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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 참자'고? 개전 15분만에 포탄만 4만 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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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 참자'고? 개전 15분만에 포탄만 4만 발인데?

[기자의 눈] 호전주의자들 눈에는 김정일만 보이는가

1.

강원도 철원에서 155mm 곡사포 대대 포병으로 군복무 중이던 1999년 6월 15일. 내무반에서 정신교육을 받던 중 준비태세 명령이 떨어졌다. "실제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당시 서해에서 연평해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필수 사격요원이라 총 한 자루 집어 들고 사격지휘소로 내달렸다. 사격시스템을 켜고 계획된 적 표적을 확인한 후 온도, 습도, 풍향, 풍속 등 최신 기상을 장비에 입력하고 사격준비에 돌입했다. 포상에서는 준비선상탄을 꺼내 놓고 사격대기에 들어갔다. 이어 후임병들이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군장을 싸들고 올라왔다. 대대장의 "발사" 명령만 떨어지면 대대의 18문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 순간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휘통제실 TV 화면에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불을 뿜는 함정들이 쉴새없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그땐 정말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대기한 채로 시간이 흘러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작전계획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시간이 흘러 정확하진 않지만 전쟁이 개시되면 포 1문당 1분에 2발 씩 대략 15분여를 사격하고 주둔지를 빠져 나와 예비진지로 옮기게 된다. 1개 대대에는 포가 18문이다. 개전과 동시에 15분 동안 우리 대대는 총 540발(18x2x15)을 쏘는 셈이다. 대대가 속한 사단에는 포병이 4개 대대다. 고로 우리 사단 포병에서만 대략 2160발을 쏜다. 주변에는 비슷한 규모의 사단이 2개 더 있으니까 6480발이다. 주변의 포병여단도 있다. 개전 초기 15분 동안 적어도 1만 발 이상을 북한의 표적을 향해 날리게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의 포병 전력은 남한의 3배다. 그럼 우리가 1만 발을 쏘는 동안 북한에서는 3만 발이 날아온다. 개전 초기에 철원 상공에만 순식간에 4만 발의 포탄이 날아다니는거다. 이 정도면 공중에서 충돌하는 포탄도 생기지 말라는 법 없다. 더구나 개전 초기에는 적 화력 제압을 위해 대포병 사격을 실시한다. 우리가 북한 내 표적 위치를 다 알고 있듯이 북한도 우리 위치를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다 죽겠구나" 였다.

▲ 155mm 곡사포의 사격 훈련 장면. ⓒ연합뉴스

2.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29일자 칼럼도 화제다. "F-15K가 울고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는 "대통령과 합참의장은 역사적인 폭격을 놓쳐버렸다. 흔히들 주먹이 운다고 한다. 지금 대구 공군기지에선 F-15K 45대가 울고 있다"고 한탄했다.(☞ 바로가기)

'3일만 참으면' 주장도 그대로다. 그는 "만의 하나 전면전이 일어나도 국민이 견뎌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며 "물론 북한의 장사정포에 서울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나, 장사정포나 특수부대, 생화학탄 같은 건 피해를 줄 뿐이지 승패를 결정하진 못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 '3일만' 칼럼에서도 "한국엔 막강한 민간인 부대가 있다. 강릉 앞바다 잠수함을 신고하고, 속초 앞바다 잠수정을 그물로 잡고, 천안함 함미를 발견하고, 어뢰 파편을 건져 올린 모든 이가 민간인이다. 국민이 단결하면 생화학이나 특수부대에 대처할 수 있다"고 했던 그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바로가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김진 논설위원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 군은 교전수칙을 고쳐 전폭기 폭격을 가능케 할 모양이다. 통제 구역으로 선포된 연평도에서는 장갑차가 길 위에 주차돼 있는 민간인 트럭을 퉁퉁 치고 그냥 지나간다. TV에서는 연일 미군의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의 가공할 '화력쇼'가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다.

3.

1999년 6월 15일. 전투 준비태세가 종료되고 한 밤 중에 포대장(포병 부대의 중대장)이 전 부대원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훈련 때면 언제나 이른바 '갈굼'이 이뤄지던 시간이다. 그런데 포대장은 부대원들에게 "너희들이 자랑스럽다"며 목 메인 소리를 했다.

훈련 때는 그렇게 뛰어다니라고 해도 걷고, 그렇게 소리 지르며 다그쳐도 어디 숨어서 쉴 (이른바 '짱 박히는') 생각만 하던 부대원들이 '실제상황'에 닥치니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뛰고 임무카드에 적힌 대로 반사적으로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더라는 것이다. 고작 20대 초반의 장병들은 그렇게 의연했다.

지금도 전방에는 수십 만의 장병들이 임박한 전쟁의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을 군대에 보낸 수백만의 부모와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던 날 '행동하는 양심' 최경환 상임이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들 최 일병, 잘 견뎌라. 불안하고 힘들겠지만, 동료 신참들 잘 돌보고 잘 견뎌라.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용기를 가져라. 아버지는 너에게 평화를 주지 못 했지만, 네 자식은 평화를 얻을 것이다"고 글을 올려 반향을 일으켰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3일만 참으면 된다"는 국내 호전주의자들은 '북한 붕괴'에 눈이 멀어 더불어 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들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대 강연에서 '전쟁 불사론'을 외치던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찰리 채플린의 말을 전했다.(☞ 강연 기사 보기)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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