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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PK가 위험하다…김두관·문재인 위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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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PK가 위험하다…김두관·문재인 위협적"

[고성국의 정치in]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총선 10개월 전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총선을 염두에 둔 체제 정비를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역시 위기의식이 큰 한나라당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두 손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양쪽 다 전략적 포석은 이미 시작됐다.

2012년 총선 전략을 듣기 위해 양쪽의 전략통들을 섭외했다. 민주당에서 박선숙 전략기획위원장을 섭외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한나라당이었다. 전대를 한창 진행하는 중이라 섭외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던 터에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는 김현철 박사가 떠올랐다. 마침 여권 내에서 1996년 15대 총선이 여당이 승리한 총선거 사례로 거론되고 있기도 했다.

1996년 총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부터 한나라당 쪽의 전략을 들어보기로 했다. 섭외가 쉽지는 않았지만 일단 섭외를 끝내자 나머지는 쉬웠다. 인터뷰 장소나 날짜, 인터뷰 내용에 대해 우리 쪽에 전적으로 일임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6월 23일 오전 10시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나라당 새 지도부, 96년 총선처럼 '혁명적 물갈이' 할 수 있을까?"

"최근 96년 15대 총선 공천사례가 부쩍 자주 언급된다. 96년 총선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김현철 부소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선거 아닌가?"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한 후 첫 번째 치러진 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16개 광역 중 5곳에서만 이기는 비참한 패배를 한 터였다. 그래서 긴박한 위기의식 속에서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인재 발굴 작업에 전념했다."
"여의도연구소도 그때 만들어졌나?"
"연구소는 1995년 5월에 문을 열었다. 8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과학적 여론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88년 1월에 중앙여론조사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엔 여론조사라는 게 없었던 때였다. 선거를 '정치인의 감'으로 하던 때였다. 정당 부설 연구소는 아니었지만 정치권 최초의 정치 전문 조사기관이었다. 따지고 보면 여의도연구소의 전신이 된 셈이다."
"'김 소장'이란 호칭도 그 때 생겼는데, 88년 13대 총선 때는 어땠나? 기존 정치권과 총선 전망이 확연히 다르지 않았나?"
"달랐다. 연구소는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하고, 평민당이 2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투표에 지역구도가 작동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특히 수도권에서 통일민주당이 실패할 것으로 예견했다. 결과는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최초로 '감'에 의한 정치와 과학적 조사가 격돌한 선거였던 셈이다."
"96년 총선에선 청와대의 이원종 정무수석, 당의 강삼재 사무총장, 그리고 김현철 소장, 이렇게 셋이서 공천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전멸할 것 같았던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139석을 얻어 신승했는데…."
"과반수까지 얻진 못했지만, 수도권에선 집권여당 사상 처음으로 이겼다. 사실상의 승리였다.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한나라당 정의화·홍준표·안상수 의원 등이 다 그 때 정치신인으로 발굴됐다."
"당시는 '상향식 공천'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을 때였다. 정치신인, 특히 이재오·김문수와 같은 민중당 인사들을 파격적으로 발탁했을 때 기존의 민정계가 반발하지 않았나?"
"당시의 계파 갈등 구도는 전혀 달랐다. 박철언 장관 등 민정계 내 소수세력이 간헐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뿐,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위시해 민정계 주류가 범민주계로 흡수됐던 때였다. 지금의 친이·친박 계파갈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통합의 선봉에 섰던 게 김윤환 장관이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금진호 장관 등 권력 핵심인사들이 민주계 쪽과 가깝게 지냈다. 당시엔 계파의 지분을 상당히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정치 신인은 어떤 식으로 찾았나?"
"존안카드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활용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토착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을 떠나 과감히 배제했다. 모두 새롭게 발굴했다고 보면 된다. 직접 지역을 돌아다니며 추천을 받기도 했고, 여론조사를 거치는 등 지역마다 3~5배수 씩 인물 발굴을 했다. 해당 지역 야당 의원들과 가상대결까지 붙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도권과 PK(부산·경남)권은 대폭적으로 물갈이 했다. 그러나 민정계가 지분을 갖고 있는 TK(대구·경북)는 생각보다 물갈이가 안 됐다."
"이번에도 상향식 공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당권주자들도 상향식 공천만으로는 물갈이가 어렵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어떻게 보나?"
"상향식 공천의 문제점에 동의한다. 전국적으로 적용할 때 비용감당도 어렵고, 예선전부터 힘을 다 소진하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정치신인의 발굴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현역 위주로 가는 결과를 배제할 수 없다. 당원과 대의원 50%는 현역의 프리미엄이지 신인의 프리미엄은 아니지 않은가. 여론조사도 인지도 높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100m 경주를 하면서 현역 의원들이 50m쯤 앞서서 출발하는 식의 불공정 경선이 될 수 있다. 공천 방식을 어떻게 배합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도는 현역 의원들이 만드는 것이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 지도부가 과연 혁명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PK 민심에 주목하라"

"총선 전망을 해 달라."
"현 상태에선 한나라당이 어렵다. 과반수 획득이 어려운 건 물론이고 여소야대 정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에서 50%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본다."
"1당은 가능할까?"
"120~130석 정도 예상한다. 그 정도도 작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선방하는 것이다. 물론 지방선거와 총선은 판 자체가 다르다. 지방선거에선 야권 단일화가 많이 이뤄졌고, 여권은 무소속의 난립이 심했다. 교육감까지 빼앗긴 원인도 거기에 있지 않겠나. 여당의 텃밭인 곳에서 광역단체장을 빼앗겼고, 수도권은 지켰다지만 내부적으론 시의원 자리를 다 놓쳤다. 부산도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40%대 중반까지 치고 올라왔으니 위협적인 수치다. 총선뿐 아니라 대선에서도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 "여야 후보군 전체를 놓고 보면 박근혜 전 대표가 앞서 있지만, 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대세는 달라질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4~5% 지지율에서 출발해 대통령까지 된 것을 유념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15대 총선 당시 물갈이를 했던 과정이나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려 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의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김 부소장은 막힘없이 자신의 경험을 섞어가며 얘기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총선 전망에 이르자 김 부소장의 어조는 한결 신중해졌다. 있을지도 모를 역풍을 염두에 두는지 단어 선택도 조심스러웠고, 유보적 어미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김 부소장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감추지는 않았다. 대선 전망 대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총선에서 간신히 1당을 할 정도라면, 대선은 어떤가? '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나?"
"여야를 불문하고 부동의 1위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과거 대세론의 실패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 92년의 이른바 'YS 대세론', 97년의 '이회창 대세론',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대세론' 모두 상황이 다르다. 92년의 경우 3당 합당을 통해 몸집을 키웠기 때문에 쉽게 역전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97년의 이회창 대세론은 너무 허약했다. 정치권 입문 후 대선까지의 기간이 짧았고, 정치력에 대한 검증도 부족했다. 어설프게 민정계와 손을 잡았고, 현직 대통령의 손을 뿌리쳤다. 우군이 될 수도 있었던 이인제 전 지사나 JP계까지 놓쳤다. 본인의 뿌리가 취약하면 가까운 우군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저는 대세론을 이야기할 때 '화려한 조연'을 강조하는데, 92년엔 노태우, 김종필의 힘이 컸고 김대중의 경우에도 JP의 역할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몽준이란 화려한 조연이,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표의 승복이 조연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어떻게 보나?"
"현재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5% 내외고, 여론조사를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박 전 대표를 뽑을 핵심 지지그룹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20% 정도다. 다시 말해 호남이나 충청권에서는 거품이 좀 있다는 얘기다. 여러 시뮬레이션 결과를 놓고 보면 우려스러운 지점들이 나온다. 여야 전체 후보군을 놓고 보면 박 전 대표가 단연 앞서 있지만, 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4~5%의 지지율에서 출발해 대통령까지 당선된 것을 유념해야 한다."
"내년 대선의 변수로 무엇을 꼽고 있나?"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역 변수가 여전히 가장 크다. 그중에서도 영남 변수가 중요하다. 지금 한나라당은 수도권을 가장 큰 변수로 놓고 '수도권 대표' 만들기에 열을 올리지만, 다음 대선은 수도권에서 결판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PK가 불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출신 아닌가. 야당이 전략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손학규보다 김두관·문재인이 더 위협적"

"그래서 문재인, 김두관 대망론이 나오는 건가?"
"그렇다. 예의주시해야 한다. 표의 확장성 면에선 손학규 대표보다 경쟁력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를 봤을 때, '박근혜 대 김두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야권의 승리 가능성을 무시 못한다. 박 전 대표가 패배할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박빙의 선거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아까 말한 지역구도 때문인가?"
"그렇다. PK에 대해 오랫동안 조사를 해왔는데,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예컨대 PK의 박근혜 지지자들에게 상대후보로 PK 출신이 출마할 경우의 선택을 물었을 때 이반율이 굉장히 높았다. 이 의미는 간단치 않다. PK 출신이라면 한나라당이 아니어도 된다는 의미다.
"그런 이반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TK출신이면서도 TK 대표성은 별로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자체의 속성이 지역적인 색깔보다는 비교적 넓은 스펙트럼이었다. 그런데도 현재 PK는 TK에 대한 일종의 소외감과 열등감, 불만이 있다. 최근 동남권신공항 무산이나 부산저축은행 사건도 PK의 잠재적 불만을 키웠다. TK와 PK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PK 중에서도 부산과 경남은 또 다르다. 경남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인 편이지만, 부산은 그에 비해 냉랭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로 봤을 때, '박근혜 대 김두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야권 승리 가능성을 무시 못한다." ⓒ프레시안
"야당 입장에선 문재인·김두관의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다는 건데, 역으로 얘기하면 박 전 대표에게는 PK 공략이란 전략적 과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얘기 같다. PK를 안정화시키는 것이 승부의 핵심 포인트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회창 총재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그게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회창 총재는 대세론에 함몰된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우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친박계 의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전반적으로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다. 걱정 없다는 분위기다. 때로 '다음 공천을 생각하라'는 말도 하는데, 듣기에 따라선 상당히 불쾌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런 이야기를 친박 쪽에서 하나?"
"그렇다. 제2의 이회창이 되지 않으려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우군이 될 수 있는 세력을 계속 끌어안는 게 박 전 대표의 숙제가 될 것이다."
"지난 6월 3일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는데, 최대한 함께 가겠다는 것 아닌가?"
"외형적으론 그렇게 보인다."

"YS, DJ와 '애증관계'였다면 박정희와는 '적대적 라이벌'이었다"

이회창의 예를 들면서 대세론의 위험성, 범여권 결집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의 김 부소장의 표정은 매우 단호했다. 오랜 정치경험과 축적된 조사에 근거한 일종의 확신같은게 느껴졌다. 화제를 아버지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옮겼다. 범여권에서 반박근혜 입장을 가장 분명하게 보이고 있는 사람이 바로 YS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경선 때도 이 대통령 쪽의 손을 들어줬는데, 지금은 어떤가? 박 전 대표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영향이 있지 않겠나. 그렇다고 비토까지는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 외에 비토할만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박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상도동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아버님 스스로도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일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달리 본다고 말씀하셨다."
"최근에도 우호적인가?'
"우호적이었는데…박 전 대표의 몇몇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계신 것 같다. 예컨대 박 전 대표가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도 명쾌한 이야기를 안 한 점에 대해서, 대권주자로서 행보가 투명하고 분명해야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물음표를 갖고 계신다. 또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도 직접 반대 토론까지 하면서 진두지휘할 필요가 있었나, 그런 행보가 아버님의 생각과 좀 달랐던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대선 전 상도동을 찾아 손을 내밀면 관계가 좀 달라질 거라고 보나?"
"진정성이 문제다. 박 전 대표가 그렇게 나선다면 그를 계기로 범여권도 하나로 뭉칠 수 있지 않겠나. 그게 이회창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이 될 수 있다."

▲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차기 대권에 대해 생각해놓은 후보가 있다고 했는데, 김문수 지사인가?"
"여쭤 봐도 말씀을 안 하신다. 한나라당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다."
"대통령 재임 당시 가까이서 역할을 했던 사람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김문수 지사 얘기가 나오더라."
"딱히 누구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다."
"국가 원로인 전직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것 자체가 민감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정치적 행보를 보면 아버님다운 행보였다고 생각한다. 평생 정치만 해 오셨던 분이니 침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민한 시기에 별로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상도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가 이성헌, 김영춘 의원이었다. 두 막내 비서가 각각 친박과 민주당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성헌 의원이 '어르신께 야단을 많이 맞고 있다'고 하더라."
"두 사람 모두 96년 15대 총선에 출마를 했는데 모두 낙선했다. 아버님이 상당히 애석해 하셨고, 16대에 당선되고 나서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당을 떠나니 이해를 못하셨던 거다. 김영춘 의원은 한나라당에 계속 있어도 성공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건 사실 손학규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굉장히 많은 정치신인들을 발굴하고 키웠다."
"상도동과 동교동의 차이점이다. 동교동이 DJ를 정점으로 권위적인 면이 있었다면, 상도동은 비교적 민주적인 편이었다. 많은 정치신인들이 그런 면에 매력을 느끼고 상도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동교동과의 관계는 어떤가? 좋아졌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 아버님이 병문안을 가면서 화해의 돌파구가 마련됐던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의 상태가 많이 악화된 시점 아니었나?"
"의사표현은 못했지만, 의식은 있으셨다. 평생의 라이벌이 온 것을 알고 계셨다. 이희호 여사를 통해 고마움과 반가움을 표시하셨다고 들었다."
"두 분이 화해를 한 건가?"
"그렇게 믿고 싶다."
"DJ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화해하려고 하지 않았나? 역사적 화해는 됐다고 보는데, YS와 박정희의 관계는 화해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외국에 머물렀던 기간이 길었지만, 아버님의 경우 국내에서 계속 정치를 해오면서 박 전 대통령과 충돌할 일이 많았다. 초산 테러도 직접 겪었고, 신민당 총재 당시 제명되는 일까지 겪지 않았나. 급박한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화해가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애증관계라고 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셈이다."
"서청원 대표 같은 이들도 그 시절을 함께 겪었는데, 지금은 친박계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버님도 처음엔 굉장히 격노하셨다. 김무성 의원도 마찬가지다. (김 의원이) 친박 좌장 역할을 할 땐 상도동 출입도 못 했다."
"지금은 다 풀어졌나?"
"그분들이 워낙 오랫동안 아버님을 모시고 정치를 해왔고,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 올해 결혼 60주년을 맞지 않았나."
"건강하시다. 배드민턴을 쭉 해오시다가 요즘엔 격한 운동보다는 동네 산책을 주로 하신다. 올해 60주년을 맞아서 필리핀에 신혼여행을 다녀오셨다. 전쟁 통에 결혼해 신혼여행을 못 가셔서, 60년 만에 다녀오셨다. (웃음)"
"상도동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보다 손 여사께 더 각별한 정이 있는 것 같더라."
"그야말로 그림자 내조였다. 그 당시 야당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나. 뒤에서 음식이나 옷을 항상 조용히 베푸셨다. 어떤 분들은 농담 삼아 '우리는 YS 계보가 아니라 손 여사 계보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거제엔 힘 있는 리더 필요해…그 역할 내가 할 것"

"할아버지인 김홍조 옹은 어떤 분이셨나. 정말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청와대에 한 번도 안 다녀가셨나?"
"그건 아니다. 가끔 오시긴 했지만 오래 계시진 않았다. 그만큼 아버님한테 부담을 안 드리려고 했다. 아버님도 평생을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드렸다."
"김 부소장을 각별히 아꼈다고 들었다."
"자식사랑보다 손자사랑이 깊다고 하지 않나? 가업인 멸치어장도 저한테 맡기려고 하셨고, 2004년 거제 총선 출마 때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때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아버님은 오히려 출마를 포기하라고 강하게 반대하셨고…아버님은 저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히 정치를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웃음)"

▲ "거제는 외형적 성장에 비해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편이다. 중앙과 연계해 힘 있게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제가 하고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엔 어떤가?
"놀랄 정도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계시다. 지난달 거제에서 '거제미래포럼' 사무실 개소식을 했다. 대성황이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무실까지 와주셨다."
"거제 분위기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상당히 우호적으로 잘 나온 편이다. 지난해 거가대교 개통 후 거제에도 급격한 변화가 왔다. 이제 더 이상 섬이 아니라, 부산을 잇는 명실상부한 동남권 허브도시로 재편되고 있다. 물류와 관광, 첨단 산업기지까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사실 그 초석을 놓은 게 아버님이다. 95년 발전 계획을 구상해서 건교부 장관에게 지시까지 내렸지만,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난해에야 거가대교가 그 결실을 맺었다. 거제가 그동안 조선업으로 많은 호황을 누렸고, 지금은 GDP로 따졌을 때 울산보다 잘 사는 도시가 됐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병원이나 교통 등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편이다. 중앙과 연계해 힘 있게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제가 하고 싶다."
"한나라당 공천이 안 되면 무소속 출마도 고려하나?"
"이 단계에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다. 내년 총선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갈 생각이다."
"당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문제가 다 해결됐기 때문에 당이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당 사람들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근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역사적 화해' 이루려면…"

"김현철 부소장 박 전 대표 모두 대통령의 아들, 딸이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이 있나."
"박 전 대표는 부모님을 잃는 불행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저와 단순비교는 어렵다. 동병상련이라고 한다면, 대통령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보니 행동에 제약을 받고,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야당 시절부터 당대표 시절, 대통령 시절에 이르기까지 제가 직간접적으로 국정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아버님을 통해 얻었다."
"대권을 준비 중인 박 전 대표에게 조언이나 고언을 한다면?"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인데, 성공한 정치인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정권 재창출의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박 전 대표여도 좋다. 부모님을 불행하게 잃었기 때문에 정치를 하면서 그 부분을 지우긴 어렵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전 대표 옆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잘 살펴봤으면 좋겠다. 과거 산업화가 없었으면 민주화도 없었을 것이고, 민주화가 없었다면 선진화도 없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화해하고 통합하려 한다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에 적대적 전선이 형성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손학규 대표는 과거 한나라당 사람이었다가 현재 민주당 대표가 됐다. 대권 후보로 출마할 경우, 손학규 대표를 포함해 여야 개념이 총선 이후 다른 형태로 재편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마무리를 위해 한마디 해 달라 했지만 김현철 부소장은 덕담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부소장은 매우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라는…. 이 문제는 아마도 김 부소장 자신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리라. 다음에 이런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한 번 이야기 해보자는 약속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숙제를 많이 남긴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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