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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으로 '열불' 났다고? 난 '패시브하우스'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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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으로 '열불' 났다고? 난 '패시브하우스'에서 산다"

에너지 낭비 없는 '패시브하우스'…"확대하려면 시민의식 필요"

전기가 끊기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지난 15일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며 전국이 혼란을 빚었다. 은행 업무는 마비됐고, 사무실에서 전산업무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을 내려놓고 찜통더위 속에 전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집이나 사무실에 자가 발전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비상시를 대비해 이것을 구비해 놓는 주택이나 사무실은 거의 없다. 전기는 늘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통념은 근거가 약하다. 전기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잠재적 위험과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은 이러한 경고를 보낸 사건이다. 에너지 생산 및 공급 방식을 바꾸는 게 한 대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게 필수적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안은 이미 다양하게 연구돼 있다.

그 중 꽤 주목받는 것이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다.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 낭비를 막고 외부로 열이 새는 걸 방지하는 주택을 뜻한다. 패시브하우스는 난방 할 때 쓰는 에너지가 연간 15kWh/㎡를 넘지 않게 설계된다. 보통 주택에서 쓰는 난방 에너지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 성남 삼평동 탄소제로우체국. 비록 완벽한 패시브하우스 성능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탄소배출제로의 건축물을 완성했다. ⓒ한국패시브건축협회
패시브하우스, 열을 가능한 적게 밖으로 내보내는 원리

패시브하우스의 기본 원리는 해가 비칠 때 가능한 한 많은 빛을 받아들여 집을 데운 후, 그 열을 가능한 한 적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단열을 위해 3중 유리를 쓰는 것은 물론, 바닥, 지붕, 벽, 창틀까지 단열재가 쓰인다. 유리 사이에는 공기 대신 아르곤(Ar), 크세논(Xe)이 주입된다. 아르곤, 크세논은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낮고 결로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세부 구조를 보면 환기는 두 개의 관을 통해 이뤄진다. 한 관은 실내 공기를 내보내고, 다른 한 관은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여온다. 바깥 공기는 열 교환기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실내 공기로부터 빼앗은 열로 데워진 뒤 실내로 들어온다. 이에 영하 10도일 때도 실내는 17도를 유지할 수 있다.

여름에도 냉방은 필요 없다. 패시브하우스는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적어지도록 설계한다. 집을 둘러싼 단열재는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는다. 더운 여름에 찬물을 단열재로 감싸두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가격은 새로 지어진 같은 넓이의 주택보다 10% 정도 비싸지만, 이는 냉난방비 절약으로 수년 내 회수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화석연료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자연이 주는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해 집을 짓는 것이다.

전체 에너지소비량 가운데 건축물에서만 소비하는 에너지가 24%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패시브하우스의 필요성이 어필되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패시브하우스 보급률은 저조하다.

한국엔 3년 전 알려졌지만 유럽은 20년 전부터 건축

패시브하우스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약 3년 전이지만 이미 유럽 지역에서는 20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다. 독일 헤센(Hesson) 주 경제부의 지원 하에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에 첫 패시브하우스가 들어선 뒤로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2009년부터 모든 건물을 패시브하우스 형태로 설계하여야만 건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 독일은 현재 1만여 채의 패시브하우스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주택의 에너지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저탄소 주택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유럽은 10~20년 전부터 건축물 에너지 효율화를 주요 추진과제로 정하고 정부 주도로 5년 단위로 에너지 기준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국패시브건축협회

유럽연합(EU)는 2008년 말 '기후와 에너지 관련 20·20·20 법'을 통과시켰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0% 줄이고, 에너지 효율은 20% 향상시키며, 신재생에너지를 20% 수준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2009년 'EU 배출권 거래제법'을 개정해 온실가스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가 적용되는 업체를 확대했다. 현재 EU권내 주거용 건물에는 패시브하우스 보급이 본격화되고, 비주거용 건축물에까지 연계 도입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의 경우, 2020년까지 ㎡당 에너지 소비량이 230㎾인 공동주택 80만 개를 150㎾ 이하 주택으로 재건축할 예정이다. 영국의 경우, 2016년까지 모든 주택을 탄소제로(0) 주택으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2007년부터 주택을 매매하거나 임대할 때 에너지성능서 첨부를 의무화했다. 2008년 5월부터는 모든 신축주택의 에너지와 탄소 배출량을 평가하는 '그린홈 1~6 등급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1994년부터 에너지 사용량을 30% 이상 줄인 주택을 2012년 말까지 100만 가구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효율성이 집값에 반영돼 실제 미국에서 그린빌딩 인증 건물은 일반건물보다 임대료는 약 4.5%, 매매가격은 25% 정도 높게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주택 단열성능 향상 등을 통해 냉난방 소비 20% 절감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사용 합리화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도 2030년부터 신규 주택에 한해 제로에너지 주택 의무화를 시행할 예정이다.

중국은 2004년 주택건설기준을 마련해 1980년대보다 에너지 저감률 65% 이상인 주택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2004년 모든 주택에 외단열재 적용을 의무화했고, 전국을 5개 기후지역으로 구분한 후 화북지역부터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또 최근 외단열 방화기준 제정연구도 활발해 관련제도 개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시민 의식 성장하지 않는 한 패시브하우스 도입은 어렵다"

국내에서는 2002년부터 친환경건축물 인증 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는 주택성능등급 표시제도 시행으로 에너지성능을 4등급으로 나눠 500채 이상 공동주택의 경우 분양공고를 할 때 이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 흐름과 비교하면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그나마 그린홈 관련 기술개발은 2006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 시작했으나 민간에서는 극히 일부 건설업체만이 자체 연구개발을 시작한 정도다. 이 영향에서인지 현재 한국 패시브건축협회에 등록된 패시브하우스 주택수는 30여 채에 불과하다. 그나마 독일에서 인증받은 패시브하우스는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설계한 인천 청라지구 아파트 내 노인정 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제도나 의지보다 중요한 건 실제 주택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의지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유럽보다 20년 늦게 패시브하우스가 도입됐다"며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물론 한국 정부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패시브하우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하지만 패시브하우스는 정부가 관심을 갖고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정작 시민의 의식이 성장하지 않는 한 정착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 실시해도 시민 의식, 즉 전기 등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줄이려는 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패시브하우스와 같은 주택은 보급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국전력공사에서는 이번 정전을 두고 급증한 전기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상황에서 패시브하우스 도입은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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