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에 위치한 한 농촌 마을. 겉모습은 여느 평화로운 농촌 마을과 다를 것이 없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지난 2005년 이후로 건강했던 마을 주민들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돈 듯 한 명 한 명 폐암이나 뇌질환 등의 질병에 걸리기 시작한 것.
공교롭게도 병을 얻은 주민 대부분은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J공장 인근에 거주하거나 농사를 짓고 있다. 1985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은 원래 시멘트 방수제와 방수도료 등을 생산해왔지만, 2004년 공장을 증설하면서 '비내화 몰타르' 등의 건설자재도 함께 제조하고 있다.
주민들은 "공장이 방수도료의 원료로 페놀류와 벤젠, 산화규소 등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원료의 취급을 잇따른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해당 공장이 발암물질인 화공약품을 취급하면서 대기오염을 일으켰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근 주민들에게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프레시안 그래픽 |
3명 사망, 7명 투병…주민들 "공장 증설 뒤부터 멀쩡하던 사람 암 걸려"
이 마을 주민 최모(71) 씨는 "몇 년 전부터 멀쩡하던 사람들이 암에 걸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고 넘겼다"면서 "그런데 한 집 걸러 한 집 사이로 폐암이나 뇌질환에 걸리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시청에 탄원서도 내봤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대리 주민들에 따르면, 공장을 끼고 흐르는 마을 하천 '초지천' 양쪽 가구의 주민들이 줄줄이 병을 얻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3명이 위암과 뇌질환 등으로 사망했고, 7명이 유방암·위암·폐암·뇌질환·심장병·폐질환 등의 질병을 얻었다. 최 씨는 "공장이 증설된 2005년 이후부터 이런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고 말했다.
1년 전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위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주민 엄모(53) 씨 역시 "처음엔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는데, 아랫집 사람이 3년 전 같은 병에 걸려 돌아가신 걸 생각하면 물 마시기도 불안하다"면서 "2005~2006년 공장이 확장된 이후부터 매캐한 냄새가 계속 날아왔다"고 증언했다. 공장이 위치한 대대1리엔 현재까지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아, 주민들은 모두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다.
▲ 이천시 대대월면 대대리에 위치한 한 농촌 마을. 겉모습은 여느 평화로운 농촌 마을과 다를 것이 없지만, 주민들은 연달아 발생한 폐암, 뇌질환 등의 질병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주민들은 몇 차례 시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공장 관련 자료를 요청한 끝에 지난 2월 시청으로부터 '단위 공정별 공정설명' 자료와 '원료사용량 내역서' 등을 받아볼 수 있었다.
주민들은 자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J공장이 시에 제출한 '단위 공정별 공정 설명' 자료에는 방수도료의 원료로 대기환경보전법상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된 페놀류(비스페놀)와 벤젠(에틴벤젠) 등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표기돼 있었다. 벤젠은 정부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며, 비스페놀 역시 내분비계 장애를 유발하는 의심 물질이다.
공장이 시에 제출한 '원료사용량과 제품생산량 및 배출 예상 오염물질량을 예측한 내역서' 를 보면, 비스페놀의 하루 사용량은 4147㎏에 이른다. 이에 대해 J공장 관계자는 "비스페놀은 공장 증설 신청 당시 에폭시를 제조하려고 항목에 포함시켰던 것이지, 실제 원료로 사용하거나 제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주민들이 시로부터 넘겨 받은 '원료사용량과 제품생산량 및 배출 예상 오염물질량을 예측한 내역서'. 대기환경보전법상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된 페놀류(비스페놀)의 하루 사용량이 4147kg에 이르는 것으로 나와 있다. ⓒ프레시안 |
▲ 시가 공장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성분 검사표. 이 공장에서 취급하는 화공약품인 산화규소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라고 나와 있다. ⓒ프레시안 |
시가 공장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성분 검사표 '물질안전보건자료'만 봐도, 이 공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인 규산알루미늄과 산화규소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주민들은 "자연보전권역인 이천시에는 특정대기유해물질를 배출하는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데도, 이천시가 공장 증설 인허가를 내준 것은 분명한 관련법 위반"이라며 지난달 23일 J공장과 이천시를 고발했다.
주민들은 고발장에서 "공장변에 거주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원인 모를 폐암, 위암, 유방암에 걸리거나 뇌질환 등으로 사망했다"고 호소하며 직접 그린 '질병 발생 현황 지도'를 첨부하기도 했다.
▲ 주민들이 직접 그린 '질병 발생 현황' 지도. ⓒ프레시안 |
이천시·공장 측 "주민들 주장 사실 무근…법적 문제 없다"
그러나 공장 측은 발암물질 배출을 전면 부인했고, 이천시도 "(공장 인허가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먼저 J공장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주민들의 주장과 달리, 공장에선 페놀이나 벤젠 등의 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설사 그런 위험 물질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오염 물질이 바깥으로 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공장이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병 원인을 (공장에) 돌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천시 기업지원과 관계자 역시 "2004년 공장 증설 신청 당시 대기배출시설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며 "고용노동부에서 공장 근로자들에 대한 건강 검사도 정기적으로 진행해 왔지만 이상이 발견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시 환경보호과 관계자는 "주민들이 화학적 지식이 없어 오해했기 때문에 소송을 건 것"이라며 "(인허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경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장에서 제출한 자료에 '페놀', '벤젠'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이 물질들이 발병의 원인이 되었다고 오해를 한 모양인데, 이는 주민들이 화학적 지식이 없는 탓"이라며 "페놀이나 벤젠은 방수도료의 원료에 이미 포함돼 있는 성분일 뿐, 공장에서 페놀이나 벤젠 등의 발암물질을 직접 다루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옷의 레이온 섬유에 위해성 원료가 포함돼 있다고 해서, 옷 입은 사람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공장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주민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의 연이은 발병에 대한 시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도 "원인 규명이 제대로 돼야 대책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며 "지금으로선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일 공장과 시 당국은 주민들의 참관 아래 공장 인근의 공기 샘플을 채취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성분 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기 샘플링만 가지고는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대대리 주민들의 질병 발생에 관한 역학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주민들은 소변 검사, 지하수 검사 등 각종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주민과 시 당국 사이의 '진실 공방'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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