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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는 왜 구제역 백신을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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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돼지에게는 왜 구제역 백신을 주지 않는가?

[기고] 최소한의 살처분, 효과적인 백신 접종, 철저한 방역을

정부의 예방 백신 접종, 효과적으로 시행돼야

조류독감·구제역 등의 완벽한 차단 방역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처분 외에도 백신 접종을 병행, 살처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권고가 있은 지 오래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예방 백신 접종 결정을 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미 거의 전국적으로 질병이 확산된 상태에서의 예방 접종인지라, 이러한 마구잡이식 방역으로 구제역이 효과적으로 통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백신 접종을 통해 생매장·살처분 등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동물 학대를 방지하고, 토양 오염 같은 심대한 이차적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백신의 역가와 전략적인 백신 접종 시기, 방법 등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돼지에게도 구제역 예방 백신을!

▲톱밥이 깔려 있고 자연적인 빛이 들어오는 아늑한 곳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돼지. 구제역이 인근에 발생하면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지는 돼지들도 죽여야 할까? ⓒ동물보호 무크지 [숨]

정부는 이제서야 예방 접종을 최소화해 실시하고, 예방 접종이 된 동물들이 차단 방역망을 형성하는 '링 예방 접종' 방식을 채택해 발생 지역 반경 10㎞의 동물들에게 접종을 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돼지에게는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은 질병 저항력을 가진 동물들로 차단 방역망을 형성하는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벌써 20만 마리의 소·돼지가 살처분됐고, 기가 막히게도 소도 상당수가 생매장됐지만, 돼지의 경우 거의 대부분 불법적이며 잔인한 방식의 생매장이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돼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방역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운용하는데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소뿐만 아니라 돼지에게도 예방 백신을 접종해, 더 이상 생매장이 자행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돼지 생매장은 인도적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인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돼지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매몰 구덩이에 깔아놓은 비닐이 찢어지게 되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포함된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결국 식수나 용수로 쓰는 주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썩게 만들 것이다.

최소한의 살처분, 효과적인 백신 접종, 철저한 방역이 동시에 이뤄져야

구제역 방역이 진행되는 지역은 동물의 살처분뿐만 아니라, 차량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완전한 통제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동물들은 살처분하면서도 정작 전파의 주 요인인 사람이나 차량의 통제는 매우 허술한 실정이다. 축산 농가가 구제역 발생 지역을 다녀오면 의무적으로 신고를 하도록 하는 입법예고안이 비로소 통과되었지만, 축산농가나 관련 종사자가 아니어도 질병을 얼마든지 전파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구제역도 차량이나 사람에 의한 전파가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선진국은 백신 접종을 안 한다고? 선진국의 동물복지부터 먼저 배우자

▲80마리의 돼지를 인도적, 자연친화적으로 키우고 있는 파주 이장집 농장의 돼지들. 이번에 파주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15일부터 500m로 줄인 살처분 범위 안에 들지 않았고, 물론 이 돼지들은 모두가 매우 건강하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은 공장식 대량생산 체제가 동반하는 재앙이다. ⓒ동물보호 무크지 [숨]

구제역 백신 접종은 후진국에서나 하며, 그냥 매몰하는 것에 비해 청정국 지위 회복에 3개월 이상 더 걸린다는 것이 백신 접종 반대의 주요 논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돼지나 소 축산은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동물복지를 구현하고 있는가? 동물의 복지에 대한 고려없이 오직 '고기'로의 수출과 수입만 논하면서는 구제역 같은 '동물복지 후진국형 질병'의 발생을 막을 방법이 없다. 브랜드 커피 한잔 값에도 못 미치는 4000여 원 하는 닭 한 마리의 원가가 비싸다며 '통큰치킨'을 먹어야겠다는 시민들의 의식도 문제이다.

EU의 달걀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동물복지형으로 풀어 키운 닭의 달걀에 최소 5%의 추가 비용을, 11%의 국민들은 25% 이상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건전한 소비 의식이 동물복지 구현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은 훨씬 높게 조사되었다. 지난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기혼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가 동물복지형 축산물 구매 의사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추가 비용을 들여 지불할 의사가 있는 평균 금액은 쇠고기 6만7785원(일반축산물 가격대비 35.6%), 돼지고기 1만6543원, 닭고기 6997원(39.9%), 계란 4699원(135%)로 조사됐다. 2개월 후, 배정환 전남대 교수팀의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러므로 백신 접종 비용과 수출입의 손실을 말하기 전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동물복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축산 농가 손실을 초래해

정부는 백신 접종을 한 동물들의 고기도 소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백신 접종을 하면 마치 그 고기를 못 먹게 되는 것처럼 거부감을 표하고 축산농가에게 불이익이 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모든 식재료들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자체 소비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생산과 소비의 형태이다. 그러므로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잃어 수출을 못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업계의 이익 문제이다.

이를 두고, 축산농가의 파산 등을 운운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소, 돼지, 닭 모두 엄청난 양을 수입하고, 그로 인한 농가 파산을 수출로 좀 막아보겠다는,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정책은 지속적으로 파국을 나을 수밖에 없다.

▲ 지난 11월 30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 일대에서 돼지들을 생매장하는 모습. ⓒ경북매일신문

살처분은 최소한으로 적법하게 해야

대량 밀집 사육으로 인해 현재 살처분조차 적법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너무나 참혹하게도 다수의 동물들이 생매장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생매장 살처분이 합리화 되어서는 안 된다. 생매장 살처분과 측정할 수 없는 환경 비용 문제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로 차량, 사람의 이동에 대한 철저한 차단 방역과 더불어 백신 접종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생매장은 불법적인 동물 학대다.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면, 생매장 사실을 알게 된 많은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반대하고 있다.

사실 구제역 전파의 원인이 된다 하여 21만 축산 농민의 출입국을 일일이 관리·감독하기도 어렵고, 여행객이나 이주민들이 몰래 갖고 들어오는 축산물, 유가공품도 다 단속하기 힘들다. 결국은 공장 식 축산을 폐기하고 건강한 축산 환경을 구축해야 살처분을 막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국민 모두가 이 사실을 인식하고, 동물복지 환경비용이 합산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적정한 양의 육류를 소비하겠다는 선진적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현대 문명은 육류의 과생산, 과소비로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소비되는 육류를 모두 자연친화, 동물복지적으로 생산하려면, 우리나라 땅을 모두 농장으로 써도 모자랄 것이다. 계속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으면, 공장 식 대량축산을 없앨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도적이며 지구를 살리는 식생활을 하려면, 고기를 먹더라도 '가끔씩, 잘 생산된 것으로, 제값 주고, 조금씩' 먹으려는 윤리의식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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