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이윤을 내는 기업, 학생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대학은 일단 입학한 학생에 대한 독점적 공급자가 된다. 실제로 대학은 '소비자가'인 등록금 역시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독과점의 원리'에 충실한 것인지,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2011년 현재, 등록금은 국공립대 1년 평균 425만6000원, 사립대가 767만7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 비해 국공립대는 평균 1.1%, 사립대는 2.3% 인상됐다. 2009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교 사립대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프레시안>이 만난 학생들은 '등록금은 왜 이렇게 비쌀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대학이 직업훈련소냐, 진리의 전당이냐'라는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과연 대학이 고액의 등록금에 맞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질문이다. 최근 커피, 치킨을 두고 원가 논란이 벌어진 것처럼 학생들 역시 대학 교육의 원가가 궁금한 셈.
"대체 돈을 어디다 쓰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미경(가명) 씨의 큰 불만은 다름아닌 등록금이다. 이화여대는 연세대 다음으로 가장 높은 등록금을 내는 학교다. 인문사회대를 다니는 이 씨는 이번 학기 등록금으로 379만 원을 냈다.
이 씨는 지난 학기에 12학점을 이수했다. 실습하는 건 전혀 없었고, 모두 강의실 수업이었다. 이 씨는 "그나마 4개의 강의 중 두 개가 시간강사가 하는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 씨가 이용하는 시설은 도서관과 구내식당 밖에 없다. 그나마도 도서관은 사람이 많아 시험기간에는 거의 사용하지도 못한다.
한 학기 400만 원에 육박하는 이 씨의 등록금은 대체 어디로 쓰인 것일까? 이 씨가 한 학기 동안 받은 소위 '서비스'의 원가는 얼마일까. 이 씨는 "학교에서는 학교 유지비, 건물 관리비, 인건비 등으로 등록금이 쓰인다고 해명한다"며 "실제 야간 조명 등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돈이 드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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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만 명확히 설명해준다면 학생들이 등록금에 답답해하는 마음이 조금은 덜해지지 않겠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한 학기 4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내자니 억울한 심정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공 수업 신청하는 게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물론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의 질'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서울 소재 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미연 씨는 "경영학 전공 수업을 신청하는 것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며 "취업을 위해서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이 많다 보니 수강신청을 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지난 학기에 경영학 필수 전공과목을 들으려 했으나 수강신청을 하지 못해 결국 교수님까지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며 수강인원을 늘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몇몇 경영학 전공 수업은 300명이 넘는 학생이 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렇다보니 수업이 제대로 집중도 되지 않을뿐더러 뒷좌석에 앉을 경우, 칠판에 쓴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김 씨는 "학교에서는 요즘 워낙 경영학이 붐이라 시간강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며 "경영학과는 다른 인문사회대보다도 높은 등록금을 내지만 정작 교육 서비스 질은 더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김 씨의 불만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2009년 대학교에서 부족한 법정 교원 수는 2만254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대학에서 법으로 정한 전임강사 수를 채우지 않고 대형 강의를 편성하거나 시간강사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 대학들의 수준은 세계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2010년 'QS(Quacquarelli Symonds, 영국 교육평가 기관) 세계대학평가'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에 미국은 30개 이상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은 서울대(50위)와 카이스트(79위)만이 선정됐을 뿐이다.
"매년 건물은 좋아지더라…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학생들이 매년 인상되는 등록금을 내며 느끼는 변화라면 매년 건물이 늘어나고 있다는 정도다. 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허준기 씨는 이번 학기 등록금으로 356만 원을 냈다. 지난해에 비해 2.8%나 인상된 금액이다. 07학번인 허 씨가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 낸 등록금은 320만 원이었다.
허 씨는 "학교에서는 산학 협력관, 기숙사, 주차장 등을 짓는다며 등록금을 올린다"며 "무엇이 필요한지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몰아붙이기로 진행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등록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건설비가 이만큼 되니 내야한다는 식"이라며 "물론 그런 시설이 많아진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등록금으로 짓고 있긴 한 것인지, 또 꼭 등록금으로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등록금으로 채워지는 적립금, 목적은?"
학생들이 내는 돈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학생들의 등록금이 오르는만큼 함께 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대학 적립금이다. 대학들은 향후 생길 필요를 위해 사용을 보류해두는 돈, 즉 적립금을 천문학적인 수치로 쌓아 두고 있다.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전국 4년제 사립대의 누적 적립금은 7조 원을 넘어섰다. 적립금 1위인 이화여대는 6280억 원, 2위인 홍익대는 4857억 원, 그 뒤를 잇는 연세대는 3907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 두고 있다. 이 수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7조 원의 대학 적립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건축기금. 건축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조2001억 원으로 전체의 46%에 달한다. 반면 장학적립금은 8.6%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구기금 적립금은 6381억 원으로 9.2%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 적립금' 규모는 2조4155여억 원(34.8%)에 이른다. 서울의 주요 사립대 가운데 경희대는 기타 적립금 비중이 67.9%로 적립금의 과반을 훌쩍 넘겼고 그 다음은 중앙대(51.5%), 국민대(49.2%), 이화여대(42.7%) 순이었다.
결국 적립금 중 학생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쓰이는 돈은 17.8%에 불과한 반면, 건축적립금과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의 비율은 80%를 넘는 실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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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 사립대 관계자는 "적립금은 학교 발전을 위해 필요한 돈이기에 함부로 쓸 수 없다"면서 "적립금은 기부금 등을 통해 조성된 자금이기 때문에 사용처가 정해져 있고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대학 "정부가 재정 지원해주면 적립금 학생 위해 사용할 것"
대학 측에서는 정부에 책임을 돌린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은 거의 지원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대학들은 빠른 미래에 해외 대학과 어깨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학교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대학이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 건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에서 지원만 제대로 해준다면 대학들도 적립금을 학생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희성 한국대학연구소 연구원의 생각은 달랐다. 임 연구원은 "대부분의 대학은 적립금에서 상당부분을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며 "펀드에 투자하는 건 괜찮고 학생들을 교육 질 향상을 위해 쓰는 건 안 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적립금은 기부금 등을 통해 조성된 자금이라 용처가 정해져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적립금의 대부분이 등록금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기부금만으로 적립금을 쌓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운영상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데 대학이 너무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에서는 등록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적립금만 쌓아놓고 있다"며 "대학이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교육 서비스를 한다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지난 16일 서강대학교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과 파행으로 진행된 등심위를 규탄하며 삭발식을 단행했다. ⓒ연합뉴스 |
'반쪽짜리' 등록금심의위원회, 그 해법은? 대학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도입 첫해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대학의 일방적인 등록금 책정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취지에도 불명확한 규정으로 각 대학에서는 파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에는 등심위 구성 시 교직원·학생·전문가 중 어느 한쪽 비율이 50%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만 두고 나머지는 개별 대학에 맡기고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이를 악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를 등심위 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는 위원 자리로 두 자리만을 준 뒤, 나머지 자리는 사실상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학교 교직원, 외부 전문가, 총동문회 회원 등으로 채우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등록금 인하 및 등록금 산정 기준 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 내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지난 1월 14일, 졸속적인 등심위 운영을 비판하며 명동에서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대학 측이 제시한 등심위 위원 구성안을 거부하면서 등심위 구성이 결렬됐다. 서강대에서는 지난 16일 김윤영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이 삭발과 동시에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윤영 학생회장은 "등심위를 3차례 열었지만 학교 측 구성원이 과반수인 등심위에서 학생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결국 등심위 자리를 학생 대표가 보이콧하자 학교에서는 2.9%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학생들에게 통지했다"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무엇보다도 등심위에 당사자인 학생위원수가 학교와 동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의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등심위 위원들에게 등록금 심의·산정에 필요한 각종 자료 제출권과 실질적인 의결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등심위가 연말 연초에만 반짝 열리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들이 내년도 예산안을 짤 때부터 결산을 진행할 때까지 전 과정에서 등심위가 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0일 등심위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등심위원 구성 동수 규정 등이 담겨 있다. 권 의원은 "등심위를 통해 학생과 학교 측이 합의를 통해 등록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 학생과 학교의 부담을 함께 덜어주려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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