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봄 직한 예쁜 집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김인순(가명·73) 씨는 '꽃을 심는 게 좋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먹지도 못하는 꽃을 심는 거 보단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는 게 백배 좋다"고 웃었다.
김 씨처럼 자신의 집 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작게나마 농사를 짓는 집들은 상당수 있었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자신들이 평생 동안 농사를 지어온 땅과 집을 버리고 쫓겨나야 했던 '대추리' 주민들이 3년여 만에 자신의 집을 갖게 됐다.
2006 년 5월 16일, 965일간의 싸움을 끝으로 문전옥답에서 쫓겨나 인근 송화리로 이주한 대추리 주민 44가구는 임시로 송화리의 한 빌라에서 살다가, 지난 3월께 이곳, 팽성읍 노와리에 안착했다. 일명 '대추리 평화마을'이다. 이들은 끝까지 나가기를 거부하고 정부와 싸웠던 주민들이다.
▲ 새로 지어진 집을 지켜보고 있는 대추리 마을 주민. ⓒ프레시안(최형락) |
"집이 생겼는데 좋지 않겠나. 하지만…"
대추리. 개펄을 간척한 토지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했다는 '대추'에서 유래했다. 땅이 기름지다보니 매년 쌀농사는 풍년일수 밖에 없었다. 덩달아 마을 주민들도 부지런했다.
30일 찾아 간 새로 조성된 '대추리' 마을에는 숯불 돼지고기 냄새가 온 동네를 진동하고 있었다. 마을회관 옆쪽에서는 마을 주민 몇 분이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추리' 주민들은 마을 회관이 건립된 것을 기념하고 그간 대추리를 성원하고 지지해준 시민들과 단체 회원들에게 보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문정현 신부,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성공회대 학생들이 함께 했다.
새롭게 조성된 마을은 외국의 전원주택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예쁘고 깨끗했다. 집집마다 정원이 마련돼 있었고, 태양열 전지판도 설치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들도 새 집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콩을 집 앞에서 말리고 있던 이명숙(가명·79) 씨는 "내 집이 생겼는데 좋지 않을 수 있겠냐"며 "집도 깨끗하고 따뜻해서 살기 좋다"고 말했다. 홍옥선(71) 씨는 "사는 건 다 똑같다"며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과거 자신들이 살던 대추리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추리는 과거 일제의 비행장 공사에 쫓겨난 주민들이 개펄 땅에 정착해 평생을 간척으로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살던 곳이었다. 일본군에 쫓겨나고 미군에 다시 쫓겨난 것이다. 그것도 평택 시내 사람들한테 "평택 발전 가로 막는다"는 손가락질을 당하며.
홍 씨는 "괜히 옛날 생각하면 속병만 앓는다"며 "지금 사는 집에 만족하며 살려 한다"고 쓴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평생을 살아온 곳이었는데 그곳을 버리고 온 기분이 어떨거 같냐"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집 생기면 뭐해. 농사 지을 땅이 없는데"
마을주민 44가구, 대부분 농사가 생업이었던 대추리 주민들은 현재 새로 조성된 마을에서는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다. 44가구 중 2가구만이 농사를 짓는다. 그나마도 집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에 농토가 있다. 농사를 지으려 해도 지을 농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이전할 때 받은 토지 보상금과 공공근로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용순(가명·73) 씨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지금은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있다"며 "새 집이 생겨서 마음은 놓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씨는 공공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평택지원특별법에 의해 2014년까지 재산세 3만 원 이하 가구의 65~75세 노인에게 평택시는 근로를 할 수 있게 알선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 달에 받는 돈은 80여만 원에 불과하다.
이 씨는 "이주 조건으로 평택지역 기업체에 취직을 알선해 주고 기지공사가 개시되면 시공 건설사에 취직을 알선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된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씨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우리를 쫓아냈으니 어떻게든 (생계보장을)해주지 않았겠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그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 마을잔치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
"마을 건립되니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은 오산"
마을 주민들은 다들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예전 집이 그리운 눈치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미군기지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마을 입구에 있던 솔부엉이 서식지인 소나무 숲이 공사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가 환경단체에서 솔부엉이 서식지인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지만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소나무는 다른 장소로 이전했다. 공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에 따라 솔부엉이도 오지 않게 됐고 소나무도 점점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평택 평화센터 활동가 강상원 씨는 "마을을 이전하면서 주민 분들 몇 분이 병으로 사망했다"며 "소나무도 무턱대고 옮기면 죽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그는 "마을이 새롭게 건립되니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강 씨는 "옛날에는 논밭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던 주민 분들이 이젠 모든 것을 슈퍼에서 가서 사야 한다"며 "겉은 말끔할지 몰라도 생활 여건은 과거보다 더욱 낙후됐다"고 말했다.
"여기 모여 사는 사람들, 서로 위로하며 살기를"
이날 저녁께 열린 마을잔치에서 만난 신정원 '대추리' 마을 이장은 "집이 겉으론 멋있지만 이걸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여기 올 때까지 땅을 사고 집을 사면서 빚도 지고 고생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신 이장은 "이 집은 정부 융자와 자식들 돈으로 지었다"며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문정현 신부는 "대추리에서 나온 뒤 몇 개월 동안 심신이 괴로워 너무 힘들었다"며 "우리에게 과연 정부가 필요한가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대추리가 비록 저렇게 됐지만 잊을 수가 없다"며 "하지만 주민 분들은 여기에 온 이상 평안하게 살았으면 한다"고 독려했다. 문 신부는 "돈만이 세상에 전부는 아니다"라며 "여기 모여 사는 이상 서로 위로하며, 그야말로 평화의 마을을 만들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 저녁 7시, 대추리 백서를 기념하는 출간기념회가 새로 지어진 마을에서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들었다. ⓒ프레시안(허환주) |
ⓒ프레시안(최형락) |
▲ 마을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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