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저 아이 가졌어요" 그 한마디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저 아이 가졌어요" 그 한마디에…

[사장님은 '출산 훼방꾼'?·上] "출산휴가 쓰면 우린 잘리는 건가요?"

"오늘날 새로운 시어머니는 바로 기업입니다. '아들 낳으라'던 예전의 시어머니는 이제 없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을 것이냐라는 문제를 좌우하는 결정권은 기업이 갖고 있습니다."

김용익 미래발전연구원장은 지난 28일 '고령사회와 복지국가' 강연에서 "기업이 가족 친화적이 되지 않는 한 한국의 장래는 없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기업 문화, 혹은 노동 환경에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와 일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크게 다르다. <편집자>

비정규직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리는

지난해 11월 결혼한 A씨는 임신한 지 9주째다. 아기를 가졌다는 기쁨도 잠시, 걱정거리가 태산이다. 그는 지난 2년 간 파견직으로 나와있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기로 하고 재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보다 재계약 날짜는 늦어지고 '임신이 알려지면 재계약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3개월이 되도록 아직 임신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진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에게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회식에서 술을 권하는 과장에게 '저 내년에 아기 낳아요'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장거리 회사 행사에 다녀오길 강요하는 팀 구성원들에게는 '실은 아기가 생겨서, 입덧도 있고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말했다. 다른 팀원이 가기로 했지만 눈치를 적잖이 보게된다. 그러나 얼마 전에는 다른 부서에 한 계약직 선배가 임신 사실을 끝까지 숨기다가 유산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말하고 나니 인사팀에서 '재계약은 안되겠다'고 통보가 올까봐 걱정이 크다.

A씨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임신 소식에 회사 눈치부터 봤다는 이야기는 가상이 아니다. 금융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B씨 역시 정규직 전환을 한 달 앞두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역시 회사 눈치를 보는 중이다. 그는 "몇달 전에 함께 일하게 된 동료는 계약하고 나서 임신했다고 밝혔다"며 "'왜 계약 때 밝히지 않았느냐'는 눈총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많은 비정규직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퇴사 압력을 받는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은 "사실 정규직 여성도 출산, 육아 등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인데, 비정규직 여성은 이에 고용 불안 문제가 겹쳐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다. 올해 3월 초 한 초등학교에 채용됐는데 3월 말에 임신 사실을 알게됐다. 교장은 '출산휴가를 줄 수 없다'면서 7월 방학 때까지는 봐줄 테니 그때까지 일하고 '개인사정'으로 사직서를 쓰라고 한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임신, 출산' 차별 집중 상담 사례 중)

"회사에서 1년 단위 계약으로 시간제로 근무하고 있다. 12월 말에 재계약을 하는데 11월 말에 임신 사실을 알게됐다. 상사는 1월부터는 당연히 퇴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차피 몇 개월 일하고 다시 출산휴가달라고 할거 아니냐. 우리는 출산휴가 없다'고 하더라. 사내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도 힘들고 결국 퇴사했다. 고용보험도 꼬박꼬박 냈는데 출산휴가 급여도 못받게 됐다." (30대 시간제 계약직 여성)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 같은 거 없다"?

산전후휴가(출산휴가)는 출산장려 정책의 기본이지만, 비정규직에게는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이소희 활동가는 "근로기준법 상 출산휴가는 법정휴가로 계약직, 임시직 등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보장된다"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사용주가 '우리 회사에서는 출산휴가를 주지 않는다'는 불법 논리로 사실상 퇴직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출산휴가를 요청했더니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없다며 안된다고 한다. 앞서 근무했던 여성들도 그래서 다 그만두고 나갔다. 나는 7년이나 근무했고 100명이 넘는 사업장이다."
(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임신, 출산' 차별 집중 상담 사례 중)

이렇다보니 비정규직 여성들 또한 '출산휴가'를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고용평등상담실에는 '계약직인데 출산휴가를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많이 온다"며 "그만큼 당연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앞서 든 사례 중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역시 불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황현숙 회장은 "이 경우 학교를 상대로 부당해고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소송 중에 계약기간이 끝나는 경우가 많고 소송 기간 학교가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 생계가 걸려 있는 경우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서울시내 사무실 밀집 지역을 운행하는 '찾아가는 출산 장려 버스-맘이 좋은 방' 행사에 참여한 임산부들.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비정규직 출산휴가 급여는 회피용?

다수의 사업주들이 비정규직의 출산휴가를 거부하면서 흔히 드는 이유는 '예산 부담'이다. '출산휴가 급여를 줄 돈이 없다'는 것. 고용보험은 비정규직이 많은 근로자 500인 이하의 기업을 '우선지원대상기업'으로 선정하고 출산휴가 90일 간의 급여를 한달 최대 135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올 3월 기준 36.2%에 그친다는 것.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출산휴가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고용보험에 180일 이상 가입되어있어야 한다"며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사업주는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 법에 따라 출산휴가 급여를 줘야할 의무가 있다.

결국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출산휴가 급여도 제공받지 못하고 기업에서도 '출산급여 줄 돈이 없다'며 해고를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이소희 활동가는 "이 경우 회사에 고용보험에 당연히 가입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며 "출산휴가와 휴가 급여는 당연한 권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은 "일본 등의 나라에서는 출산휴가 급여를 고용 보험이 아닌 건강 보험에서 지급한다"며 "우리나라도 자영업자든 비정규직이든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낳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체제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체계가 중증 환자 치료만큼 모성 지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산 휴가 중 계약기간 만료 됐을 때…정부 대책은?"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1,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여성 노동자들은 출산휴가 기간과 계약 종료일이 겹치는 문제를 겪는다. 근로기준법은 출산을 이유로한 해고는 물론 산전후 휴가 기간 및 그 후 30일 동안의 해고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직 노동자의 경우 사측이 '기간 만료'를 이유로 내세우면 문제 삼기 어렵다.

"출산 휴가를 가려고 하는데 재계약 날짜가 출산휴가 중에 포함된다. 인사팀에서는 출산휴가 기간이라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끝이라고 한다. 그럼 법적으로 보장받은 출산휴가를 쓰려면 날짜를 잘 맞춰서 출산휴가를 들어가고 계약 날짜에는 복귀 상태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계획적으로 임신을 할 수 있나. 출산휴가를 기다리는 여직원 모두 궁금해한다. 출산휴가를 쓰면 우리는 그냥 잘리는 건지…."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온라인 상담 중)

이는 출산휴가 급여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출산 휴가 급여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계약직 노동자들은 근무 기간 동안 고용보험을 납부했음에도 출산 휴가 중의 계약기간 종료로 출산휴가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현실을 정부도 알고 있지만 대책은 미비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출산휴가 문제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출산 휴가 중 계약이 만료됐을 경우"라며 "그러나 고용주가 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다면 사실상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출산휴가 중인 비정규직 여성을 계속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월 40~60만원을 지급하는 '출산 후 계속 고용 지원금' 제도 정도를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효과는 거의 미비하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은 "비정규직 여성의 계약기간을 출산휴가를 포함해서 연장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운 좋게 계약 기간내에 출산휴가를 쓰고 복귀한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 회사에서는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최악의 인사고과를 받는다. 인사고과가 낮으면 다가오는 재계약에서 크게 불리해진다. 사실은 출산, 육아 때문이면서 계약을 거부하면서는 점수가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저 출산 휴가를 다녀온 동료는 계약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그간 업무 성적이 좋았지만 다가오는 재계약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공사에 근무하는 30대 계약직 여성)

'출산휴가'라는 단어도 없다, 특수 고용직

게다가 비정규직 중에는 출산과 육아에 있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절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다. 학습지교사, 캐디, 간병인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유명자 재능교육 노조 지부장은 "임신을 했을 경우 '일시 계약 정지' 제도라고 해서 최대 6개월까지 계약을 정지하는 제도가 있다"며 "그러나 복귀 시 그간의 근속연수와 누계 실적만 인정될 뿐 급여는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육아휴직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을 한다면 6개월 간 수입을 보장할 방법이 없고, 또 육아휴직도 없으니 육아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출산을 생각하면 퇴사한다"며 "사측에서 근속연수가 짧은 것을 두고 우리가 개인사업자라는 근거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런 문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실이다 보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등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며 "재능교육의 경우 2000년 임단협 체결 할 때부터 지국별 탁아방 운영을 요구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라"라고 말하면서 "이런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학습지 교사들은 갈수록 20대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모성보호의 사각지대' 비정규직, 여성의 60%

현실이 이렇다보니 극단적인 선택도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비정규직임을 이유로 임신중절 수술을 고민한다는 상담을 받기도 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직년 3월 께 한 남성이 이메일로 상담을 청했다"며 "둘다 직장에서 일하는 맞벌이이나 비정규직이고 돈이 없어서 임신중절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경우 비정규직이라는 것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적 이유가 컸던 것 같다"며 "실제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이 중에는 기혼자가 60%에 달할 만큼 많고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를 든다. 이는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없는 열악한 여성 노동 현실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실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분석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은 441만 4000명으로 전체 여성 임금 노동자의 60%에 달한다. 과반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이 모성보호 정책에서 사실상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이중 출산과 육아가 활발한 25세부터 39세까지의 여성으로 한정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이 연령대의 비정규직 여성은 124만 7000명으로 여성 임금 노동자 399만 5000명 중 31%에 해당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소희 활동가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출산과 양육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고용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절실한 대책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