업용 전기가 훨씬 저렴하다. kW당 단가로 비교하면 주택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는 120원인 반면 산업용은 76원으로 더 저렴하다. 기업들은 밤 11시에서 오전 9시 사이에 전기를 쓰면 원가의 73%에 쓸 수 있고, 일요일에도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국에는 에너지 소비 집약적인 기업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중국보다 싸기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세운 탄소섬유 사업체도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저렴한 전기 요금이 우리나라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를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라며 "전력 수요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전력이 과소비 되는 패턴이 구조화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제철, 포스코, LG디스플레이 등 전기사용 상위 10대 기업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1조4847억원의 전기요금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렇게 혜택을 제공하는 한전은 2008년 이후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0년 한전의 부채 규모는 50조3천306억 원에 달한다. 이중 원가 부족액 4조4000억원 중 35%인 1조5000억원이 산업용 전기요금에 의한 것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생산비 중 전기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업종일 수록 저렴한 전기 요금으로 인한 특혜를 받는 반면 한전은 적자를 면치 못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민이 세금을 내서 기업들의 영업 이익을 보전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원전과 전기 과소비, 싼 전력요금의 악순환
값싼 전기요금과 함께 전력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원자력 발전소다. 기본적으로 대용량 발전소인 원전은 전력 상황에 따른 탄력적 공급이 불가능하다. 지난 겨울 정전 사태 당시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나 미국처럼 대용량 발전소에 의존하는 나라는 급작스러운 전력 피크가 왔을 때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
이에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것처럼 전력 피크에 맞춰 원전 추가 건설 등을 강행하면 평상시에는 전력이 남게 되고, 이를 소비하기 위해 심야 전기 등 싼 전력 요금으로 전기 소비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이 '악순환'의 결과가 2030년 원전 비중을 59%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전력정책은 수요보다는 공급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기 사용을 부추기는 구조를 고착화시킨다"면서 "수요관리를 하겠다는 계획은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애초에 '저렴한 전기를 공급한다'는 논리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지만, 사고 처리 비용이나 보험, 폐로 비용, 핵폐기물 처분 비용 등을 반영하면 결코 싸지 않다"면서 "애초에 발전 단가 책정을 자의적으로 해놓고 숨긴 비용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바이거 교수 "독일의 기업들, '전기 절약' 미래 산업으로 인식"
전기 요금이 워낙 낮게 책정된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2011년 8개의 원전을 폐쇄한 독일의 경우 원전 폐쇄 이후로도 전기 요금 증가는 없었다.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인 분트(BUND)의 의장을 맡고 있는 후베르트 바이거 교수는 9일 국회에서 열린 '핵없는 미래를 위한 시나리오' 강연에서 "원전을 폐쇄한 이후로도 실질적으로 전기 비용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후베르트 바이거 교수는 "독일 내에서도 '원전을 정지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등의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면서 "올해 초에 전기료를 인상하긴 했지만 원전 폐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기 발전 운영 비용 자체가 올라 그 비용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 정부의 탈핵 결정이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독일에서 원전 건설, 보수, 운영에 모두 참여하는 최대의 원전 공급 기업 지멘스는 지난 9월 원전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바이거 교수는 "원전을 폐쇄해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통한 혁신에 주력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멘스사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미래 사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실제로 독일은 기계 분야에서 독보적이기도 하고,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라 에너지 절약 기술이 확산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원전을 폐쇄하고 전기요금을 올리면 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원전을 폐쇄하고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은 시장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유인동기가 될 수 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기요금을 올리게 되면 당장은 기업체들이 부담을 지게 될지 모르나 그간 이뤄진 많은 연구를 보면 대부분 기업체가 지는 부담은 잠깐이다"라며 "전기요금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개발해 짧은 시간에 적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환경 규제를 강화할 당시에도 기업들이 '경제활동에 타격을 받는다'고 했으나 실제로 든 비용은 예상치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물마다 에너지 사용량을 명시하게 한다면"
에너지대안포럼은 지난 6일 전력 수요관리와 원전의 단계적 축소 가능성을 검토한 '2030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들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사회적 비용 등을 적극 반영해 결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로부터 독립적인 규제적 전기요금 결정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이들은 "2030년까지 가정용 전기요금은 현재 OECD 평균 수준으로, 산업용 전기 요금은 현재 OECD 유럽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인상하자"고 제안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인상분의 일부는 근로소득세 인하 또는 연금 부담률 경감에 투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병옥 소장은 "한국은 워낙 전기 요금이 낮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며 "건물 단열 기준 강화, 연료 대체 등 여러 방안이 필요하지만 전기 요금 자체가 낮은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전기요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이 갖는 부담 등이 문제기 때문에 전기 요금을 올리면 인상분의 일부는 다시 노동자, 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전기요금 인상만으로는 수요 조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현재 원자력과 관련해서 발전 단가가 지나치게 낮게 잡혀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한전의 적자를 메꿔주는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너지 역진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스 냉난방이나 건물 단열 강화, 고효율 전동기 교체에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가령 각종 부동산 거래에서 '이 건물은 단위 면적당 얼마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을 명시하게 하면 건물의 단열 정도에 따라 거래가격이 달라질 것이고, 이에 더해 단열 강화한 건물에 세제 혜택을 준다거나 하면 집주인들은 건물 단열에 더욱 투자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수요관리 시장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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