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선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종편을 허가해서 전체 미디어 판을 흔든 다음에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모든 방송사를 시장에 던지고 합종연횡을 통해 소위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만든다는 것이 이 정부의 노림수다. 문제는 조중동 방송이 아니라 재벌 방송의 출현에 있다."(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미디어행동 주최로 열린 '언론 4대강, 종편을 규탄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종편 선정 자체도 문제지만 그 이후 한국 미디어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종편, 주요 주주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조작 없었나?"
일단 방통위의 종편 선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방통위가 종편 사업자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을 선정하자 미디어 업계 안팎에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정", "조중동 방송에 매일 경제를 더한 면피성 결정"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방통위의 선정 자체에 중요한 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방통위는 종편 사업자 심사 당시 △세부 항목 19개 중 특정 6개 항목에 대해 배점의 60%를 넘어야 하고 △총점 1000점 만점에 최소한 800점을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내세웠다.
조준상 총장은 "이중 떨어진 두 곳은 과락이 아닌 총항목에서 점수가 모자라게 했다"며 "나는 이 과정에 방통위가 '행정 놀음'을 했다고 본다. 중요한 조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방통위는 종편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아 사실상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는 종편 선정의 적법성, 적합성을 다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언론연대는 방통위에 △심사자료 △종편 심사위 운영 예산, 집행 내역 △종편 승인 법인의 중복 주주 참여 현황 △주요 주주 출자 현황 등을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냈다.
조준상 총장은 "심지어 방통위는 종편의 주요 주주 출자 현황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전체의 51% 주주까지 공개하기로 했는데 방통위가 1% 미만은 주요 주주가 아니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매일경제>의 경우 공개한 주주를 다 더하면 28.66%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각 사업자의 컨소시엄에 중복으로 참여한 주주가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 방통위는 심사과정의 정보를 공개하는 백서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언제 나올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광고 금지 해제…술먹고 병나면 약먹으라고?"
게다가 앞으로 방통위가 종편에 부여할 '특혜'도 우려의 대상이다. 현재 방송법상 종편은 '의무송신 사업자'로 규정되어 있는데다 이들 신문은 황금채널 부여, 광고 금지 품목 완화 등의 특혜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중 직접 광고가 금지된 의약품, 의료, 도수가 높은 술 등의 광고를 종편부터 풀어달라는 주장은 국민의 건강권과 직접 연관되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내가 종편 광고 문제까지 나설지 몰랐다"며 "이 정권은 한꺼번에 문제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지금까지 전문 의약품과 의료, 술 광고가 규제된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현재 의약품에 대한 직접 광고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뉴질랜드와 미국 뿐인데 이들 광고가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기고 의료비 상승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지속적으로 나온다"고 전했다.
우석균 실장은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의약품 광고는 감성 호소형 광고이고 이런 광고는 환자가 비싼 약을 먹게끔 할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약을 사먹게 한다"며 "지금도 우리나라의 의료비중 30%가 약재비로 나가는 상황에서 더 나간다면 대체 건강 보험 재정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국 종편부터 의약품 광고를 허용한다는 것은 환자, 국민 주머니를 털고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서 방송사업자에게 넘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이에 더해 술 광고를 허용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술 먹고 병 걸리면 약 먹으라' 아니냐.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또 종편에게 부여된 '기본 특혜'인 의무 송신 조항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조준상 총장은 "방통위는 종편을 일반 PP의 개념으로 상정하면서도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의무 송신'을 강제한다"면서 "사실상 종편이 공영방송도 아닌만큼 이러한 의무를 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제정신이 있는 케이블 네트워크 사업자가 위헌 소송을 내면 100% 이길 것이나 과연 할 지 모르겠다"며 "시민들이 낼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까지 뒤흔드는 M&A 벌어질 것…여론독과점 우려"
한편 문제는 종편 선정 그 이후에 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종편 선정이 단지 '협소한 미디어 광고 시장에 턱없이 많은 사업자가 들어선 정도'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정병국 의원이 '종편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할 때 조중동은 거의 비판하지 않았다"면서 "이것이 보여주는 '진의'는 '종편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종편을 기반으로 해서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방송사의 대거 M&A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이 정부의 노림수는 종편을 허가해서 전체 판을 뒤흔든 다음 공영방송 발전법으로 공영방송을 KBS, EBS 정도로 제한시키고 그외 MBC, SBS 등 모든 방송사를 시장에 내던지겠다는 것"이라며 "합종연횡을 통해 덩치가 커질 수록 인수주체는 뚜렷해진다. 삼성을 포함한 거대 재벌 외에는 운영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결국은 조중동 방송이 아니라 재벌 방송을 궁극적으로 저지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지상파를 포함한 전체 방송을 철저히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학 저널리즘스쿨 교수도 "미국에서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소유 제한 규정을 풀어주면서 미디어업계에 M&A가 급속 진행됐다"며 "그 결과 거대 미디어그룹이 전체의 90%를 장악하는 여론 독과점과 보수화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교수는 "글로벌 미디어그룹은 한국 환경에서 절대 성공할 수도 없지만 성공해서도 안되는 것"이라며 "미국 모델을 따라가는 것은 보수 언론사는 성공시키는 일인지 모르나 공영성, 공공성을 말살하는 일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종편 채널을 통한 일본 자본의 방송 침투를 우려했다. 김승수 교수는 "중앙일보의 컨소시엄에는 일본 아사히TV가 3.38%를 차지하는 4대 주주"라며 "중앙일보 계열을 뺀다면 2~3대 주주로 막대한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투자한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뉴스라는 문화의 심장에 첩자가 투입된 것"이라며 "게다가 방송장비의 85%가 일본산이라 종편, 보도채널 출범과 함께 5000~6000억 원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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