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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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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①] 원산지 표시 단속 현장

2008년 광화문에서 타올랐던 촛불. 당시 국민들이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강화하고, 국내산 쇠고기의 이력제는 물론 지난 겨울에는 수입쇠고기도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제 어지간한 먹거리는 '출생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다만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품 안전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도에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총 5회에 걸쳐,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국내산 쇠고기 이력제 등의 시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짚어본다.<편집자>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지난 7일 오후 서울 영등포시장.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 사이로 반팔 셔츠에 단정한 차림을 한 남자 두 명이 정육점과 방앗간을 누비고 있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서울사무소 직원들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이들은 빨간 고무 대야에 말린 고추와 고춧가루가 잔뜩 쌓여 있는 한 매대에 멈춰 섰다. 모든 고무 대야에는 '국산', '중국산'과 같이 원산지가 표시돼 있었다. 박해진 주무관이 '국산'이라는 푯말이 꽂혀 있는 한 대야의 고춧가루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임상균 주무관과 무언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끝나자 임상균 주무관이 점원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원산지 표시 단속 중임을 알렸다.

"저쪽 대야에 있는 '국산'으로 표시된 고춧가루, 100% 국산 맞습니까?"
"그럼요."

점원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임 주무관이 점원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시료를 채취해 원산지 검정을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그러세요. 그런데 제가 주인이 아니라서…."


▲ 시료채취를 하고 있는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 ⓒ프레시안(김하영)

점원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에 섞인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사이 임 주무관은 시료채취용 봉투 두 개를 꺼냈다. 봉투는 날인된 채 밀봉돼 하나는 시험연구소로 보내져 화학적 검정을 받게 되고, 나머지 봉투 하나는 역시 밀봉돼 업소에서 보관한다. 부정 검사 시비를 막기 위해서다.

임 주무관이 고춧가루를 퍼서 봉투에 담고, 박 주무관은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점원은 "(중국산이) 조금 섞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주무관은 "사실 100% 국내산은 별로 없기 때문에 일단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둘러봤던 가게에서는 '국산 80%+중국산 20%', '국산 50%+중국산 50%'와 같이 대부분이 혼합인 걸로 표기가 돼 있었다.

색깔로도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장마철에 빻은 고춧가루는 평소와 색깔이 다소 다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DNA 검사나 화학적 검정을 통해서 중국산 여부를 판별할 수는 있을까? 박 주무관에 따르면 고춧가루는 화학적 검정을 거치고, 쌀의 경우 중국에서 수입될 때 모두 샘플을 채취해 DNA 정보를 모아놓고, 수집된 중국산 쌀의 DNA와 비교하기 때문에 중국산을 거의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이날 단속을 하던 가게는 다행히 의심을 받던 고춧가루가 100% 국내산으로 결론 내려졌다. 주인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간 사이, 지인이 가게를 봐주면서 생긴 혼선이었다.

"김서림 방지액 좀 드려야겠어요"

이날 두 주무관은 이 고춧가루 가게 외에도 양평동에 있는 육류 통신판매 업체와 영등포시장의 정육점 한 곳을 더 돌아봤다.

육류업체 단속은 더 꼼꼼하다. 등심, 치맛살 등 고기를 포장할 때 원산지를 표시해야하는 것은 물론, 수입육의 매입 물량과 판매 물량을 모두 장부에 기재해 둬야 한다.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들고 나는 양을 체크해 부정 유통의 여지를 줄인다. 두 주무관은 냉동창고와 포장 현장에서 원산지 표시가 정확히 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외에도 업체의 장부까지 체크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고춧가루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나 쇠고기 같은 육류도 육안으로 혐의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몇 가지 힌트는 있다고 한다.

"삼겹살 같은 경우에는 커팅하는 방식이 외국과 조금 달라요. 우리나라는 삼겹살이 비싸기 때문에 삼겹살에서 이어져 붙어 있는 등심까지 조금씩 포함해서 커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삼겹살이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등심을 빼고 정확하게 삼겹살만 커팅을 합니다. 그래서 국내산 삼겹살이 외국산보다 조금 더 긴 편입니다. 국내산으로 표시돼 있는데 등심이 조금 붙어 있지 않고 정확하게 삼겹살만 커팅이 돼 있으면 일단 의심해볼만 하죠."

임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한 뒤, "그런데 모르죠. 이 점을 악용해서 국내 수입업자들이 외국에 주문할 때 등심까지 조금 포함시켜 커팅해달라고 할지"라고 덧붙였다.

육류업체에서 DNA 시료를 채취해 검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또한 한계가 있다. 한우는 털이 노란색이기 때문에 DNA 검사를 통해 99% 이상 구별해낼 수 있지만, 한우가 아닌 육우의 경우 외국산과 DNA 차이가 크지 않아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유통 관리와 현장 적발이 더 중요하다.

"결혼식 뷔페에서 육회 드셔보셨어요? 원산지 본 적 없으시죠?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음식도 당연히 원산지 표시 대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아주 싼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곳에 걸어 놓고 그러거든요. 그런 곳은 물론 장례식장의 머릿고기나 육개장도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단속 대상입니다."

"결혼식장 특별단속을 통해 20곳 중 10곳이나 적발했다"는 박 주무관은 현장 단속이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과거에는 대형 식당만 원산지 표시 대상이었다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전 업소로 확대 시행 됐죠. 대부분이 영세하다 보니 '경기도 안 좋은데'라며 앓는 소리 하는 데가 많죠."

다만 그는 식당 운영의 철학이 좀 바뀌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놨다.

"식당은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파는 곳입니다. 내 가족에게 음식을 낸다고 생각하면 원산지 속여서 가격 올릴 수 있겠어요? 음식을 이윤으로만 접근하니까 거짓표시 유혹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얼마 전에 원산지를 '국내산 젖소'라고 표시하고 파는 식당을 보고 놀랐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떳떳하게 표시하고 값을 싸게 받는 집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가고 싶을 겁니다."

냉동창고에 드나들 때마다 두 주무관의 안경에는 허옇게 김이 서렸다. 이들에게 김서림 방지액이 필요해보였다.

지자체, 단속 하고 있는거니?

2008년 이후 국민들의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원산지 표시제도도 강화됐다. 미표시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고 '거짓표시'의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짓표시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원산지 거짓표시 업소를 신고해 적발에 도움을 주면 포상금도 지급한다. 최근 고시된 안에 따르면 '위반물량 실거래가액'을 기준으로 포상금은 최소 10만 원에서 최고 200만 원이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은 현장 불시 점검, 일제 점검 외에도 부정유통 신고(1588-8112) 전화를 통한 단속도 한다. 많을 때는 하루 4~5건 씩 신고가 들어오는데 관계자에 따르면 "내가 20년 동안 다닌 집인데, 고기 맛이 달라졌어"라는 막연한 신고도 있지만, 제법 신빙성이 있는 제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보통 신고된 업소의 50% 정도는 거짓표시로 적발된다고.

위반업소는 인터넷에 공개된다. 농식품부 홈페이지(www.mifaff.go.kr) 우측 상단의 '원산지 거짓표시 공표' 코너(☞바로가기)에 가면 영업소 명칭, 영업소 주소, 위반 농수산물 명칭, 위반내용, 처분일자, 처분내용 등이 표시돼 있다. 소재지와 업체명으로 검색도 가능해 관심 업소의 위반 이력도 조회해볼 수 있다. 공개 내역을 보면 매일 적지 않은 업소들이 적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프레시안

이는 법적 의무사항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 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나 시·도지사는 거짓표시로 처분이 확정된 경우 처분 내용, 해당 영업소와 농수산물 등의 명칭 등 처분과 관련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나 시·도의 홈페이지에 공표하여야 한다"(제9조 제2항)고 규정돼 있다.

원산지 표시 단속을 다닐 때 가게 주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있다. "얼마 전에 왔다 갔는데." 원산지 표시 단속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서울의 음식점만 10만 개가 넘고, 각종 시장과 마트까지 합하면 농산물품질관리원 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서울사무소의 현장 단속 인력은 8명. 따라서 주로 단속이 이뤄지는 곳은 지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자체는 별도로 적발 내용을 공표하는데, 농식품부 홈페이지처럼 일원화 돼 쉽게 볼 수 있지 않고 제각각이다. 위에서 소개한 농식품부 사이트에서는 농식품부 산하기관이 적발한 내용만 볼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식품안전정보포털(FSI)'를 운영하는 등 먹거리 안전정보 제공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지만, 거짓표시 업소 명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파일을 첨부했을 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별도의 공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지자체도 업체 단속 결과를 찾아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일부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와 공지사항 등을 검색해봤지만,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개된 단속 정보가 부족했다. 위반 업소 자체가 적을 수도 있으나, 적은 인력의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적발해 공개한 양만 해도 1년 동안 3000건이 넘는다. 이에 비하면 지자체는 단속 활동이나 공개 양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산지 거짓표시 업소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통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 보인다.

원산지 표시를 장려하기 위해 업체에 지급되는 원산지 표시 푯말도 기관별로 제각각이었다. 영등포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가끔 공무원들이 와서 원산지 안내 책자도 나눠주고 교육도 하고 푯말도 나눠준다"며 "우리 가게에만도 서울시 푯말, 영등포구 푯말, 지식경제부 푯말, 농식품부 푯말 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저것 받는대로 꽂아놓기는 하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데 이거 하나 통일이 안 되는데 통일이 되겠느냐"면서 껄껄껄 웃었다.

▲ 영등포시장에는 세 종류의 원산지 표시 푯말이 존재한다. 서울시, 영등포구청, 지식경제부. ⓒ프레시안(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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