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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연구 성과 내놓은 과학자, 침묵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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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연구 성과 내놓은 과학자, 침묵하는 까닭은?

[화제의 책] 셸던 크림스키의 <부정한 동맹>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캘리포니아 대학과 계약을 맺고 자사가 개발한 신약 임상 시험을 의뢰했다. 해당 대학의 과학자는 엄밀한 절차를 거쳐 신약의 약효를 실험했고, 그 결과 신약은 기존의 다른 값싼 약과 비교했을 때 효과가 동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효가 동일하다면 환자는 굳이 값이 비싼 신약을 사먹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연구 결과가 학술 잡지에 발표되기까지는 무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계약서에 숨어있던 '비밀 유지' 조항이 문제였다. 제약회사는 대학과 계약을 맺을 때, "연구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비밀로 분류되며, 회사와 서면 동의가 없는 한 논문이나 기타 방식으로 발표할 수 없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던 것.

제약회사는 자신에게 불리한 연구 결과가 나올 경우 이 조항을 활용하여 해당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아예 사장시켜버릴 수도 있다. 임상 시험을 수행한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쉽사리 학술 잡지에 발표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제약회사가 이 조항을 근거로 거액의 소송을 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셸던 크림스키의 <부정한 동맹>(김동광 옮김, 궁리 펴냄)은 부제("대학 과학의 상업화는 과학의 공익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가 암시하듯, 기업의 후원으로 수행되는 대학 연구가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얼마나 좌지우지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결과 대학은 공익이 아닌 사익 추구 집단으로 전락했다.

기업의 덫에 걸린 과학자들

▲ <부정한 동맹>(셸던 크림스키 지음, 김동광 옮김, 궁리 펴냄). ⓒ프레시안
전통적으로 대학은 자유로운 지식 탐구와 사회봉사를 사명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미국에서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1980년대 후반에 MIT 생물학과 교수의 31퍼센트가 생명공학 기업과 공식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다. 기업과 금전 관계로 얽혀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교수 숫자도 10년 사이에 3배나 증가했다.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상품을 개발하는 기업에 자문하거나 주식을 소유한다. 또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발명, 발견 특허를 소유한다. 대학의 과학자들이 제약회사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보수를 받으면서, 대필 논문으로 해당 업체의 상품을 선전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이러한 '이해 상충'이다. 대학이 점차 상업적 가치를 내면화함에 따라 학자들 사이에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이 가로막히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구의 방향이나 결과가 편향되기도 하며, 그 결과 대중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음을 저자는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종양학 약품의 비용 효과를 분석한 의학 논문을 살펴본 결과, 제약회사가 후원한 연구는 비영리기관이 지원한 연구에 비해 약품의 비용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8분의 1에 불과했고, 반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1.4배나 높았다.

각종 자문위원회의 윤리 지침이나 과학 학술 잡지의 윤리 기준도 과학자의 이해 상충을 한몫 거든다. 식품의약품안전청(FDA), 환경보호청(EPA) 등의 자문위원에 임명되어도 기업과 맺은 계약 관계, 투자 관계 등은 의무 공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위원이 임명되어 해당 기업의 제품에 우호적인 판단을 내려도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단이 없다.

또 1400여 개 과학 잡지 가운데서 이해 상충 관련 지침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16퍼센트에 불과하고 6만 편의 논문 가운데 0.5퍼센트만 저자의 이해관계 기록을 싣고 있음이 밝혀졌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학술 잡지가 이해 상충 기준을 강화하게 되면 실제로 논문을 투고할 수 있는 저자가 거의 없을 만큼 과학자들의 이해 상충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참담한 현실'은 한국의 '우울한 미래'

그렇다면 대학의 상업화는 어디서부터 연원하는 걸까? 1980년대에 미국은 국제 시장에서 점유하던 우월한 지위가 흔들리자, 대학이 가치 있는 상품을 개발하도록 독려해서 경쟁력을 높이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기업도 대학에 투자를 해서 연구 결과로부터 직접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0년의 차크라바티(Chakrabarty) 판결과 베이돌(Bayh-Dole) 법 제정, 이 두 사건은 대학의 이윤 추구 경향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차크라바티 판결은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여겼던 유전자를 인간이 조작해 특허를 얻을 수 있게 된 시발점이었다. 덕분에 그 후로 생명체 특허 출원이 늘어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업 설립도 붐을 이뤘다.

베이돌 법은 대학이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아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을 놓고 대학 명의로 특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대학은 경쟁적으로 지적재산권 취득에 열을 올렸고, 대학이 보유한 특허는 극적으로 증가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혹여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로 돈을 벌지 모른다는 생각에 세미나에서 질문을 하거나 제안하기를 몹시 꺼린다."

미국 대학의 참담한 현실은 한국 대학의 우울한 미래다. 미국의 베이돌 법과 유사한 내용의 법이 지난 2001년, 2003년 만들어짐으로써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국·공립대학도 대학 명의로 연구 성과의 지적재산권을 보유·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대학이 신청한 특허 출원건수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허청의 통계를 보면, 대학 명의로 출원한 특허 건수는 2000년 574건에서 2008년 8343건으로 무려 13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국내 전체 특허 출원 건수가 10만2112건에서 17만632건으로 0.6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폭이다. 한국판 베이돌 법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이 경쟁적으로 특허 취득에 열을 올리는 데도, 정작 과학자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경험적인 증거는 너무나 부족하다. 학자들 사이에 비밀 유지 경향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이해 상충은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그럴 경우 연구자와 대학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특히 대학이 기업과 계약을 맺는 경우 상세한 계약 내용을 당사자 외에는 외부에서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소송 과정에서 계약 내용이 밝혀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거론된 사례도 법정에서 그 전모가 밝혀지거나 언론의 끈질긴 추적 보도로 드러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익 과학을 향하여

미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한국에서도 유사한 갈등과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국·공·사립대학을 막론하고 등록금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의 대학들이 돈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난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연구 결과로 대학이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챙겨간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과학 연구의 상업화 덕분에 어떤 상품이 생산되었는지, 누가 혜택을 보았는지, 이익은 어떻게 분배되었는지 그 누구도 흔쾌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뇔 뿐이다. 공적 성격이 강한 연구 결과를 사적인 이윤 추구를 위해 전유한다는 사실은 대학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할까? 저자는 대학 과학의 나아갈 방향으로 '공익 과학'을 주장한다. 공익 과학은 사회의 소외된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연구자의 전문성을 사회에 제공하고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1988년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공익과학협회'를 결성하고 공익 과학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공익 과학이 사회 전체와 미래 세대를 위해, 즉 공공선을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 이들은 연구 결과는 특허를 통해 독점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협의를 거쳐야 하며, 그것에 내재된 가치와 맥락은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생산하라는 요구에,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는 연구 성과를 내라는 요구에 굴복하면서, 이를 걱정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학교의 방침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문제제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혹한 징계가 내려지는 현실 앞에서 공익 과학 운동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공익 과학 운동은 성과주의와 국가주의 풍토가 지배적인 한국의 과학계에 깊은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는 동시에, 사회봉사는커녕 제 몸집 불리기와 돈벌이에만 급급한 대학들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비판적 무기가 될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그런 실천이 진행 중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배리 카머너, 허버트 니들먼, 루즈 클라우디오뿐만 아니라 존 벡위드(<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이영희·김동광·김명진 옮김, 그린비 펴냄), 리처드 레빈스(<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박미영·신영전·전혜진 옮김, 한울 펴냄) 등 공익을 위해 사회적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과학자의 삶은 공익 과학의 한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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