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기록된 자신의 신상 정보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수사 기관에 제공되는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수사상 필요'에 의해서라면 영장 없이도 개인의 신상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한 전기통신사업법 제 54조3항이 "수사 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 15일 참여연대와 누리꾼들은 수사상 목적을 위해서라면 영장이 없이도 수사 기간이 인터넷의 개인 신상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한 전기통신사업법 제 54조3항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
15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사 기관이 영장 없이도 개인의 신상 정보를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취득한 수치는 전국의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 수와 맞먹을 정도"라며 "이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영장주의(12조3항),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17조), 표현의 자유(21조), 통신의 비밀과 자유(18조)에 위배되는 조항"이라며 헌법 소원 제기의 이유를 밝혔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54조3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하여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수사 기관은 법원의 영장 없이도 개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아이디(ID) 등을 사이트 운영자로터 제공받을 수 있다.
"수사 기관이 영장도 없이 개인 정보 취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돼"
헌법 소원에는 <문화방송>(MBC), <서울방송>(SBS) 시청자 게시판에 천안함 사건 관련 댓글을 달았다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누리꾼 최모 씨가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최 씨는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쓴 이후에 갑자기 집에 경찰이 찾아오고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부터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와 두 차례 조사를 받았다"며 "경찰이 집 주소와 연락처를 알게 된 경위를 알기 위해 MBC와 SBS에 문의를 했더니,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내 신상 정보를 제공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방송사로부터 영장도 없이 협조 공문 한 장만으로 신상 정보를 제공받았다"며 "경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나의 개인 정보가 어디로 유출됐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 기관의 요청에 의한 이 같은 개인 정보 취득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한결의 박주민 변호사는 "인터넷 외에도 이동 전화, 유선 전화까지 모두 합치면 2008년에만 47만여 건의 개인 정보가 수사 기관에 넘겨졌으며, 2009년에는 56만여 건으로 늘어났다"며 "2008년 한 해 인터넷 가입자 정보가 넘겨진 현황만 총 11만9280건에 달하며, 이 수치는 같은 기간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 수인 10만329건과 맞먹는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해마다 엄청난 수의 개인 정보가 수사 기관에 넘겨지고 있지만,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않은 까닭은 그만큼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가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모든 피해는 믿고 사이트에 가입한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는 "전기통신사업법 54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한 헌법 12조3항에 위배된다"며 "법원이 합법적으로 발부한 영장도 없이 '수사상의 필요'라는 포괄적인 근거에 의해 개인의 신상 정보가 수사 기관에 제공되는 것은 통신 비밀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도 이와 같이 수사상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개인 블로그의 동영상에 달린 신상 정보를 취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결과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 54조3항은 수사 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통신사업법 54조3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지난 2002년에도 제기됐으나, 당시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헌법소원을 각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헌법소원을 냈다.
'회피 연아' 누리꾼 "어떻게 고객의 개인 정보를 경찰에 넘길 수 있나"
아울러 참여연대와 누리꾼들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신상 정보를 수사 기관에 제공한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회원의 요청에도 신상 정보의 제공 여부조차 알려주지 않은 '다음'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회피 연아' 동영상을 포털사이트 카페에 올렸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누리꾼 차모 씨. ⓒ연합뉴스 |
차 씨는 "어떻게 기업이 '고객'이라고 불러왔던 회원의 정보를 당사자 동의도 없이 수사 기관에 넘겨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에 출두해 동영상을 올린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을 때, 마치 '10일 전에 먹은 점심 메뉴는 무엇이었냐'라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리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을 수사하는 경찰이나, 고객의 소중한 정보를 함부로 내어주는 포털사이트나 모두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경신 교수는 "수사 기관의 요구를 기업이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해도, 하다못해 신상 정보의 제공 여부는 회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포털사이트 다음의 경우, 정보 주체인 이용자들이 자신의 신상 정보가 수사 기관 등에 제공된 적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해 이용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며 소송 제기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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