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거대한 모자이크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됐다. 하지만 강남구 압구정동이라는 조각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은 바로 옆의 판자촌 구룡마을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 선거를 앞둔 지금, <프레시안>이 서울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유다. 서울을 제대로 바꾸려면, 먼저 서울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은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의 속살을 살피는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
- 시장 후보들은 모르는 '서울의 속살' ☞<1>아직도 '박카스 아줌마'…'서러운 황혼'이 기댈 곳은 어디에? |
대뜸 기자에게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이용섭(가명·32) 씨가 팔을 끌어당겼다. 정오에 가지 않으면 점심 배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시곗바늘은 11시 50분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이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기자는 엉겁결에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거부하다간 인터뷰가 무산될 듯했다.
이 씨의 손이 이끄는 곳은 서울역 광장에서 남영동 방면으로 200m 떨어진 3층짜리 건물인 '따스한 채움터'. 이미 노숙인 상당수가 배급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한 건 65세 이상 노숙인과 65세 이하 노숙인을 구분해 배식을 달리한다는 점이었다.
이 씨에게 물어보니 서로 너무 싸워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조처를 한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65세 이상 노인은 대접을 받으려 하고 65세 이하 '나름' 젊은이들은 대접이 웬 말이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는 이들끼리 식칼을 들고 싸우기까지 했단다.
노숙인 위한 시설이 두루 갖춰진 서울역 주변
'따스한 채움터'는 2010년 5월 서울시에서 노숙인을 위해 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이 줄을 서서 밥을 먹는 모습이 보기 안 좋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서울시가 기존 상가를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리모델링에 앞서 서울시는 서울역 주변 급식단체들로부터 거리급식을 자율적으로 자제하고 실내 급식장에 참여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
▲ 서울역에서 무료배식을 받고 있는 노숙인들. ⓒ프레시안(최형락) |
현재 이곳 '따스한 채움터'에서는 노숙인다시서기, 구세군, 브릿지센터, 사랑의 등대, 소중한 사람들 등 여러 단체들이 노숙인을 위해 돌아가면서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 기자로서는 난생처음 무료 급식을 받는지라 바짝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맨발로 무료 배급소를 다니는 이부터, 밥이 적다고 소동을 피우는 이까지, 급식장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했다.
이날 점심 급식을 맡은 곳은 서울역 부근에 있는 교회였다. 교회 신자로 보이는 50대의 여성은 반찬을 식판 위에 놓아주며 "예수님, 믿으세요"를 반복했다. 교회 목사도 노숙인들에게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며 "예수 믿고 좋은 세상 가라"고 말하며 연신 '할렐루야'를 외쳤다.
이날 반찬은 어묵 볶음과 백김치, 그리고 콩나물국. 이 씨는 "배식 시간에 늦어 밥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서울역에 있으면서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다"고 웃었다. 서울역 주변에는 이곳 말고도 여러 교회와 센터 등에서 급식하고 있다.
서울역 주변에는 급식뿐만 아니라 노숙인의 건강을 검사해주는 무료 진료소도 있다.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는 하루 100여 명의 노숙인을 치료해주고 있다. 드림시터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오면 세탁과 이발을 해준다. 또한 구직을 원하는 노숙인을 위해 증명사진도 찍어준다. 모두 무료다.
'짤짤이 순례'부터 '쌩꼬지'까지
반면, 담배나 술 같은 건 얻기 힘들다. 이 씨를 비롯한 몇몇 노숙인은 일명 '짤짤이 순례'를 통해 이를 충당한다. '짤짤이 순례'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목사에게 돈을 받는 걸 뜻한다. 작게는 500원, 많게는 1000원을 받는다. 이 씨는 "오전 7시부터 배식시간인 정오 전까지 부지런히 교회를 돌아다니면 4000~5000원 정도를 벌 수 있다"며 "이 돈은 밥값보다는 담뱃값 등으로 쓴다"고 설명했다.
물론 '짤짤이'를 하려면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구제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교회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교회가 서로 가까이 모여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짤짤이'마저도 귀찮으면 노골적으로 구걸하는 일명 '생꼬지' 노숙인이 된다. '생꼬지' 노숙인은 역사를 오가는 불특정 다수 행인에게 직접 담배나 돈을 구걸하는 이를 일컫는다. 일반인보다는 인심이 후한 군인이 주된 표적이 된다고 한다.
이 씨는 "'생꼬지'를 한다는 건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손대기 어려운 돈벌이 수단"이라며 "노숙인 사이에서도 '꼬지'에 재미를 붙인 사람은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사람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 사이에도 등급이 있는 셈이다.
▲ 서울역 앞 노숙인. ⓒ프레시안(최형락) |
물론 처음부터 이 씨 등이 노숙인이었던 건 아니다. 고아원 출신인 이 씨는 부산에 있는 고아원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하지만 친구들이 고아라고 괴롭히는 것도 싫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이런저런 막일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공사판에서 만난 형이 배를 타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따라 나섰다가 죽어라 일만 하고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후부터 일하기가 싫어졌다. 노숙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또 다른 노숙인인 이민성(41) 씨는 쪽방 생활을 하다 2005년부터 노숙인 생활을 시작했다. 충북 제천이 고향이다. 아버지 폭력에 못 이겨 30여 년 전인 초등학교 때 가출을 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형이 5명이고 누나가 4명이나 있지만 모두 가출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연락은 안 하고 산 지 오래됐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엔 스카라 극장 근처 쪽방에서 우연히 알게 된 형들 틈바구니에 끼어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잡부, 신문 배달, 벌목, 새우잡이, 행상 등 안 해본 게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번번이 형들에게 빼앗겼다. 일도 힘들고 형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힘들어 결국 견디다 못해 그곳에서 나와서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다.
무작정 나가라고만 하는 서울역, 그럼 노숙인은 어디에?
물론 노숙인이 서울역에서 1년 내내 노숙하는 건 아니다. 모든 노숙인이 그런 건 아니지만 3월께, 건설업이 활성화돼 일용직 일거리가 생기면 거기서 일한 돈으로 쪽방촌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프레시안(허환주) |
서울시도 노숙인의 잠자리를 위해 노숙인 쉼터를 운영한다. 하지만 노숙인은 이곳을 가기 꺼린다. 이곳은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술, 담배 등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등 규율이 엄격하다.
이동현 홈리스 간사는 "노숙인의 특성상 어딘가에 얽매기가 싫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규율로 조정하려 하니 어느 노숙인이 들어가려고 하겠냐"고 쉼터를 노숙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한겨울에는 노숙인이 서울역사 내에서 잠을 자는 게 일반화됐다. 하지만 그나마도 지난 8월 22일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가 시행된 이후에는 서울역 내에 노숙인은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역 내 노숙인의 존재가 혐오감을 끼친다는 이유로 코레일은 이와 같은 조처를 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서울시는 퇴거 조치 이후 "서울역에 노숙인 수가 112명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무료배식 봉사단체에서는 노숙인 수의 직접적인 지표인 무료 급식소 이용 인원은 매일 300~350명으로 이전과 같다고 주장한다.
서울역 인근에서 무료배식 봉사를 하는 관계자는 "강제 퇴거 이전과 이후가 별반 차이가 없다"며 "무료 급식소와 진료소 등이 있는 서울역을 노숙인은 잘 떠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코레일은 엄동설한에 노숙인의 잠잘 곳만 빼앗은 셈이 된 것.
IMF 사태 당시 사업을 하다 연쇄부도 사태에 휘말리며 노숙인이 된 이철재(가명·52) 씨는 "서울역에서 잠을 잘 수 없게 하니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남대문 일대 지하도로 들어가 잠을 잔다"며 "그리곤 다시 서울역으로 와서 배식을 받고 '짤짤이'를 하든, 일자리를 구하든, 각자 자신의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 ⓒ프레시안(최형락) |
지하주차장에서 자던 노숙인 차에 4번이나 치여 사망
지난 13일에는 송파구 모 아파트에서 박 모(55) 씨가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에 4번이나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역사 홈리스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박 씨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 건 저녁 8시"라며 "추위를 피해 잠자리를 구하려다 이런 참변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공대위는 "박 씨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죽은 이유는 우리 사회가 공공의 장소에서 노숙인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는 노숙인에게 쉼터로 대표되는 시설, 그들만의 공간만 허용할 뿐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불편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서울역에서 내몰린 노숙인은 최근 서울역 인근 지하도로 몰리고 있다. 추위를 피해 잠자리를 확보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도 숨지 박 씨와 같이 위험한 잠자리를 찾는 노숙인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 셈.
여성 노숙인의 경우는 그 경우가 심각하다. 지난 9월에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지적장애 여성 배모 씨가 납치를 당해 보름 동안 감금을 당하고 16차례나 성폭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적장애 여성을 납치한 30대의 남성은 또 배씨를 은행으로 데려가 통장과 체크카드를 재발급하고 인터넷뱅킹에 가입시킨 뒤 컴퓨터를 이용해 배 씨의 장애인 수급비 5만 원을 이체해 빼앗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강제퇴거 조치 이후 여성 노숙인은 이런 위험에 더 노출됐다고 공대위 관계자는 설명한다.
노숙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게으르다, 더럽다, 피해를 준다' 등의 표현이 떠오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내기만 하는 게 올바른 정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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