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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포격에 날아가고 조상묘는 산불에 타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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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포격에 날아가고 조상묘는 산불에 타버리고…"

[르포] 연평도 주민들 '억장 무너지는' 설 쇠기

연평도 사태가 발발한지 두 달이 넘었다. 그 사이 연말연시가 지나갔고, 민족의 명절인 설이 다가왔다. 그런데 1361명의 연평도 주민 중 1075명(1월 30일 기준)이 여전히 연평도를 떠나있다. 국민들은 연평도 사태를 서서히 잊어 가고 있지만 아직 이들이 삶의 터전인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프레시안>은 지난달 28일 870여 명의 주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김포 임대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연평도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심리 상담소엔 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예술치료 등 치유 캠프를 운영해 오다 지난 26일부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심리 검사를 시작하고 있다. 박상희 팀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검사를 하고 있고,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 검사 단계라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이 2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니 심리 검사 자체가 늦은 감이 있다.

상담소에서 검사를 받던 고정녀(55), 박현수(55) 씨도 심각한 '포격 후유증'을 겪고 있다. 어제도 한 시간밖에 잠을 못 잤다는 고 씨는 "그때 생각도 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밤에 잠도 안 온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피곤이 누적되어 잠을 자도 푹 자지 못하고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박 씨도 마찬가지다.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잠을 대신한다. 포격 사태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앞으로의 '불안'이 이들에게는 더 큰 짐일 수도 있다.

한 집에 3~4가구 생활…설은 어떻게 보낼지 걱정

심리 검사가 끝나고 고정녀 씨와 박현수 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직 일반인 공식 입주 전인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의 LH 휴먼시아 임대아파트는 깔끔했다. 그러나 가구도 없이 옷가지와 모포, 구호품 상자 등이 쌓여 있으니 이제 막 지어진 새 아파트도 별수 없이 난민촌이다.

▲ 박현수, 고정녀 씨. 3-4가구가 한꺼번에 들어와 살고 있지만 한 달 간 묵었던 찜질방에 비하면 '궁궐'이다. ⓒ프레시안(이경희)

더군다나 30평형대의 아파트에 3~4가구가 한꺼번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예전 같으면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걸치고 있겠지만 여러 가구가 함께 사니 옷을 꼭 챙겨 입고 있어야 한다. 가구들끼리의 소통도 잘 안 된다. 이곳이 "찜질방에 비하면 궁궐"이라지만 내 집 같지는 않은 게 당연하다.

사정이 이러니 설 쇠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여러 가구가 한꺼번에 살다 보니 식구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평도에 있는 묘들이 산불로 다 타버린 것도 난감한 일이다.

▲ 고정녀 씨. 연평도에서 굴을 따 생계를 유지해 왔다. ⓒ프레시안(이경희)

특히 고 씨의 남편은 맏아들이어서 이제까지 제사를 도맡아 왔다. 그런데 올해는 제사 지낼 장소, 설 쇨 장소도 마땅치 않다. 연평도 집 근처 3채가 모두 불에 타면서 고 씨 집에도 파편이 튀어 창이 다 깨지고 장롱, 이불, 옷가지, TV 등이 탔다고 한다. 박 씨는 남편이 둘째라 설을 쇠러 큰 집에 갈 예정이지만 고 씨는 아직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평도 주민들이 이곳에 거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2월 18일엔 집을 비워줘야 한다. 그러나 연평도에 들어가는 것도 막막하다. 박 씨와 고 씨 집은 아직 수리가 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깨진 창문과 부서진 문이 수리가 안 돼 집은 차갑게 얼어버렸다.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수도도 다 얼어 물도 안 나온다.

먹고 살 일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횟집을 하는 박 씨는 횟감으로 쓸 생선이 다 죽었고, 굴을 따는 고 씨는 실컷 따놓은 1년 치 굴을 다 버려야 했다.

그래도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이들은 "우리의 생활 터전은 바다야 바다"라며 "여기가 감옥이지 뭐"라고 체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바다에 나가 굴을 따고, 회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이 두 달 넘게 방안에만 있으니 감옥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찜질방 생활을 포함해 지난 두 달간 주민들이 한 일이라고 인근에서 장을 본다든지, 연평도에 들어가 집수리가 잘 되고 있는 지 살펴보는 일 밖에 없었다. 일터에 나가지 않은 지난 두 달이 답답한 것은 당연하다.

박 씨는 "할머니들도 조금씩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선 할 일이 없어 가만히만 있다가 연평도 들어가서 갑자기 움직이면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임대아파트는 공식 입주 전이라 교통이 불편해 외부 출입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 박현수 씨. 실내 생활만 벌써 두 달째. 답답해서 얼른 연평도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이경희)

그러나 걱정은 많아도 여전히 넉넉한 '아줌마 인심'은 그대로였다. "딸 같은 기자가 점심도 못 먹고 수고한다"며 라면을 끓여 내놓았다. 라면을 뜨는 둥 마는 둥 질문과 메모를 반복하자 "먹고 해 먹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라며 걱정해 주고, 취재가 끝나고 집을 나설 땐 귤 2개를 꼭 쥐여 주었다. 그리곤 "나중에 연평도 놀러 와. 연평도 오면 우리 꼭 찾고"라고 신신당부했다. 연평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날의 걱정보단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연평도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떠올랐나 보다. 들뜬 목소리, 환한 웃음 속에 그분들 마음엔 벌써 연평도는 봄이다.

"늙은이는 거기서 죽어도 그만이지 뭐. 얼른 가고 싶어"

황소제(80) 할머니도 얼른 연평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할머니에게도 여기가 감옥과 같다. 집 앞 텃밭에 무나 배추 등을 기르는 게 "제일 재밌다"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포격이 있던 그날도 밭에 나가는 길이었다. 날씨가 추워진다는 말에 무를 뽑아놓을 참이었다. 그 순간 눈 앞에서 포탄이 떨어졌다.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아들 둘, 동생과 함께 다음날 바로 연평도를 나왔다. 찜질방 생활이 나이 많은 노인에게는 고역이었다. 환기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실내가 워낙 건조해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담요에 쌓인 먼지를 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연평도 주민 대다수가 감기로 고생했다. 결국 황 할머니도 두 번이나 병원에 실려 갔고 그때 걸린 감기는 아직도 낫지 않았다. 기침을 달고 산다.

▲ 황소제 할머니. 찜질방에서 걸린 감기가 아직도 낫지 않았다. ⓒ프레시안(이경희)

할머니도 이번 설에 성묘를 갈 상황이 아니다. 할어버지 묘는 그날 폭격으로 불에 탔다. 평소 제사가 아닌 미사를 지냈기 때문에 차례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명절을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보내려니 쓸쓸하다. 황 할머니는 옹진군 영흥도 '가막개'에 살다 시집온 후 줄곧 연평도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늙은이는 거기서 죽어도 그만이지 뭐. 얼른 가고 싶어"라며 연평도를 그리워했다. 텃밭에 빨리 나가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김포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유리창이 파손됐다든지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연평도로 들어갔다. 연평면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으로 김포 임대아파트 입주민은 112가구 869명이고, 인천의 자택이나 친인척 집에 머무는 주민도 206명에 이른다. 포격 당시 전체 1361명의 실거주민 가운데 98.5%가 연평도를 떠났지만, 지금은 286명 정도가 섬으로 복귀했다.

연평도 주민들은 그때에 비해 많이 안정을 찾은 상태지만 아직 평화롭던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엔 멀어 보인다. 창문이 깨진 집 등에 대한 주택 창호공사는 현재 80%가 넘는 진행률을 보이고 있지만 완파되거나 반파된 집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파가 심했던 올 겨울 집을 비워뒀던 탓에 수도관이 어는 등 집이 엉망이다. 주민들이 2월 18일, 퇴소 시점을 앞두고 아직도 답답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주민들에게 연평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이다.

기자가 김포를 찾은 날 옹진군의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찾았다. 김재식 위원장과 박성익 홍보팀장은 답답한 심정을 의원들에게 쏟아냈다. 대부분이 옹진군수와의 소통 문제였다. 비대위에서 원하는 것에 대해 옹진군수는 늘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들을 대표하는 비대위의 희망 사항은 무엇일까? 김 위원장에게 들어봤다.

▲ 옹진군의원들이 비대위 사무실을 찾았다. 노란색 옷을 입은 이가 김재식 위원장,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박성익 홍보팀장이다. ⓒ프레시안(이경희)

프레시안 : 현재 요구 사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김재식 위원장 : 전소, 전파된 건물이 33곳이다. 그 중 24곳은 주민 거주지고, 9곳은 가게나 창고 같은 곳이다. 24가구 주택을 짓는 비용으로 52억 원이 책정돼 있고 1년이 걸린다. 그 1년 동안 컨테이너(목조형 임시조립주택) 건물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컨네이너 건물과 더불어 주민 살 곳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컨네이너에서 생활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 건물의 용도는 집을 짓는 동안 틈틈이 가서 살펴볼 때 가끔 하루, 이틀 자는 정도로 활용해야 한다.

▲ 비대위 김재식 위원장. ⓒ프레시안(이경희)
프레시안 : 살 곳은 어디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말하나?

김 위원장 : 우리도 지금 살고 있는 이 곳(김포 임대아파트)에 사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안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24가구가 살 곳으로 LH와 인천시가 보유하고 있는 영세민다세대주택을 1년 동안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영세민다세대주택은 월세가 13만 원이다. 이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거다.

그리고 연평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공공근로성 사업으로) 일일 6만 원 정도 돈을 벌 수 있다.(당장 일을 시작할 수 없으니 해안가 청소 등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연평도를 정리하는데 노임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 24가구가 만약 주택 지원을 받아 밖으로 나오면 이 비용도 벌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생계비 지원을 해주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나머지 주민들은 다 연평도로 들어가나?

김 위원장 : 18일 퇴소 시점을 앞두고 전 주민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주민 40% 정도는 수도 동파, 전기 파손 등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파가 워낙 심했는데 집을 오랫동안 비워놨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도 집이 완전히 복구되는 1달 동안 다세대주택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요구 사항들을 말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가? 이유가 뭔가?

김 위원장 : 군수는 예산이 없다며 무조건 부정적인 답변만 내놓는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309억 예산을 내려준 게 있다. 그걸 활용하면 되는 데 왜 예산이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옹진군의 수장으로서 이런 의견을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주민 입장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면 행안부에 요구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다. 매우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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