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이태경이 주로 비판하는 후자와 관련한 쟁점이다.(☞관련 기사: "삼성 해체가 답인가?",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 이태경은 삼성 해체 주장에 대해 이건희와 그의 가신 그룹만 문제 삼으면 될 것을 왜 삼성 전체의 문제로 부당하게 확대시키느냐고 불만을 표한다. 그는 '구좌파적 사고'라는 말까지 거론하며 김상봉의 제안을 평가절하하는데, 그러나 그의 '세련된' 주장엔 함정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쁜 기업은 해체하는 게 맞다"
나는 처음 김상봉의 삼성 불매 운동 제안 글을 보고 그가 바람잡이 노릇을 자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칼럼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아 삼성 문제를 전 사회적 논쟁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단 '질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김상봉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그가 사용한 '삼성 해체'라는 표현을 논쟁의 멍석을 깔기 위한 일종의 자극적 수사로 이해했다.
그의 글에서도 삼성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왜 그래야 하는지 근거는 있지만, 삼성을 어떻게 해체시키고 그래서 그 다음엔 어쩌자는 건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니 그의 제안에 대해 "하지만 정작 방법에 대한 문제는 적고, 삼성을 해묵은 비위 사실과 모순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성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진알시 회원, '삼성 불매 운동'에 할 말 있다", <오마이뉴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성 해체'를 주장하는 김상봉의 글은 단지 논쟁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법, 무법, 탈법, 초법적 행태들을 선보인 삼성, 어디로 보나 국내에서 가장 나쁜 기업인 삼성은 해체되는 것이 맞다. 이것은 웬만한 기업들에게도 적용되어왔던 '관행'이고, 요새 유행하는대로 말하자면 '법치주의'에도 부합한다. 삼성이 아니라 다른 소규모 기업들이 이 정도였다면 이미 예전에 임직원들 줄줄이 소환되어 콩밥먹고, 기업은 다른 사람에게 조각조각 팔려져 나갔을 것이다.
이미 국가적 통제를 초월하여 국가위에 군림하게 된 삼성을 정상화시켜 국가와 사회의 통제아래 안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해체시키는 것이 맞다. 그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이며, 사법권력을 비롯한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 할지는 해체가 전제된 상황에서 논의되는 것이 옳다. 여기서 사람들이 우려하듯 '해체'를 '공중분해'라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부당하게 독점된 권력과 자본은 해체되고 분산되어야 한다. 3퍼센트도 안 되는 주식만을 소유하고도 회장 일가가 기업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이태경이 그리도 옹호한 '건강한 시장경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내 예상으로는 이태경이 말하는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등장한다면 '공정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에 입각해 삼성을 해체시킬 것 같다. '기업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임직원의 침묵도 범죄다
나아가 이태경은 삼성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황당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국가가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제 역할을 조금도 하고 있지 못한 현 시점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소비자 운동(삼성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뿐"이라고 말한다. 왜 삼성의 문제가 이건희 일가와 가신 그룹의 문제이며, 또 불매 운동이 왜 그 문제만을 위한 해결책이 되어버렸는가? 김상봉도 첫 제안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부각되는 삼성의 문제는 이건희와 그 가신 그룹의 비자금과 사법 권력과의 유착, 부당한 지배구조의 문제로 드러나겠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이런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던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에 있다. 이건희 회장의 황제식 경영이 'CEO 리더십'으로 칭송받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온 나라에 '노조포비아(노동조합 공포증)'를 유포시켰다.
이는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게끔 만들었다. 지금까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24명에게 백혈병이 발병하고, 13명이 사망해도 업무상 재해가 아닌 개인 질병이라고 매도해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 삼성이었다. 이 백혈병 노동자의 문제를 고발하고 해결을 위해 일하던 한 노무사는 엉뚱하게도 경찰에 끌려갔다.
나의 누나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전기 공장에 취직해 일했는데, 제품 검사 라인에서 주야를 번갈아 가며 일하다가 눈에 이상이 생겨 퇴사했다. 하지만 누나는 돈 잘 주는 회사를 왜 그만뒀냐는 아버지의 질책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노동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 버린 문제들이 이건희 일가와 가신 그룹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정도의 일인가?
또한 그는 삼성 불매 운동이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운동이 미국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말처럼 황당하게 들린다.
물론 우리는 삼성 임직원 전체를 매도해서도 안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의 임직원이 삼성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일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의무'라는 사실이다.
▲ 칼 아돌프 아이히만(사진 가운데).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그가 재판 받는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법정에 선 그의 모습과 태도는 '악마'가 아니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아끼며 신앙심이 돈독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직장에서 부지런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 전범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건희 일가를 위해 비리를 저지른 삼성 구조본 간부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프레시안(자료) |
처음부터 나쁜놈은 없다. 다만 그가 사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순간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뿐이다.
아마도 변호사 김용철은 삼성 임직원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간 이하의 존재'이기를 거부한 사람, 인간의 의무를 다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또한 2006년에 삼성 사내 게시판에 삼성 직원들을 "끓는 물 속에서 잠자는 개구리"라고 비유하며 삼성식 경영을 비판하며 사직한 모 신입사원의 경우도 김용철 변호사에 비해 사회적 파장은 작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실천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래의 시를 이태경 처장과 삼성의 임직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김남주, '어떤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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