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갔다. 많은 이들에게 '상임고문'이란 직함보다는 '선배'라고 불렸던 이, 군부독재 정권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수년째 투병했지만 마지막까지 "2012년을 점령하라"를 유지로 남긴 이. 김근태(1947~2011)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새벽 운명했다.
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엔 이른 새벽부터 소식을 듣고 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의 임종을 지킨 부인 인재근 여사와 유가족들, 민주통합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 등은 침통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김 고문의 별세를 "아름다운 별이 졌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김근태 그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의 심장에 새긴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오전 10시15분,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유가족들이 빈소로 들어갔다. 그 곁은 그의 선배이자 동지인 한명숙 전 총리, 맡상제 역할을 한 이인영 전 최고위원이 지켰다. 조문을 마친 한 전 총리는 김 고문을 이르러 "모두가 침묵하던 시대, 홀로 고된 십자가를 진 우리시대의 영웅이었다"며 "이 시대가, 우리 모두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앞으로 그 빚을 갚겠다"고 했다.
▲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별세했다. 군사독재 시절의 고문 후유증으로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만큼 오랜 세월 투병했지만, '2012년을 점령하라'라는 말을 미자막 유지로 남긴 그다. ⓒ뉴시스 |
생전 그를 '김근태 선배님'이라 불렀던 야권 인사들 역시 속속 빈소에 도착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내 삶의 큰 기둥을 잃은 슬픔"이라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매년 찬바람이 불 때면 고생을 하셨는데, 이번엔 끝내 이겨내지 못하셨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와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는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오늘 아침 5시에 트위터에 올렸다. 아직은 아니라고, 선배님은 아직 할 일이 많은 분이라고, 일어나시라고…그런데 30분 후 속보가 떴다"며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을 잇는 유일한 가교 역할을 한 분이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역시 오전 11시 반께 빈소를 찾았다. 원혜영 공동대표는 "그 분이 씨 뿌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앞으로 민주 양심세력이 노력할 것"이라며 "그게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김근태 선배에게 큰 빚 졌다", 안철수 "안타깝고 슬픈 마음"
오후 들어 유력 대권 주자들 역시 조문을 왔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오후 3시께 빈소를 찾아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김근태 선배에게 큰 빚을 졌다"며 "고인이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살아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조의를 표했다. 문 이사장과 함께 동행한 권양숙 여사 역시 "중요한 시기에 하실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아쉽고 슬프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역시 오후 5시15분께 빈소를 찾았다. 안 원장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이렇게 (김근태 고문을) 보내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깊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의 빌겠다"고 말했지만, 따로 조문을 오지는 않았다.
공식 조문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김근태 고문의 빈소엔 민주통합당 손학규·정세균·정동영 의원, 통합진보당 이정희·권영길·강기갑 의원 등을 비롯한 100여 명의 야권 전현직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오전엔 거의 빈소를 찾지 않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오후 들어 속속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상득·이재오·원희룡·홍사덕·강명순 의원, 김성식 의원(현재 무소속), 나경원 전 의원 등 당 인사들이 조문을 했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 역시 빈소를 찾았다.
장례위원회, '이명박 조화' 거부하다 유족 뜻 따라 받기로
이명박 대통령도 조화를 보냈지만, 이 조화를 받을지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당초 장례위원회는 "생전의 김근태 고문이 이명박 정권을 '민간 독재'로 규정한 바 있고,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의 심판 의지가 있으셨기 때문에 조화를 정중히 거절한다"며 조화를 거꾸로 돌려 놓았지만, 결국 유족의 뜻에 따라 이 대통령의 조화를 받기로 했다.
김 고문의 영정 사진 왼쪽으론 이명박 대통령, 박희태 국회의장이 보낸 조화가, 오른쪽으론 민주통합당 원혜영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보낸 조화가 차례대로 놓였다.
한편, 김근태 고문의 장례식은 '민주주의자 김근태 사회장' 형식으로 5일장으로 치러진다. 공동장례위원장은 김상근 목사, 지선 스님, 함세웅 신부 등 종교계 인사가 맡았으며 공동집행위원장은 장영달, 이인영 전 의원과 박선숙 의원이 맡았다. 장례위원회는 오는 2일 추모문화제를 연 뒤 3일 영결식을 열 예정이다. 장지는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전태일 열사, 문익환 목사, 조영래 변호사 등이 묻힌 마석모란공원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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