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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대학주식회사'의 그늘③] 대학과 기업의 '파우스트 거래'

"극소수의 학생들이 극단적인 돌출 행동으로 반대한다면 재단의 투자 의욕과 도약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지난해 중앙대학교가 밝힌 학생 중징계 사유다. 대학 측이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퇴학'이란 초강수 카드를 연달아 빼든 배경엔, '재단의 투자 의욕 저하'라는 철저한 '기업 논리'가 있었다.

지난해 4월, 이 학교 학생 노영수(29) 씨는 학과 통폐합 등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학내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이를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은 그는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지난 1월 '퇴학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대기업을 등에 업은 '자본 권력'은 '사법 권력'까지 넘어섰다. 패소한 중앙대가 27일 그에게 또다시 '정학'이란 징계 처분을 내린 것이다.

▲ '퇴학'에 이어 학교로부터 재차 '정학' 통보를 받은 중앙대 학생 노영수(29) 씨.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돌출 행동'의 대가는 혹독했다. ⓒ프레시안(허환주)

사건의 발단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였다. 지난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새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부터 학과 통폐합 등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학생과 교수들은 "중앙대가 아니라 '두산대'가 됐다"며 반발했지만, 이러한 반발조차 '구조조정' 됐다. 두산건설이 시공하는 교내 신축건물 공사장에서 농성을 벌인 학생은 가차없이 잘려나갔고, 교수들에겐 '차등 연봉제'라는 칼끝을 들이밀었다.

노 씨와 함께 퇴학당했다가 다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전 총학생회 간부 김주식(27) 씨는 "대학을 졸업하는 일 자체가 이제 힘겨운 투쟁이 되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도 '기업처럼'…중앙대는 어떻게 '두산대'가 되었나

'기업화'의 칼날은 학생 자치 활동에도 들이닥쳤다. 대학본부는 지난해 3월 학생들의 학내 집회·시위를 모두 불법화하는 이른바 '중앙대 집시법'을 발표했다. 사립대의 '학칙'이 집회 및 시위의 자유의 보장하는 '법'보다 위에 있는 셈이다.

총학생회의 가장 큰 행사인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가 학교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지됐고, 이에 반발해 새터를 강행한 단과대 학생회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가 두산그룹을 비판한 풍자 만화를 실었다가 배포 3시간 만에 전량 회수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대학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자본의 힘'으로 대응했다. 이 사건 이후 학기마다 나오던 교지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 자난해 2월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녹지>에 대한 학교의 예산 전액 삭감 방침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열었다. ⓒ프레시안(선명수)

비슷한 일은 10년 전 성균관대에서도 있었다. 삼성이 성균관대 경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뻗은 2001년, 성균관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 재단 소속 총괄지원팀과 법인 사무국이 200여 명의 교수와 학생을 정기적으로 사찰해 왔다"며 재단의 '사찰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 중 '문제교수 현황'엔 해당 교수의 사회단체 활동과 언론 기고 현황, 학내 권력 관계 등이 기재됐다. 상경계열의 한 교수는 "<한겨레>와 <말> 등에 대정부 비난 칼럼을 기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교수' 명단에 올랐고, 당시 안기부법 반대 명단에 서명한 교수 25명도 무더기로 명단에 올랐다. 기업에서나 벌어지는 '노조 사찰'이 '교수 사찰'로 캠퍼스에서 재현된 것이다.

같은 해 9월엔 이 학교 교지 <성균>이 학교에 의해 강제 회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교지에는 삼성그룹의 재산 증여 과정을 풍자한 만화가 실려 있었다.

대기업의 대학 인수 이후 곳곳에서 벌어진 학생 활동에 대한 통제는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재단'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두산의 인수 이후 중앙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취임 직후 <중앙일보> 칼럼에서 "대학이 열린 공간이라고 한들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없는 노릇"이라며 "대학의 의사결정권은 학교 법인에서 비롯되고, 운영 주체는 학교 법인의 이사회"라고 못 박았다. 이사장 스스로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소리다.

학문조차 '구조조정'되는 시대…"이제 대학은 직업교육소"

기업화의 칼 끝은 대학의 '본령'이라던 학문조차 겨냥했다. 두산그룹 인수 후, 중앙대는 '일방적 구조 조정'이라는 교수와 학생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이른바 '학문 단위 재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대가 주요 희생양이 됐다.

반면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강화됐다. 독일어문학·프랑스어문학·러시아어문학과가 통폐합되는 와중에도 글로벌금융학과, 국제물류학과, 융합공학부 등 '실용 학과'의 신설이 이어졌다. 박용성 이사장이 "예술하는 학생들도 대차대조표는 볼 수 있어야 한다"며 강조했던 회계학은 '전교생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이런 배경엔 박 이사장의 '교육 철학'도 한 몫을 했다.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 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제 옛 이야기"라며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고 강한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효율성'이란 목표 아래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은 이미 여러 대학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동국대는 2015년까지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을 통합하는 학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건국대 역시 지난해 문과대학 일부 학과를 폐지·통합했다. 삼성이 재단을 장악한 성균관대는 2006년 아예 '휴대폰학과'를 신설해 본격적인 '삼성 인력 양성'에 나서기도 했다.

'파우스트의 거래' 나선 대학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이 같은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파우스트의 거래'에 비유했다. 대학이 이윤 추구라는 욕망을 쫓다가,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홈볼트)'라는 영혼을 팔아버린 신세가 됐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지난해 계간지 <안과밖>에 기고한 '주시회사 유니버시티'라는 글에서 "이제 대학 운영의 기준이 되는 것은 더 이상 대학의 이념이나 학문적 가치가 아니라, 수익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시장논리와 경영기법"이라며 "한국 대학은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중앙대 박용성 이사장의 진단도 비슷했지만, 평가는 180도 달랐다. 그는 취임 직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두산의 인수에 따른 학내 반발은 없냐는 질문을 받자,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내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디를 가서나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며 지난해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그리고 "대학에 돌아가 싸우고 싶다"던 퇴학생 노영수. 이들은 '어디를 가서나 통하는' 자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대학과 기업의 '파우스트의 거래'는 현재까지 견고하다.

대기업 대학 인수, '득'보다 '실'이 크다

"두산대라고요? 취업이나 잘 되면 좋은거죠."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학생 박은호(가명·27) 씨는 두산의 중앙대 인수 이후 변화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 내심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유는 단 하나, '취업'이다.

"말도 탈도 많지만, 그런다고 이제와서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학교에 재단 지원도 좀 있는 것 같고, 건물도 들어서고…가뜩이나 취업하기 어려운데 이 기회에 학교 경쟁력이 높아지면 취업도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요. 두산도 중대 학생을 더 많이 뽑을 수도 있을거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대학 기업화'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삼성이 성균관대 경영에 개입했을 때도, 학생들 사이에선 '학교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었었다.

실제 외형적인 지표도 상승했다. 1996년 삼성의 인수 당시 458명이었던 전임 교수 숫자는 10년 후인 2006년엔 1118명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교수 1인당 외부 연구비도 3100만 원에서 9140만 원으로 뛰었고, 재단 전입금과 학교 예산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힘 입어서인지 성균관대는 각종 대학평가에서도 순위가 급격히 상승했다.

중앙대를 비롯해 재정 사정이 열악한 대학들이 저마다 대기업 영입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기업 지원을 통해 숨통을 틔우겠다는 의도에서다. 기업의 입장에선 기업 이미지 상승과 홍보의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대학 입장에서도 재정 안정과 재단 전입금이란 이득을 얻는 동시에 산학협력을 통해 취업률의 상승 역시 기대할 수 있다.

▲ 대기업의 이름을 딴 캠퍼스의 건물들. 대학의 '기업화'를 보여주는 징후적인 모습들이다. ⓒ프레시안

그러나 '이윤 창출'이란 기업의 논리가 대학 경영에 적용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도 크다. 당장 돈이 되는 학문에만 지원이 이뤄져,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드러나듯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이 소홀해지고 있다. 성균관대는 지난 2007년 재단 전입금의 규모가 국내 최초로 1000억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지만, 그해 결산 자료를 보면 그 중 60% 이상이 의대 임상교수의 인건비로 들어갔다.

기업 자본에 종속된 대학…기업 위기 맞으면 대학도 '흔들흔들'

기업의 재단 개입이 장기적으로 대학의 자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그 해 성균관대 '수익용 기본 재산' 확보율은 4.7%로 당시 사립대 평균 55%에 크게 못 미쳤다. 수익용 기본 재산이란 사립학교의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 법인 확보해야 하는 재산으로, 이에 대한 확보율이 낮은 상황에서 기업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 학교 재정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성균관대는 삼성의 인수 이후 재정 여건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수익용 기본 재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면서 "기업은 대학 인수 이후 재단 전입금은 늘리더라도 대학이 자립할 수 있는 자체의 예산을 늘려주진 않는다. 단기적인 효과만 누릴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대우가 인수한 아주대는 기업의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대학 역시 흔들린 대표적인 사례다. 1972년 개교한 아주대는 1977년 대우그룹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대우가 부도가 나면서 재정 불안을 겪었다. 1959년 쌍용이 인수한 국민대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기업이 대학 인수를 통해 '반짝 투자'의 효과만 노리다 보니, 수익용 기본 재산 확보율이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이 인수한 대학 중 아주대와 울산대, 성균관대는 지난 10년간(2000~2009년) 수익용 기본 재산이 각각 34.7%포인트, 15.3%포인트, 7.3%포인트 씩 줄어들었다.

학생들에게도 '득'보단 '실'이 클 수 있다. 같은 기간 대기업이 인수한 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울산대(현대) 131.5%, 성균관대(삼성) 71.3%, 국민대(쌍용) 67.8%, 아주대(대우) 66%로 140개 사립대 평균의 인상률(62.7%)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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