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김 지도위원은 한번도 따뜻한 방에서 잔 적이 없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고(故) 김주익 씨가 죽었던 자리에 섰다. 회사는 변한 게 없다. 한진중공업은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노동자를 잘랐다. 이익은 오로지 주주의 몫일 뿐이었다.
김 지도위원이 선 자리,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한 상징이 됐다. 사회안전망이 없다시피한 한국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땅에서 노동자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굴해지거나, 아니면 목숨을 걸거나.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런 두 가지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한 독자 기고를 받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삶과 투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한 생각 등을 다룬 내용이면, 누구나 글을 보낼 수 있다. 이 메일 주소 mendrami@pressian.com 또는 kakiru@pressian.com로 보내면 된다.
우리는 스물 두명이 새로이 연행된 7월 4일 밤 85호 크레인 앞 돗자리 대오에 합류했다. 도착 전 부산대 로스쿨생 등 타법학도들과도 조우했다. 이 마당에 법이 해결에 주는 게 무엇이냐 마는 그러기에 아주 법적인 인간들로 모인 대오였다.
김진숙 지도위원, 김진숙 지도, 김 지도, 진숙 누나 언니, 진숙 이모… 부르는 이름은 저마다 다르지만 사실 같은 것을 부르고 있었다.
"김진숙은 살아서 내려와야 한다!"
이 보다 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투쟁이 있을까. 김주익의 죽음. 그 곳에서의 죽음을 목도하고 결국 바로 그 곳으로 올라간 김진숙은 이제 자파티스타의 마르코스만큼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살리려는 185대의 만여 명이 훌쩍 넘는 시민들이 탄 희망버스가 내려온단다. 그 버스의 좌석마다에는 부채의식에 찌든 인간군상 뿐 아니라 청소년도 노인도 수많은 누리꾼들도 함께한다. 운동권의 통일전선 그 이상의 폭발력이다.
또 하나의 슬로건이 있다. 이것은 어제 지금도 85호 크레인 기둥에 그림과 함께 걸려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정치한 법적인 해석이란 말인가. 그렇다. 노동3권이니 청구권적 기본권이라니 말하지 않아도 생존이라는 대명제로서 해고는 단순한 사법상의 계약에 대한 의사표시만이 아니다.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해고통지는 그것이 도달하는 즉시 그 가족들의 삶을 파괴하고 결국 그 해고자를 극단적 삶의 끝으로 내몬다.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
김진숙을 살리자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아주 인권적인 구호 아래에서 오늘도 골리앗은 조금씩 쓰러져간다. 2011년 대한민국, 인권의 바로미터는 바로 김진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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