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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노예노동', MB정부 들어 심화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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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노예노동', MB정부 들어 심화된 이유는?

[분석] 취업률에 목 졸린 실업계 현장실습…"노동실태 감시해야"

실업계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다슬(가명·19) 양은 지난 8월부터 전자 부품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생산직이다. 직업교육훈련의 일환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6개월 정도 현장실습을 해야 한다.

다슬 양은 부품을 기계에 끼워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을 한다. 벨트 위에서 종일 서서 부품을 끼고 기계를 작동하는 걸 반복한다. 퇴근하고 기숙사에 갈 때면 파김치가 된다. 허리랑 팔목에는 늘 파스가 붙어 있다.

휴식시간은 따로 없다. 점심시간에만 겨우 앉아서 쉴 수 있다. 점심시간은 1시부터 1시 50분까지다. 이 회사에 맺은 노동협약서에는 1시간에 10분씩 쉬는 걸로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쉴 수 있는 시간은 도통 찾을 수 없다. 화장실도 겨우 다녀오는 수준이다.

졸음 참으며 일해도 한 달 110만 원

일하는 시간은 아침 7시4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격주로 야간근무를 한다. 시간은 주간과 같다. 저녁 7시40분부터 새벽 5시30분까지다. 바쁠 때는 추가 근무를 한다.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을 한 적도 있다.

야간 일은 적응하기 쉽지 않다. 졸음을 참기 어렵다. 일하고 와서 잠을 자지만 낮에 자서인지 피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일부러 밤낮을 바꾸려고 주간에서 야간으로 바뀌는 주말엔 일부러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일요일 새벽에야 잠을 잔다. 그렇게 일하고 다슬 양이 한 달에 쥐는 돈은 110만 원.

다슬 양이 일하는 희사에는 절반, 약 100명 정도의 고 3학생이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라인 하나에 8명의 노동자가 일하면 그 중 4명은 학생이다. 하지만 자주 사람이 바뀐다. 일이 힘들어 버티지 못하는 학생들이 그만두기 때문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온 20명의 친구 중 4명만 남았다.

다슬 양도 힘들어 그만두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6개월 이상'이라는 경력을 얻으려 아직까지 일하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한다. 다슬 양은 무남독녀다. 대학엔 가고 싶긴 하지만 나중에 가기로 마음먹은 다슬 양이다.

▲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뉴시스

취지가 엇나간 현장실습

현장실습은 학생들에게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제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며 일자리 연계를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할 목적으로 1963년 산학교육진흥법 이후 도입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취지가 상당히 엇나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정다슬 양의 이야기는 비단 다슬 양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상당수 현장실습 고3 학생들이 겪는 일이다. 저임금, 노동 착취 등으로 학생들의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58시간을 일하던 실업고 3학년 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실업계 고등학교가 현장실습에 대한 사전준비나 교육이 매우 미흡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은 2005년 실습생이 근무 중 사망한 이후 주춤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취업률 증가를 위해 다시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고교생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취업률이 높은 200여 개 학교에만 취업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학생들을 취업현장에 보내는 실정이다.

군포의 한 실업고등학교에서 취업지도를 하는 A교사는 "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라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다. 취업률이 높으면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교사 수는 한정돼 있다 보니 아이들을 취업현장에 보내면서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간접고용 방식으로 실습교육을 받기도 해

노동부가 고시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 규정된 실습업체-학생-학교 등 3자간 협약을 하지 않고 인력파견 업체에 학생을 보내는 간접고용 방식으로 실습교육을 받는 사례가 많은 것도 문제다.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이란 인력파견업체, 용역업체, 사내하청업체에 학생이 파견되는 것으로 학생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에 자신이 어떤 근로조건에서 일하는지도 모르고 착취당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또한, 자신이 일하게 될 업체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인력파견업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묻지마'식으로 업체에 파견돼 여러 문제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 보니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중 상당수는 중도에 그만두는 실정이다. 교육고용패널자료(KEEP) 결과에 기초해 한국청소년개발연구원 김기헌 연구위원이 지난 2006년 12월 발표한 '성별, 학교계열별, 지역별로 실업고 현장실습의 현황'에 따르면 실업고 졸업생의 48.6%는 현장실습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이중 중도 탈락한 학생들이 무려 5명 중 1명꼴.

중도탈락의 이유는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부적응과 같은 개인적 사유가 50.3%로 절반을 차지했고 학교 측의 배치 부적절(6.7%), 산업체의 협약사항 불이행(4.9%), 산업체의 도산(2.5%)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현장실습을 그만둔 학생들의 절반이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다. 현장실습에서 중도 탈락한 학생들의 28.2%는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고 응답했고 18.4%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답했다.

"취업률 낮으면 특성화고 지정 해제하겠다고 압박한다"

김덕우 전교조 실업교육 위원장은 "학생들이 중소사업장을 중심으로 취업하니 전체적으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사례가 많다"면서 "중소업체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을 넘기는 게 예사이지만, 학교에서는 기술을 배우는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참고 일하라고 권유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아이들이 노동 현장에서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한 교육이 교육 과정 내에 없다"며 노동권에 대한 교육을 정규 수업에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지금부터라도 교육청이 실업계 현장실습생의 노동 실태에 대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업계고등학교에 무리하게 취업률을 할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김덕우 위원장은 "교과부는 취업률 50%가 안 되면 특성화고 지정을 해제하겠다고 압박한다"며 "이에 학교는 교과부가 지시한 취업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채용 의사 없이 고용하려는 기업을 묵인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도 돈벌이 하려고 어린 학생들을 데려다가 무리하게 일을 시키는 어른들과 회사의 부도덕한 행태가 문제"라며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도 한국 사회 노동현장 자체가 열악하다는 현실이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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