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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대학의 교육 불가능②] 나는 살아남았다

'교육공동체 벗'이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2호(2011년 5·6월)의 특집 기획 '대학의 교육 불가능'을 '교육공동체 벗'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오늘의교육>은 격월간 교육 전문지로 '공교육 중심, 교사 중심의 교육 담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전문지'를 지향하고 있다. '교욱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는 비영리단체로 올해 1월 창립했으며 <오늘의 교육>은 '교육공동체 벗'에 조합으로 참여하면 받아볼 수 있다.

2호 특집 '대학의 교육불가능'은 창간호에 실린 '2011년 한국 교육, 야만의 지형도를 그리다'의 두번째 기획이다. 총 6회에 걸쳐 연재될 이들 글에서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자신으 체험을 중심으로 대학의 문제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복선 편집위원장은 "이제 대학은 신자유주의적 모순이 전면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됐다"며 "창간호에서 주로 초·중등교육을 통해 '오늘의 교육'을 조망했다면 이번 호에서는 '고등 교육'을 통해 야만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기획의 취지를 소개했다. (편집자)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어느 알바생의 일상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밤 11시. 주섬주섬 늦은 저녁을 먹거나 씻고 나면 이미 자정이다. 온몸이 피곤에 찌들어서 그냥 쓰러져 잠들고 싶지만 아직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이 과제 제출일이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어서 울고 싶은 심정으로 시작한 과제는 언제나 막막하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서 완성도 있는 과제를 제출하고 싶은데 하룻밤은 그저 과제를 끝내기도 벅찬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과제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때부터 무력감이 든다. 내가 무력감을 느끼거나 말거나, 이 방대한 분량의 과제는 새벽 4시나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난다.

과제를 하고 난 뒤엔 완전히 탈진 상태로 잠이 들어 버리고, 어쩔 땐 학교에 늦어서 밤새 한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침에 불길한 예감에 눈을 떴을 때 이미 수업 시간이라면, 그날은 일어나는 순간부터 참을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먼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 한심한 내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고, 그 다음으로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내 처지에 짜증이 난다.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마주한 이 폭발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이부자리에서 그대로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지만 여유롭게 울 시간이 없다. 울면서 양치질을 하고 대충 모자를 눌러 쓴 다음 학교로 달려가 과제를 내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하루에 세끼를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다. 아침에 달려 나오느라 빈속으로 학교에 도착하고 공복을 달래느라 수업 시간에 간단한 과자나 커피를 마시고 나면 점심시간은 자연스레 어중간해지고 헛배가 불러서 밥 생각이 없다. 사실, 매일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생활이 1년이 지나도록 나는 스스로 내 식습관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말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내가 일주일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데, 우리 학교가 서울 북동쪽 끝 수유에 있는 탓에 서울 어느 지역을 가든지 이동 시간만 한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해 이미 학교에서 에너지를 다 탕진했는데, 버스에 실려서 한 시간을 이동하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있다. 나는 대체로 늘 아팠다. 멀미 기운에 토할 것 같거나 오면서 먹은 간식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고 늘 미열과 두통을 겪고 한여름에도 추웠다. 보통은 이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증상을 무시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가 한번은 내 얼굴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사장님의 강권으로 조퇴를 했는데, 나는 채 10분을 걷지 못하고 길에서 쓰러져 버렸다.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나 일찍 끝나는 날에도 나는 할 일이 많다. 색상별로 일정을 정리해 놓은 다이어리를 열면 쉬는 날에 맞추어 미뤄 놓은 동아리 모임, 자원봉사자 회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하루에 몇 개씩 있다. 가끔은 약속을 취소하고 쉬고 싶지만, 나 때문에 친구들이 무리해서 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아 미안함 마음과 압박감에 자꾸 무리를 하게 된다. 역시나 집에 돌아오면 시간은 밤 11시. 늦은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돈하고 다이어리를 편다. 다만, 과제가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너무 비싼 대학생 인생

주변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용돈을 충분히 받아서 굳이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혹은 취미 생활로 가볍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또 다른 부류는 아르바이트비로 생활을 유지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생이다. 생계형 아르바이트는 또다시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 자취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자기가 충당해야 하는 경우, 용돈이 없는 경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나마 나는 집과 학교가 서울이라 멀기는 해도 자취를 할 필요가 없었고, 36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은 할머니께서 종종 내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벌어야 했던 생활비는 말 그대로 집세와 집에서 먹는 밥값을 제외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다. 생계형 아르바이트의 최전선도 아니니 조금 돈을 벌고 아껴 쓰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서울에서 대학생으로 사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차비는 적어도 한 달에 7만 원씩 들고, 인맥 관리를 포기할 수 없으니 바쁜 중에 이곳저곳 전화하고 문자를 하다 보면 핸드폰 요금만 5만 원, 3,300원씩 하는 학생 식당이나 학교 앞 저렴한 식당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식비가 최소 15만 원, 그리고 학자금 대출 이자까지, 최소한의 기초 생활비만 이미 30만 원이다. 여기에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철마다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비용까지 합하면 생활비는 50만 원을 훌쩍 넘긴다. 그렇다고 해서 호사를 부리거나 사치를 했던 적은 없다. 나는 백화점은 고사하고 명동의 쇼핑센터에 가는 일도 대단히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어 본 적도 없다. 나는 가끔 자조적으로 내가 걸치고 나온 물건들의 총합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곤 하는데 대체로 겨울이 아닌 다음에야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합이 십만 원을 넘긴 적이 거의 없다.

한번은 중간고사 기간에 학교에 갈 차비가 없었다. 고민하던 나는 묘안을 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수유역까지는 무임승차를 하고, 수유역부턴 무료로 운행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해 등·하교를 했다. 그렇게 삼일 즈음 지났을 무렵, 수유역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내 등 뒤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무임승차하시면 안 되죠." 나는 정말 얼굴이 터질 만큼 빨개진 채로 달음박질해 지하철 구석으로 가 평소에 하지도 않는 욕을 하며 계속 울었다. 내 상황을 슬퍼하면 서러움에 무너질 것 같았다.

그 다음 날도 등교를 해 시험을 봤지만 수유역에 다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유역에서 국민대까지 장장 3시간 정도를 걷고 간신히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나를 데리러 와 달라고 전화를 했다. 친구를 만나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엉엉 울었고, 울음을 그치고 나서는 괜히 실없는 농담을 해 댔다. 무임승차를 하다가 적발되고 3시간을 걸어 발이 부르터도 친구에게 차비가 없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에게 가난은 공감받지 못하는 상처고 사회적인 주홍글씨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생활을 하는 것도 기본적인 사회 성원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정도의 소비가 불가능한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 척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다가 가난이 적발되면 나는 가난이라는 낙인을 찍힌 채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격리된다는 것을 본능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불안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내 가면이 가짜라는 것을 누군가 눈치챌 것 같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나에게서 가난의 냄새가 풍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억울하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고 두세 배 많은 일을 하지만 실제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남들보다 못하거나 간신히 비슷한 수준일 뿐이었다. 가끔씩은 이런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당시의 남자 친구에게 울컥 화를 냈었다. 너는 그냥 과외해서 데이트 비용을 내면 되는 거지만 나는 그저 살기 위해서 너의 두세 배나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도 훨씬 열심히 살고 있고 대단한 거라고. 내가 잘못됐거나 나약한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였다. 나는 그렇게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간신히 맞서서 살았다.

알바와 학업 병행,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늘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절대로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대학생으로 살고 싶었고, 아르바이트는 어디까지나 학교생활을 유지하지 위한 필요악이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고를 때의 주안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었다(명문대를 다니는 당시 내 남자 친구조차 과외 구하는 것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고 과외는 포기했다).

하지만 학교를 포기하지 않을수록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진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위해서 제일 먼저 포기했던 것은 큰돈을 벌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많은 생계형 아르바이트생들이 생활의 중심이 아르바이트가 돼 버려 학교에는 출석을 거의 하지 않거나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자신이 그런 사례가 될까봐 두려웠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위협하는 일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강북 삼성병원에서 병원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저녁 시간에 일하는 우리 팀 15명 중 14명이 학생이라서 가끔 보충 강의나 학교 행사가 근무 시간과 겹치는 일이 있었다. 담당자는 우리의 학교 일에 매우 예민했는데, 누군가 학교 때문에 양해를 구하면 큰소리로 우리 모두를 야단치곤 했다. 그때마다 "너희는 학생이 아니라 직원이다. 학교 일보다 병원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루 6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6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직원이 되기를 강요하는 논리에 코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 아르바이트가 그래도 처우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내 현실이었다.

나는 학기 중에 꾸준히 자잘한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때로는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대학원생의 연구 보조로 며칠 밤을 새고, 설문조사나 행사 아르바이트 보조로 적게는 2만 원, 많게는 10만 원씩 꾸준히 돈을 벌었다. 근로 장학생으로도 일했는데, 근로 장학생은 일주일에 6시간씩 두 번, 즉 한 학기에 120시간 정도 조교를 돕거나 심부름을 가는 정도의 가벼운 일을 한다. 그러나 그만큼 장학금 액수가 적었다. 25만 원씩 한 학기 동안 두 번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렇게 번 돈은 대부분 빚잔치에 쓰인다. 보통 밀려 있는 핸드폰 요금이나 학자금 대출 이자를 냈고, 그동안 아르바이트 때문에 만나지 못해 원망을 샀던 친구들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에 대한 요령을 알게 되면서는 사진관이나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 같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지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 일을 했다. 특별히 시급이 높지 않았지만 앉아서 틈틈이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한가한 시간에도 늘 할 일이 있기 마련이었고 무엇보다도 업무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은 눈치가 보였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앉아서 능률이 오르지도 않는 과제를 하다가 욕을 먹고 나면 과제도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학교에서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학과가 처음 정해졌던 2학년 초기, 나는 선배의 권유로 학년 장을 맡았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인수인계를 받은 후배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 일로 나를 원망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늘어나면서는 개강 파티나 종강 파티는 고사하고 보충수업을 나가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평소에도 아르바이트에 맞춰서 시간표를 짰기 때문에 공강 시간을 맞춰 밥을 먹을 친구도 없었고, 당연히 친한 친구를 만들지도 못했다.

살기 위해 : 시간을 팔거나 사연을 팔거나

작년,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서 대학 생활 중 처음으로 모든 아르바이트를 중지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힘들기로 악명 높은 논문을 쓰면서 20학점을 듣는 미친 짓을 했는데 아르바이트보다는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으로 장학금을 탔다. 기뻤지만 그 이전에 아르바이트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 억울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장학금을 신청해 생활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내가 받을 만한 것은 각종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인데, 이 경우에는 필수적으로 나의 가난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최근에 신청한 장학금 신청서에는 '신청 동기를 상세하게 기술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선발 기준은 '가계 형편 곤란자 중 학업성적 우수자'였다. 그러니까 장학금을 받기 위해 호소력 있는 신청서를 쓰려면 내 인생의 가난을 두드러지게 써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가난하다고 고백하는 일이 나를 파는 것 같이 느껴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청 마감일까지 미루다가 결국 가정 형편 곤란의 역사를 최대한 씩씩하게 적고 그 내용에 근거한 교수님의 추천서까지 받아 제출했다. 완성된 신청서에 쓰인 내 이야기는 마치 지하철에서 노래를 틀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주는 종이에 쓰인 것과 같아서, 이제까지 스스로 생계를 꾸리겠다며 열심히 살아온 내가 증발한 것 같았다.

어학연수를 신청했던 서류 심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차상위계층임을 증명하는 서류에 문제가 생겨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소리로 왜 부모님이 가족관계증명서에 함께 나와 있지 않은지, 내가 왜 차상위계층인지를 물었다. 그 사무실에서 나는 '수혜'를 받으러 온 신청자라서 나 또한 보호받고 싶은 사생활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빠가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연락도 안 된다"라고 거짓말을 해 버렸다. 나는 저녁마다 만나는 아빠, 그리고 아빠와 나의 사연과 우리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모두 부정하면서 그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어학연수도 다녀올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라면, 장학금은 사연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몸이 지치고 고단한 것처럼 장학금은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내 사연을 팔릴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겪어 온 삶의 고유한 사연들을 버리고 전형적인 것으로 각색해야 했고, 심지어 때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 온 나의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학업성적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선발되는 장학금 신청을 위해 교수님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면담은 추천서를 쓸 때 으레 들어가는 가계 형편 부분에 대한 것이었는데, 장학금을 받는 사람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나란히 앉은 언니와 나는 자연스럽게 누가 더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가정 형편의 곤란을 경쟁하는 모양이 됐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평소에는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가난함이 면담 동안에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경쟁력이 되었다. 장학금 쟁탈전에서 나는 분명히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면담이 끝나고 나오는 순간부터 내 사연은 다시 내 약점이 됐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신청서를 제출해서 수혜한 거의 모든 장학금은 보이지 않는 가난을 경쟁한 뒤에 얻은 전리품일 것이다.

처음 차상위계층으로 서류 처리를 하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 스스로 가난을 인정하고 공증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공식적인 가난은 비공식적인 가난보다는 훨씬 낫다. 먼저,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취업 후 상환 대상자로 분리되어 이자가 유예됐다. 유예가 되지 않았다면 3번의 대출을 받은 나는 매달 6만 원씩 이자를 납입해야 한다. 게다가 차상위계층이 되고 난 뒤에는 오히려 신청할 수 있는 장학금의 폭이 넓어졌다. 이전에 장학금을 받을 방법은 성적을 잘 받는 것뿐이었는데, 상대평가가 이뤄지는 대학에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서는 장학금 탈환이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국가가 내 가난에 붙여 준 차상위계층이라는 공증으로 내 사연에 공식적인 경쟁력을 얻었다.

하지만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차상위계층은 비공식적으로 가난할 때보다는 현재 상황을 나아지게 했지만 실제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천만 원에 가까운 빚을 안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단지 대학생으로 살기 위해서 생긴 거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거나 장학금을 타서 돈을 받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 것뿐이다. 내가 생존법을 바꾼 것일 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나 장학금을 받는 것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자수성가라는 신화

나는 자수성가에 대한 어른들의 꿈이나 말이 우리 세대에게는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믿는다. 개천에서 용이 났던 자수성가 신화에 따르면 나는 지금쯤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해 안정적으로 대학을 졸업한데다, 실제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현실 감각까지 갖춘 인재가 되어 비상해야 하지만 현실은 딱히 그렇지 못하다.

내가 그렇게까지 학교를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대학 생활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 평점은 4.0이 안 된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지만 성적 때문에 고민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1교시 수업은 체력이 달려서 제때 들어간 기억이 별로 없고 그나마도 들어가서는 졸음과 싸워야 했다. 과제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열심히 하기보다는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글 쓰는 나쁜 요령만 몸에 뱄다.

나는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이미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거의 다 다룰 줄 알고, 외국인을 상대로 장기간 영어로 근무를 한 적도 있고, 심지어는 증명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인화할 줄도 아는데 관련된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 우선 보통 10만 원이 훌쩍 넘는 자격증 관련 수업에 등록할 학원비와 시험비가 없었고, 사실은 그 이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통에 진득하게 자격증을 위해서 투자할 시간이 없었다. 이력서에 경력으로 기록할 만한 단체 활동이나 인턴십에 지원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데, 나는 이런 곳에 지원할 자격조차 없는 셈이다.

나는 심지어 친구도 없다.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는 워낙 학과 분위기가 좋은데다가 뒤늦게 아르바이트를 쉬게 되면서 과 행사에 참견을 많이 한 탓에 과 사람들과 인사 정도는 하고 다니지만, 친구는 없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뛰어가고 공강 없이 시간표를 만들었으니 친구가 생길 재간이 없다. 외부 단체나 동아리 활동에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늘 지쳐 있고 시간에 쫓기는데다가 돈 쓸 일들을 피해서 다니다 보니 해 본 일은 많은데 거기서 친구는 만들지 못했다. 인맥 관리라는 건 애초에 내게는 주제넘은 꿈이다.

도전 정신이나 젊은이의 패기를 논하기에는 나는 늘 패배주의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더 일하고 더 애써도 내게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언가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다.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나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아르바이트보다 더 힘겨운 직장 생활과 맞바꾼 임금 88만 원이었다.

이런 나의 패배주의를 씻어 줬던 경험은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였다. 비록 막노동에 가까운 식당 일을 하고 농장에서도 기숙 생활을 하긴 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내가 일한 만큼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내가 일을 더 하면 인정도 받고 더 얻는 것이 있었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여행까지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없어도 괜찮은 척 할 필요가 없었고 가진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타지에서의 자유로움도 좋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배울 수 없었던, 내가 무언가를 개척하고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낯선 타지에서 배웠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결코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매일을 견디고 버텨 나가는 일이다. 공부도 절반, 일도 절반 정도 간신히 중간을 맞추어 가면서 견디는 대학생의 삶은 능률이 낮고 성취감도 없다. 그렇게 견디어서 대학 생활을 살아 낸다고 해도 자수성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내가 나약하거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생활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대단히 고된 일을 해냈다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서유정 너무 용감하고 씩씩해서 무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소녀 감성의 소유자. 가끔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사는 게 힘든 스물네 살 대학 졸업반. 현재 마음은 대학원을, 몸은 생계를 지향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중.

- 대학교수는 어쩌다 봉건영주가 됐나

<1> 그 대학원생은 어쩌다 '노예'가 됐을까?
<2> 등록금 갈취하는 교수님…신고하라고?
<3> 대신 몰매맞은 제자에게 "이 바닥 생리 모르나?"
<4> 성추행 교수는 어떻게 탄생했나?
- 대학의 '교육불가능'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대학이 악마와 거래한 이후, 나는 내몰렸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2>"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즉슨…"
☞<3>"때 묻은 토슈즈, 무용학도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4>"합격 하고 펑펑 울었다. 500만 원이 없어서…"
☞<5>"스펙 쌓는 동아리가 붐비는 '진짜 이유' 캐보니…"

☞<6>"대학은 '썩은 정글', 마음 붙일 곳은 없다"
☞<7>"서울대 총장실이 별 거야?"


- '죽은 대학'에서 사는 법

☞(上)"2차 나가냐?" 추근거림은 참아냈지만…

☞(下)"1000만 원짜리 사시 과외…우리는 영원한 '고3'"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등록금 해결? 사학 개혁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반값 등록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되려면…"
"썩은 내 풀풀 사립대학, 반값 등록금은 휴지조각 될 것"
"사학법 개정 반대한 박근혜, 등록금 해결 말할 자격 있나"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카이스트의 히딩크', 서남표는 왜 실패했나?
천재를 범재로 만드는 서남표식 학점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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