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로 우리나라에서 키워지는 가축의 10%가 도살 당했다. 당국의 방역 대책도 문제이지만, 집단 사육 방식의 축산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희식 씨는 살처분 가축이 45만 마리 시절이던 지난해 말 <프레시안>에 이와 같은 지적을 담은 기고(☞ "치사율 1%에도 다 죽어야 하는 세상")을 보내왔다. 그 이후에도 구제역은 여전히 확산되고 있고 10일엔 살처분 가축이 134만 마리를 넘어섰다. 그가 축산 시스템 개혁과 식습관 개선을 촉구하는 기고를 다시 보내왔다. 이 글은 <한겨레> 10일자에도 실렸으며 <한겨레> 지면 관계상 생략된 부분을 포함한 원문이다.<편집자>
만약에 말이다. 그 옛날, 1855년에 프랭클린 피어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땅을 팔라는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란 스퀘미시족의 시애틀 북미원주민 추장이 그랬던 것처럼 구제역으로 살육당하는 소·돼지를 대표해서 1970년대를 살았던 늙은 소 한 마리가 연설을 한다면 오늘의 구제역 사태를 두고 뭐라 한탄할까?
전에 우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살았습니다. 논에서 쟁기를 끌었고 무거운 등짐을 장터로 옮겼습니다. 진실된 노동 끝에 한 통의 여물을 받았고, 짚 몇 단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아 고단한 하루를 넘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귀한 음식으로 오르긴 했지만, 한 번도 식탐의 재료가 되어 사시사철 고깃집에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김봉준 |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달포 사이에 소,돼지가 100만 마리나 죽임을 당해 언 땅에 파묻혔습니다. 일부는 생매장 되기도 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소주에 곁들여 우리를 뜯어 먹던 이들이 포클레인 삽날로 우리를 짓뭉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앙을 왜 죄 없는 우리 소·돼지에게 뒤집어씌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쇠창살 속에 가두어놓고 평생을 사료만 먹이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90% 이상을 외국에서 사온 사료를 먹이면서 눈앞에 펼쳐진 7월의 무성한 풀밭에는 제초제를 뿌려대고 우리는 단 한 입도 풀을 뜯지 못하게 한 게 누구입니까.
평생토록 단 한번도 짝짓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는 강제 인공수정으로 새끼만 빼내 가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구제역이 왜 번지는지 정녕 모르고 하는 짓들입니까. 대량살육과 생매장으로 과연 구제역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나 하는지요? 예방 백신만 확보하면 이런 사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 넣듯이 지금의 배합사료는 쇠고기 만드는 공장에 넣는 공업용 원료입니다. 우리는 원래 되새김 동물입니다. 위가 네 개인 우리는 되새김질을 해야 정상적인 순환작용, 소화작용을 합니다. 대부분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를 갈아 만든 이따위 배합사료는 단백질 덩어리와 다름없습니다.
1:1로 균형을 이뤄야 할 오메가6 지방산이 오메가3보다 무려 66배나 많은 옥수수는 되새김질은커녕 목구멍을 넘기면서 흡수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망가지고 살만 찝니다.
막사 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항생제들은 우리 몸뚱이를 지탱하는 의족이자 의수입니다. 우리들에게 먹이는 항생제 량은 호주의 37배나 되고 미국의 근 3배나 됩니다. 우리는 늘 약물중독 상태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까.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리면 반경 얼마 안에는 전부 몰살당해야 하는 이 비참을 누가 조성했습니까. 자식같이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살처분당했다고 통곡하는 축산농가에도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정녕 자식을 이렇게 키우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양제와 항생제로 자식을 키우는지 말입니다.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경제성이 가장 좋은 출하시기를 자로 재듯이 가늠 해 가며 되팔아서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최대의 관심사 아니었는지, 우리를 자본재로 여기며 자본회전 속도에 관심을 더 두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축사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 컨베이어벨트 쇠갈고리에 걸려 빙글빙글 돌면서 바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그들은 알 겁니다. 때로는 목숨이 다 끊어지지 않은 채로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조각납니다. 이런데도 자식처럼 키운다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거북합니다. 인간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못해 원혼이라도 살아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좁은 이 땅에 소만 340만 마리나 됩니다. 갓난애부터 노인병원 와상환자까지 다 합쳐서 14명당 한 마리입니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됩니다. 세 끼 밥 먹고 살자고 이런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돈을 향한 맹목적인 탐욕과 싸구려 고기로 식욕을 부추기는 이런 짓을 해야 합니까. 이러고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내 세우는 게 가당치나 하단 말인가요?
소 돼지를 파묻는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진정 파묻어야 할 것은 공장식 축산이며 돈벌이 목적의 산업형 축산입니다. 시급히 생매장해야 할 것은 과도한 육식문화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싶지 건강을 망치는 원흉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정 한 식구처럼 살고 싶은 것은 우리들입니다. '축산물'이 아니라 '가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유제류의 원혼을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내고 속죄하기를 호소합니다. 참된 속죄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마지막 한 마리의 소가 구제역으로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 한 마리 돼지가 파묻히기 전에.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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