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교육>은 격월간 교육 전문지로 '공교육 중심, 교사 중심의 교육 담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전문지'를 지향하고 있다. '교욱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는 비영리단체로 올해 1월 창립했으며 <오늘의 교육>은 '교육공동체 벗'에 조합으로 참여하면 받아볼 수 있다.
2호 특집 '대학의 교육불가능'은 창간호에 실린 '2011년 한국 교육, 야만의 지형도를 그리다'의 두번째 기획이다. 총 6회에 걸쳐 연재될 이들 글에서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자신으 체험을 중심으로 대학의 문제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복선 편집위원장은 "이제 대학은 신자유주의적 모순이 전면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됐다"며 "창간호에서 주로 초·중등교육을 통해 '오늘의 교육'을 조망했다면 이번 호에서는 '고등 교육'을 통해 야만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기획의 취지를 소개했다. (편집자)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교양이 죽은 그해 봄
2010년 대학의 봄은 자보와 함께 찾아왔다.
김예슬의 자발적 퇴교 선언이 한창 언론의 관심을 휩쓸던 무렵, 플래시 세례는 받지 못했지만 서울대 인문대 앞에도 자보 하나가 붙었다. "'삶과 인문학' 강의에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자보는 자보체가 아닌 일상어로 작성돼, 김예슬 선언에 솔직히 잘 공감할 수 없었던 대학생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인문대에서는 그해 봄부터 인문학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삶과 인문학'이란 강의를 개설해 신입생들이 의무 수강하도록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이것이 '스펙과 경영학'과 다름없는 강의였던 것이다. 첫 강연자였던 현대산업개발의 최동주 사장은 강의에서 "투자 자본을 구하는 접대 자리에서 숫자 얘기를 하는 것보다 인문학이나 예술을 전공한 직원이 노래나 한 곡 불러 주는 편이 효과가 좋다"며 인문학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또 자신의 회사가 참여한 용산 개발 사업을 버젓이 홍보하는가 하면, 학생들에게 꼭 경제·경영학을 복수 전공해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라고 당부했다. 순식간에 인문학을 기업을 위한 도구로 만들고, 인문대생을 '경영대에 합격하지 못한 예비 사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문대생들의 자보는 이 사태에 대해 대학의 신자유주의화 반대와 같은 거대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학생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수업권, 자치권 존중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인문학을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흔쾌히 팔아 버린 대학에 대한 경악과 자유와 중립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잃어 가는 대학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었다. 즉, '대학이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문제 제기는 인문대 학장단 측의 극히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답변으로 봉합되었다. 수업의 개설 여부는 교수 회의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는 들으나 마나 한 답변 속에는 인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지 않았다.
교양 수업은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와 선생님, 사회적 압력에 의해 자기 억압적인 공부를 해 왔던 학생들에게 자신의 갈등을 학문적으로 풀어 보고 부딪쳐 볼 수 있는 자유를 처음으로 제공한다. 교양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삶의 목적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부터 성, 국적, 종교, 교육, 경제력 등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하고 특수한 결에 대한 고찰, 전공 분야와는 무관한 영역에 대한 순수한 지적 추구까지 무궁무진한 궁금증을 자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자아 찾기, 진로 찾기를 통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삶과 인문학' 수업이 불러 온 사태는 대학이 공개적으로 그런 교양 수업의 종말을 선언한 것을 의미했다. 스펙이 되니까 배워야 한다는 타율적인 논리로 학생들과 대학 스스로를 조련하는 것이 이제는 꼭 갖춰야 할 '교양'이 된 것이다.
학생들의 자보는 학문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대학의 참혹상을 보며 대학생들이 지른 비명이다. 그해 봄 유난히 쏟아졌던 대학생의 자기 선언들과 마찬가지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대학 안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토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 체제는 그 안에 속한 개인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채 굴러갔다. 언제나 그래 왔다는 듯이.
자본이 우리를 옥죄는 방법
이 사태는 서울대 안에서 교양과 교과를 구성하는 판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에 불과했다. 사실 '삶과 인문학' 수업은 학생들이 함께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기에 눈에 띈 사례였을 뿐, 서울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 기관을 자처하며 변해 가고 있었다. 일례로 2009년에 신설된 자유전공학부는 다양한 전공의 학습을 통해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를 지닌 인재를 양성하겠다던 본래 취지와 달리, 경제·경영학과의 정원을 간접적으로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2009년 이후 의무화된 제2전공(각주 참조)도 학생들이 좀 더 다양한 교양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면서 많은 학생이 '스펙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복수 전공하도록 권고하는 조치가 되었다. 교수들은 무리한 학제 변화가 인기 학과의 독식을 조장하고 학생들이 교양과 내실 있는 공부에 전념할 수 없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거나 완충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런 변화들이 구성원들 스스로가 그 내부의 논리를 다듬거나 준비할 여유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교과만이 아니었다. 대학의 홍보 매체에는 기업인이 참여하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사진과 함께 전면에 등장했고, 기부자 명단과 액수를 나열한 목록이 학술 활동 현황에 대한 양적 보고와 함께 나란히 강조되었다. 양적이고 표면적인 기준에 의한 대학 평가의 허구성과 그것이 조장하는 학문의 변태적 발전은 비판받음과 동시에 또한 끊임없이 추구되었다. 어쨌건 연구 성과가 부진한 교수들에 대한 내부 평가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 않냐, 또 현재의 위계적이고 비민주적인 대학 내 의사소통 구조 안에서 내부적 개혁을 단행하느니 외과적 수술을 받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자조적 체념이 오고 갔다. 그 속에서 교수들은 점차 침묵했다.
2008년 이후 인문대에서는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신축 공사와 리모델링으로 인해 교수와 학생들은 연구 공간과 공동체적 생활 공간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 많은 공사를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생기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이 벽은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졌다. 공사로 인해 생긴 수많은 출입 통제 공간을 지나 복잡하게 얽힌 미로 같은 복도에서 헤매다 어쩌다 마주치면, 우리는 이것도 어쩌면 인문학의 반란을 막는 전략 중 하나일 거라며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예전보다 매끄러워진 건물들 안에는 어김없이 더 매끄러운 간판을 단 외부 업체가 들어서곤 했는데, 그로 인해 학교 안 공간에는 새로운 위계가 생겼다. 비싼 커피집과 싼 커피집, 비싼 식당과 싼 식당. 값비싼 다양성은 증가하는 가운데 값싼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대학은 이 같은 변화가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에 응하기 위한 것인 양 포장하면서, 그러한 변화를 원치 않는 학생들, 또는 변화의 방식을 문제 삼는 목소리들을 묵살했다. 값비싼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값싼 식당밖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묵살할 수 있는 근거로, 값비싼 등록금을 기꺼이 지불하는 학생들의 존재가 등록금에 허덕이는 학생들의 고통을 가벼운 배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만드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 새로운 위계 속에서 경제적 고통은 점점 개인의 문제가 되어 갔다. 공존과 공동체적 배려가 논의되던 장에는 돈이 없다면 값싼 밥을 먹으면 되는 것이고, 학과 해외 연수에 참여할 돈이 없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쿨한 가치관이 스며들었다. 생계와 생존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그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은 메말라 갔다. 자본이 만들어 낸 새로운 위계와 구획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별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다. 있는 자가 누리고 없는 자가 주리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 정당하거나 모두가 동의하는 원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원칙처럼 자리 잡아 갔다. 이처럼 교양을 빼앗기고, 생활 공간을 빼앗기고, 경제적 불안은 가중되는 가운데, 내면화된 자본의 원칙이 공동체의 윤리까지 앗아 가면서 우리는 사지가 묶인 개별자가 되었다.
어제보다 더 학문하는 오늘
대학원에 와 첫 1년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외로웠다. 왜 그랬던가를 굳이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욕심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학부 때 하고 싶은 딴짓은 다 해 보고, '학문'은 잠깐 맛만 보았지만, 잠깐 경험한 학문의 오묘한 맛이 좋아 대학원에 왔다. 그러나 대학원은 학문을 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꽉 짜인 학제 안에서 정해진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우고, 정해진 형식의 논문을 읽고 비평하고, 학기가 끝날 때면 정해진 형식의 논문을 어떤 식으로든 짜 내는 것이 대학원 과정의 전부였다. 물론 어떤 수업에서는 보다 심도 있는 학문적 관점, 또는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번뜩이는 방법들과 그 발견의 내용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 수업을 앞둔 날이면 밤새 이런저런 고민을 해 보고, 내 발견을 기록해 수업에서 함께 나누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바쁘게 흩어졌고, 나도 다른 수업과 일에 쫓겨 자신의 발견으로부터 멀어졌다.
교수들 가운데 자신의 연구와 학생 지도에 매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고, 젊은 교수들은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지원 사업 등에 동원되느라, 중년 교수들은 각종 보직을 수행하느라 바빴다. 한 젊은 교수님은 연구도, 학생 지도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괴롭다, 이러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아닌데,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를 쓰고 싶은 심정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 계획서를 쓰고,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연구를 하고, 지원을 받은 만큼 보고서를 쓰고, 그 거추장스런 행정과 형식을 갖추느라 지쳐 정작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교수님이 그렇게 솔직하게 토로라도 해 주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많은 교수들은 그런 내적인 갈등을 학생들과 나누거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 줄 만큼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니까.
대학원 과정에 대한 회의와 불만, 그것을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의 부재 속에서 학문을 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나 자신이 학문에 맞지 않는 것인지, 전공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인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의심하는 가운데 모든 것은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그러는 동안 학문을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때에도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어김없이 행복했다.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다는 사실이 대학원이라는 제도화된 틀을 견뎌야 하는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했지만, 내가 학문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읽고, 고찰하고, 글로 써서 나누는 일의 본질적인 즐거움이 내 삶의 동인이 되게 하는 것,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와 환경의 거추장스런 훼방을 떨쳐 내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학문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바쁘게 응하기보다는 나의 삶에서 충실한 깨달음을 천천히 쌓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업이고 외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취가 아니어서, 책을 읽어도 논문을 써도 학문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내적 갈등을 끊임없이 느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 갈등 속에서 표면적인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결과를 회의하고, 그것을 한 꺼풀 들춰 새로운 논의를 충실히 쌓아 가는 과정, 또는 경향성이 학문하는 일의 본질이다. 따라서 어떤 제도도 그 자체가 학문을 수행하거나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제도 안에 있는 개개인이, 그들이 만든 학문 공동체가 그와 같은 내적 충실함을 전통처럼 쌓아 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 제도 안에선 표면적인 성과가 너무 중요해서, 채 배움이 무르익기도 전에 결과를 내놓아야 하고, 또 내놓은 것을 곱씹을 여유도 없이 다음 실적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평가가 우리를 끝없이 채찍질하는 가운데 교수도 학생도 자신들이 어제보다 더 '학문하고 있는가'를 성찰할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 더 큰 특권과 이익을 추구하는 대학은 학문이라는 알맹이와는 점점 더 맞지 않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대학원생과 교수는 그와 같은 대학의 '수익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되면서 학문하는 정체성을 점점 지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대학원에도 점점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유학을 가기 위한 스펙 쌓기일 뿐이라거나, 대학원 우수논문상 시상식에서 학과장이 "우수논문상을 받으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건네는 식의 자조적인 담론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담론에 포섭되는 순간 학문은 정말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에 협력하는 한 학문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학문을 꾸려 나가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배척하는 폭력성 외에 어떤 합리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을, 그리고 학문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것
한편 오늘날 대학의 위기 또는 '학문할 수 없음'은 새로운 과제이면서 또 오래된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을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로 풀어 내는 것은 따라서 틀린 말은 아니되 충분하지도 않다. 대학의 신자유주의화가 문제라고 할 때, 신자유주의 이전의 대학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이 자본의 논리에 직접 영합하게 되기 이전에도 교양 수업 및 전공 수업의 내실이나 배우는 내용의 낡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 제기는 대학 내의 뿌리 깊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늘 대대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뜻있는 교수 및 강사들의 지속적인 노력 속에서 기성 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수업들이 개설돼 종종 학생들의 지적 갈증을 채워 줬다. 또 04, 05학번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그 이전까지 대학생들은 수업에서 얻지 못한 지식을 다양한 동아리와 학회, 소모임을 통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의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됨에 따라 수업의 가치는 '학점'으로 수렴되고, 동아리 등 자치 단위의 가치도 '스펙'으로 수렴되게 되었다. 교양과 학문의 가치를 시험하던 장들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지만, 대학 안에서 교양과 학문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사라지게 되면서 그 역동성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즉, 풀어야 할 과제는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데 질문하는 주체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침묵과 순종.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의 진짜 풍경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이다. 2009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법인화를 왜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장시간의 발제, 토론이 끝나고 자유 발언 순서가 되자 전국대학노조 국공립대 본부장 전태산 씨는 참가자들에게 외쳤다.
"서울대 법인화, 뭐가 문제인지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간단한 거 아닙니까. 대학별로 자율권 주고, 전폭적인 경쟁 체제로 나가겠다 이거 아닙니까. 저는 서울대 법인화를 어떻게 막아 낼지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사람들은 반대가 절실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가슴이 꽉 막힌 심정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침투해 온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대학에 미친 영향은 자명하다. 차등적 지원금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에 대학 주체들이 동원되면서 학문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법인화' 역시 대학의 '자율권 강화'를 명분 삼아, 사실상 국가 보조금을 줄이고 경쟁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빤히 보이는 덫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가 그것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통탄할 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에서 학문하고자 하는 주체에게 요구되는 것은 냉철한 분석력과 민감한 감수성, 그리고 뜨거운 행동력이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는 총체적 난국이지만, 학문하는 일의 적극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지성이 기존의 아카데미 안에서 길러질 수 없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학문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이다.
1) 대학 측은 복수 전공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은 '심화 전공'을 할 수 있다는 부속 조항을 마련했지만, 이는 심화 전공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전공 학점이 개설되지 않는 중·소규모 학과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다시 말해, '비주류' 학과의 학생들은 반드시 복수 전공을 할 수밖에 없다.
문수현 2004년 서울대 새내기로 입학해 지금은 영문과 대학원생으로, 학교에 머문 지 7년째다. 학회와 동아리 활동에서 배운 것들이 수업에서 얻은 것들보다 유익했고, 논문을 쓸 때보다 학생자치언론 《교육저널》에 글을 쓸 때 더 많은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도 학문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에 대한 깊은 애증 속에서 더 올바른 배움을 향한 갈망을 길어 내길 희망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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