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위원장이 개국일 종편들이 내보낸 프로그램은 보았을지 궁금하다. 공사다망한 일정 가운데 한번에 4개나 생겨난 방송까지 챙겨보기는 어려웠겠지만, 만약 보았다면 이날 방송을 이끌어낸 '산파'로서 그는 만족했을까.
TV조선은 시작과 동시에 방송사고가 속출했고 MBN은 기존에 해오던 뉴스전문채널의 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뉴스 프로그램으로 상당 시간을 보냈다. 채널A와 jTBC는 31년 전 언론통폐합 당시를 되짚어가며 '자기 정당화'에 골몰했다. 누리꾼들은 '지겹다', '어색하다', '그냥 케이블 방송 같다'는 등의 감상평을 내놓았다.
특히 그간 언론 권력의 최정점에 서온 이들이 마치 '희생양'이고 '약자'인 양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jTBC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원홍 전 문화공보부 장관을 통해 전한 축하 메시지에서 방송 통폐합에 유감을 표한 것을 일종의 '특종'처럼 강조하기도 했다. 정권의 특혜 속에 탄생한 종편이 스스로를 과거 부조리의 청산처럼 홍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착오이거나, 모순이 아닌가. 한 누리꾼은 "꼰대같다"고 꼬집었다.
미디어법 날치기로부터 시작해 채널 번호 선정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와 편법, 외압으로 얼룩졌던 종편이다. 이러한 논란으로 소모된 사회적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나올 것이다. 실제로 이들 채널이 10번대 자리를 차지하면서 밀려난 PP들은 당징 존폐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막상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뚫고 현실화된 방송을 보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이런 채널이 필요한 것일까.
이들 방송은 아무리 점수를 높게 쳐줘도 지상파 방송의 모조품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이 내세우는 드라마는 지상파 방송에서 날렸던 감독, 작가들의 작품이고, '새롭다'고 자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은 역시 지상파에서 잘나갔던 PD와 연예인들이 나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종편의 뉴스가 좀 더 어색하고, 카메라 워크는 좀 더 서툴고, 때때로 방송 사고가 난다는 것 정도?
그간 이들 신문이 강변했던 방송의 다양성, 글로벌 경쟁력 등의 구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이들 방송이 내놓은 프로그램 소개나 개국축하 방송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참신한 기획 보다는, 지명도 있는 연예인을 내세우거나 기존에 많이 보던 포맷을 들여온 '안정적 편성주의'만이 도드라졌다.
경영난을 겪어오던 신문들이 지상파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우리도 비슷한 방송을 하니 광고를 달라'고 하기 위한 프로그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면 지나친 비난일까? 이미 기업들은 이들 종편이 광고 단가를 '지상파의 70%'로 정하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탓에 골머리를 썪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양화가 아니다. 이들 채널의 등장으로 대표적 공익채널인 EBS가 자리를 뺏길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케이블TV 업체들은 지난달부터 EBS를 상대로 현재 13번인 방송채널을 2~6번으로 옮길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종편 채널이 알짜 자리에 대거 유입되면서 줄어든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이들 4개 매체 가운데 과연 어느 매체가 살아남을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일 '법 없는 전쟁' 또한 지켜봐야할 중요한 포인트다. 그러나 적어도 한정된 광고시장에 대형 방송을 4개나 던진 최시중 위원장은 이들 방송이 '선정적이 되지말라'고 훈계할 자격은 없을 듯하다. 그가 방통위원장으로서 해온 가장 큰 업적이, 방송을 '교양', '다양성'도 없는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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