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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찍어내는 '동물 공장', 구제역 '부메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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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축 찍어내는 '동물 공장', 구제역 '부메랑'으로

[구제역 126일의 반성①] 가축들의 반격? 공장식 사육의 '저주'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사태가 126일 만에 마무리됐다. 3일 충남 홍성군을 끝으로 전국에 내려졌던 가축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됐다. 무너졌던 축산업 재정비에 나섰고, 키우던 가축을 잃은 축산농가도 힘겨운 새 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넉달여 간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가 마침내 종식을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숙제는 남았다. 100일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가축 347만 마리가 땅 속에 묻히고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가축 질병의 확산을 부채질한 국내 축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상황. 막대한 피해만큼이나 큰 교훈을 남겼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산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해 봤다. '구제역 126일의 반성' 시리즈는 총 4회에 걸쳐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 지난 2월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한 매몰지로 이송되는 돼지들. 이들 모두가 산 채로 땅에 묻혔다. ⓒ김흥구

#1. '산란 기계', 닭 이야기

A4 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서 살다가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한 채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알에서 깬 지 한 달, 컨베이어벨트를 거쳐 '튀김 닭'이 되기까지 닷새가량 남은 셈이다.

깃털은 채 모두 자라나지 않았지만, 몸무게는 이미 1kg에 이른다. 몸집을 키우기 위해 축사 안의 조명은 늘 컴컴하다. 영양제와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어 초고속으로 '만들어'지지만, 급격하게 성장하는 몸집을 심장과 폐가 따라잡지 못해 늘 복수증에 시달린다.

#2 1.2㎡의 '야만', 암퇘지 이야기

1년 중 350일을 길이 2m, 폭 60cm의 철제 스톨 안에 갇혀 산다. 할 수 있는 동작이라곤 앉았다 일어나는 일, 그리고 쉴 틈 없이 새끼를 낳고 또 낳는 일 뿐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는 쇠파이프 창살 사이로 어미의 젖을 빤다.

좁은 공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돼지들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사육자들은 생후 10일 쯤 됐을 때 새끼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뽑아낸다. 물론 마취는 하지 않는다.

평생을 '출산 기계'로 살아온 모돈이 햇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생산 능력이 떨어져 도축장으로 보내질 때다.


축산 관련 서적과 축산업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대한민국 사육 동물들의 현주소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맞아가며 사육되는 이들 '단백질 식품'은,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사태는 그 '신호탄'이었다.

▲ '스톨' 안에서 사육되는 어미 돼지. 1년 중 보름을 제외하고는 앉고 서는 것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이곳에 평생을 갇혀 지낸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사상 '최악'의 사태였다. 구제역 발생 100일 만에 매몰 가축 수는 347만 마리를 넘어섰고, 피해액도 3조 원가량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국 곳곳은 '가축 공동묘지'가 됐고, 매몰된 가축이 복수라도 한 듯 매몰지의 환경 오염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로, 한국사회에선 다소 생경했던 '동물 복지'라는 말도 화두가 됐다. 잔혹한 가축 살처분 현장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축 생매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구제역이 주춤하면서 생매장 등의 살처분도 중단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가축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 관행이 바로 그것이다.

가축도 빵 찍어내듯…닭 한마리 A4 용지 1/3장, 새끼돼지 A4 2장에

이번 구제역 사태의 원인엔 초동 방역 실패와 느슨한 방역망이 있었지만, 가축을 '생명'이 아닌 '공산품' 취급하는 한국의 축산 시스템은 바이러스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조류독감(AI) 확산의 원인으로 △공장식 밀집 사육 △품종 개량으로 인한 유전자 다양성 소실 △항생제 남용 등, 철저하게 '생산성 증대'만을 목적으로 달려온 한국의 축산 환경을 지적한다.


▲ A4 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서 사육되는 닭들. 각종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맞고 자라나는 이들 '산란 기계'는, 생산성이 떨어지면 곧바로 도축장 컨베이어벨트에 오르는 신세가 된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일단 '공장 식'이라고까지 불리는 밀집 사육은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를 낳았다. 환기도 안 되는 비좁은 케이지에 바닥이 보일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일단 한 마리가 감염되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현행 축산법은 '가축별 마리당 적정 사육 면적'을 규정하고 있지만, 기준 자체가 미흡한데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우·육우의 경우 마리당 축사 면적이 송아지는 2.5㎡, 비육우·번식우는 5㎡에 불과하다. 60kg 이상의 돼지 역시 0.9㎡의 공간 밖에 누릴 수 없다. 케이지에 사는 산란닭에게 주어진 면적은 불과 0.042㎡로, A4 용지 1장(0.062㎡)의 3분의 1수준이다. 새끼돼지의 경우 0.2㎡로 A4 용지 두 장 크기에 불과하다.

소비자-생산자의 '암묵적 합의'가 밀집 축산 낳아

그렇다고 축산농가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밀집 사육은 늘어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1990년 19.9kg이던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0년 후인 2000년 32.0kg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육류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욕망과 이윤 창출을 위한 생산자 사이의 '암묵적 합의'는 가축 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육된 소(육우·젖소)는 모두 335만 마리로, 10년 전인 2000년(213만 마리)보다 100만 마리 이상 크게 늘었다. 돼지 역시 지난해 998만 마리가 사육돼, 10년 전(821만 마리)보다 100만 마리 이상 늘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따르면, 현재 국민 14명 당 한 마리의 소, 국민 4명당 한 마리의 돼지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가축 두수는 급격하게 증가했지만, 사육 농가 숫자는 꾸준히 감소했다. 축산업이 점차 대형화, 산업화돼 대규모 '기업농'이 늘어났다는 증거다.

죽어라 알만, 죽어라 정자만, 죽어라 살만…

이밖에도 생산성 증대를 위한 품종 개량은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 손실을 초래해, 가축이 질병에 취약해지는 주 원인이 됐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지난 1월 열린 한 구제역 토론회 자리에서 "국내에 사육되는 닭은 죽어라 알만 낳는 암탉, 죽어라 정자만 생산하는 수탉, 죽어라 살만 찌우는 닭, 이 세 종류만 있다고 보면 된다"며 "유전적 다양성의 소실은 결국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홍하일 대표 역시 "평생을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케이지 속에서 사는 가축들은 질병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항생제를 '성장촉진제'라는 이름으로 맞고 있지만, 문제는 세균도 항생제에 저항하도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구제역 사태는 예고된 공격"이라며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심화되면서 슈퍼박테리아나 신종플루 같은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부메랑이 된 '식품'…"인간이 낳은 동물 질병, 인간을 공격한다"

문제는 구제역 '이후'다. 지난 3일 전국의 가축이동제한이 풀리면서 이번 구제역 사태도 종지부를 찍었지만, 광우병·에이즈·신종플루·조류독감(AI) 등 최근 들어 급격히 발생 빈도가 늘어난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걸리는 전염병)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 1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 중 75% 정도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유래했다"며 "지금은 구제역 사태로 끝날 수 있지만, 생산성만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사육 환경이 계속된다면 광우병·에이즈와 같은 제2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지금은 구제역이지만 사람이 전염되는 역병 나올 수도")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자'…정부, 축산업 허가제 발표

소 15만 마리, 돼지 332만 마리가 구제역으로 땅에 묻혔다. AI로 인한 피해 역시 극심해, 닭·오리 623만 마리가 매몰 처분 됐다. 공교롭게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주요 먹을거리들이 죄다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셈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도 있었다. 밤낮으로 방역에 힘쓰던 공무원 10여 명이 과로와 안전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막대한 피해로 인한 축산농가들의 '재앙'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비판을 피할 순 없지만,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제역 발생 116일째인 지난달 24일, 농림수산식품부 등 4개 부처는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넉달 가까이 이어진 '구제역 재앙' 경험을 토대로 마련한 종합 대책인 셈이다.

▲ 지난 2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한 돼지 매몰지. 방역 요원들이 매몰지의 침출수를 뽑아내고 있다. ⓒ김흥구

핵심은 방역 체계를 확 뜯어고치는 것이다. 먼저 정부는 구제역 등 가축질병이 발생하는 즉시 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 수준의 방역 조처를 하고, 군부대의 조기 투입을 제도화하는 등 초동 대응을 강화할 예정이다. 새로운 악성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해당 농장뿐 아니라 전국의 분뇨·사료차량을 일정 기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발표됐다. 네덜란드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시정지(스탠드 스틸·stand still)'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축산업 허가제를 골자로 하는 '축산 선진화 방안'도 발표됐다. 이번 구제역 사태의 원인이 가축의 대규모 발병을 가능케 한 밀집 축산에 있다는 반성에서다. 때문에 농림수산식품부는 애초 가축 사육 두수 자체를 제한하는 '가축 사육 마릿수 총량제'를 검토했으나, 축산 농가의 반발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대신 2012년부터는 대규모 축산농가들에 한해 축산업 허가제를 도입하고, 중소규모 농가에는 등록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각 지역별로 사육 현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사육 두수를 제한하는 것은 무의미한 측면이 있다"면서 "밀집 축산의 문제는 축산업 허가제와 가축별 사육 단위 면적 지정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축산 농가들의 반발이 예상됐던 사육 두수 총량제는 향후 각 지자체별로 조례 등을 통해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2012년부터 시행될 축산업 허가제 역시 축산농가의 반발로 난항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밀집 사육 해소를 위한 '친환경 축산'은 현재까지 숙제로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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