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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제1경' 경천대마저 '4대강 불도저'에 흙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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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제1경' 경천대마저 '4대강 불도저'에 흙무덤

[현장] '333프로젝트 답사단' 낙동강 동행 르포

"물이 아직 많이 차갑지 않아요. 한 번 들어와 보세요."

스님이 먼저 바짓단을 걷고 신발을 벗었다. 잠시 망설이던 사람들도 차례차례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갔다.

순간 50여 명의 사람들은 두 무리로 나누어졌다. 기자처럼 옷이 젖는 게 싫어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그리고 신발을 벗어던지고 강물에 발을 맡기는 사람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엄마, 물에 들어갈거야?"라고 묻자, 망설이던 엄마가 답했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보기만 하겠니."

30일 오후 경북 상주시 낙동강 경천대 인근 모래사장. 밀짚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짊어진 지율 스님은 몇 개월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낙동강으로 모여드는 답사단의 맨 앞에 서서 눈으로, 발로 '강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었다.

▲ 경천대 인근 모래사장에서 만난 지율 스님은 밀짚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짊어진 몇 개월 전 모습 그대로였다. ⓒ프레시안(선명수)

▲ 경천대 인근 백사장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 답사 참가자들. ⓒ프레시안(선명수)

▲ 지율 스님이 먼저 물가로 뛰어들자, 망설이던 사람들도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갔다. ⓒ프레시안(선명수)

그러나 강은 변해 있었다. 4대강 사업은 낙동강 1300리 물길 중에서도 '제 1경'으로 꼽히는 경천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율 스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부터 이곳에도 준설 작업이 시작됐어요. 경천대만은 그대로 둘 줄 알았는데…. 여러분한테 신발을 벗고 이 땅을 밟자고 한 이유는, 이렇게라도 강을 느끼지 않으면 앞으론 영영 밟지 못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백사장 한 구석에는 준설 작업으로 생긴 커다란 물웅덩이가 여기저기에 패여 있었다. 준설 표시를 알리는 붉은 깃발도 간간히 보였다. 발을 간질이는 은빛 모래사장은 덤프트럭이 지나간 바퀴 자국으로 흉터처럼 깊게 패였다.

모래강에 발을 담그며 아이처럼 놀던 답사단도 아무렇게나 패인 물웅덩이들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답사에 참가한 대학생 장혜경(21) 씨는 "말로만 듣던 현장에 직접 와보니 놀랍다"며 "아직 훼손되지 않은 강과 파헤쳐진 강을 동시에 보니 4대강 사업을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준설 공사로 생긴 물웅덩이들. 경천대 모래밭에서 채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지난주부터 이곳의 준설이 시작됐다. ⓒ프레시안(선명수)

▲ 덤프트럭이 지나간 흔적에 은빛 모래사장이 흉터처럼 패였다. ⓒ프레시안(선명수)

▲ 공사 중임을 알리는 표지판. 4대강 사업은 낙동강 '제1경'으로 꼽히는 경천대마저 피해가지 않았다. ⓒ프레시안(선명수)

'직선'으로 변한 낙동강…"결국 개발업자의 이익을 위한 것"

이뿐만이 아니다. 경천대 아래 약 5㎞ 지점에는 4대강 사업으로 높이 11m, 길이 335m의 상주보가 들어선다. 정부는 그 사이 물길에서 약 200~250m 너비에 3∼4m 깊이로 준설을 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파내는 준설량만 1300만㎥에 이른다.

낙동강 준설로 경천대의 주요 경관인 은빛 백사장 역시 대부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대로 공사가 강행된다면, 천혜의 자연 경관인 백사장은 사라지고 인공 제방과 둔치로 이뤄진 유원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경천대 앞 백사장이 80% 이상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경천대의 경관은 이미 변해가고 있었다. 경천대 전망대에 올라선 답사 참가자들은 어느덧 '직선'으로 변한 강을 보고 탄식을 내쉬었다. 강물은 어느덧 흙탕물로 변했고, 군데군데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준설토가 거대한 '흙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지율 스님은 "강은 원래 뱀처럼 구불구불 곡선으로 흘러야 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이미 낙동강 1/3 정도의 굽은 물길이 사라졌다"며 "몇 억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놓은 모래강을 없애고, 엉뚱하게도 '녹색 성장'이라며 자전거 박물관이나 만들고 있는데 이게 과연 지역 주민의 삶에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개발업자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경천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상류의 모습. 4대강 공사가 계속되면 이곳의 자연 경관도 곧 사라질 것이다. ⓒ프레시안(선명수)

버스를 타고 회룡포로 가는 길. 상주의 길목에도 '4대강의 상처'는 남아있었다. 곳곳의 농경지에는 수확을 앞둔 농작물 대신, 낙동강에서 퍼올린 시커먼 준설토가 아무렇게나 쌓여 거대한 공동묘지를 연상케했다.

지율 스님은 "농사짓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땅이 없었는데, 정부가 농지 리모델링을 한다며 모래와 자갈을 부어놨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답사 참가자 역시 "정부의 보상으로 지금 당장은 농민들이 농지 리모델링을 환영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4대강 공사가 끝난) 2년 후에도 예전처럼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빛 은빛 모래강,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날 답사는 운하반대교수모임 이원영 교수(수원대)가 이끄는 '333프로젝트 답사단' 주최로 진행됐다. 3대의 버스에 33명 씩 나누어 타고, 시민 1만 명을 목표로 매주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낙동강의 비경을 둘러보는 답사를 떠난다. 이날 역시 가족 단위 참가자부터 '강남 촛불' 회원들, 단체로 몰려온 대학생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낙동강을 둘러봤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한 참가자는 "아이가 '4대강'이 어떤 강이냐고 묻기에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이 있다고 말해줬더니, 금강은 '금이 있는 강이냐'고 물어 보더라"라며 "그래서 금빛 모래가 있는 강이라고 알려줬다. 금빛 은빛 모래강, 이것으로 충분한데 왜 4대강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 회룡포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지율 스님. 한 답사 참가자는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선명수)

낙동강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에 위치한 '회룡포'였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도는 육지 속의 작은 섬마을로, 산과 강이 어우러진 가운데 고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대학생들이 먼저 신발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모래강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던 이원영 교수가 "여기 재첩이 있다"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던 한 참가자는 "무엇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지금 이 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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