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식(26) 씨는 자신의 지난했던 사회생활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임시직, 아르바이트, 인턴과 같은 단시간 노동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그조차 구하지 못해 실업자란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13일 창립총회를 열고 첫 발을 디딘 청년유니온(위원장 김영경)은 이런 청년들의 고달픈 현실을 그들 스스로 개선하겠다고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청년유니온은 "청년 세대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고 의견을 대변하는 청년 공동체이자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노동조합"이다.
지난해 8월부터 온라인 까페를 통해 처음 활동을 시작한 청년유니온은 164명의 발기인과 60명의 조합원, 500여 명의 온라인 회원들과 함께 이날 강령과 규약을 정하고 임원을 선출하는 창립 총회를 가졌다. 준비위 대표였고 이날 초대 위원장이 된 김영경(31) 씨는 창립선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역사와 그 산통에 비하면 청년 유니온은 적은 산통을 겪고 나온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현실을 볼 때 너무 늦둥이가 아닌가 싶다. 오늘 보니 비록 늦둥이지만 우량아가 나왔다. 부족한 것들은 하나씩 채워가겠다."
"적은 산통 겪었지만 청년유니온은 늦둥이, 그러나 우량아 되겠다"
청년유니온은 만 15세부터 39세까지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기업별노조도, 산별노조도 아닌 일반노조의 형태를 띤 것으로, 지역도 직종도 관계 없이 가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실업자도 개별적으로 조합원이 될 수 있다. 단, 기업별노조가 이미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가입할 수 없다.
온라인회원 600여 명 가운데 아르바이트생이 28.8%로 가장 비중이 크다. '실업자'인 취업준비생은 18.6%, 학생도 25.4%나 된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청년유니온의 창립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대한민국 청년들의 첫 번째 조직적 저항이자 청년 스스로의 연대와 단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의 단결을 통해 청년 노동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나아가 사회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청년유니온은 올해 주된 사업으로 크게 두 가지를 내놓았다.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다. 청년유니온의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최저임금은 200만 명의 생계형 알바생과 50만에 달하는 취업준비생의 생활수준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라며 "그간 양대 노총 중심으로 이뤄졌던 최저임금 투쟁에 적극 개입해 청년 노동자의 전체적인 임금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청년노동실태조사다. 많은 아르바이트 직종 가운데 올해는 우선 배달업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실태조사는 당연히 사회적 이슈화가 목적이다.
이와 별도로 청년유니온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취업준비생을 위해 실업부조 도입과 벨기에와 같은 청년고용할당제 도입을 위해 각종 캠페인 및 청원입법운동 등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 청년유니온(위원장 김영경)은 청년들의 고달픈 현실을 그들 스스로 개선하겠다고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다.ⓒ매일노동뉴스 |
"돈 없어 연애도 못해…연애지원금은 어떨까?" 웃음 넘친 창립식
13일 오후 서울 명동의 청어람아카데미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준비한 사람들도 놀랄 만큼 열띤 토론의 장이 되었다. 강령과 규약 뿐 아니라, 청년유니온에게 바라는 자신들의 고민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그 시작은 어렵기만 한, 오늘날 청년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한 참석자(26)는 친구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중학교를 자퇴한 친구는 '청소년보호소'까지 다녀온 뒤로는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의 생계수단은 게임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아이템을 키워 파는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이 참석자는 이런 사연을 전하며 "전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청년유니온의 활동에 넣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청년층답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총회처럼 조합원들이 다같이 모이는 날은 함께 헌혈을 하는 등 공익사업을 하는 건 어떠냐"고 했고, 또 한 사람은 "사무실을 까페처럼 만들어 청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도 하고 수익사업도 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나중에 조합원이 늘어 재정이 탄탄해지면 연애 지원금을 주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돈이 없어 연애를 못한다. 대학 다니는 동안 학자금 대출을 6번 받았다. 지금 월 55만 원씩 상환 중이다. 아무리 '페이'가 좋은 일을 해도 월 120만 원이 최대다. 그 돈에서 대출금 갚고 휴대폰 비용 내고 부모님께 생활비 드리고 나면 정말 교통비밖에 남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정말로 나를 좋다는 남자가 있었는데 '핸드폰 요금이 3만 원 이상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또 다른 남성 조합원은 "청년 유니온이 내 미래를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이 조합원은 "연구원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인데 청년유니온에서 연구 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다"고 덧붙였다.
청년유니온 첫 위원장, 김영경 씨 "이 60명이 한국 사회, 강타할 것"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오랜 노동운동가들도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던 청년 백수들을 위한 노동조합이라는 획기적인 도전을 시작하고, 초대 위원장에 당선된 김영경(31) 위원장을 만났다. 신문기자를 꿈꾸던 그는 지금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청년들의 노동조합 창립을 고민하며 지난해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그는 "비록 지금은 60명으로 시작하지만, 이 60명이 향후 한국 사회를 강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경 : 일하고자 하지만 알바 외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일할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 8월부터 준비위 형태로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유니온은 당사자 운동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세대별 노동조합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목표는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이다. 실업이라는 상황에서 단시간 노동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만큼, 불안정한 저임금의 아르바이트 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것도 목표다. 프레시안 : 알바생들은 좀 다르지만, 청년 실업자의 경우 아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인데 어떻게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을 했나? 김영경 : 원래 청년 실업 문제에 관심이 많던 차에, 우연히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지난 2008년에 실직된 파견 노동자들이 모여 6일간 시위를 했던 '히비야 파견촌 투쟁'을 주도한 단체다. 참가자만 2000명이 넘었고 결국 후생노동성 장관이 나와 사과했다. 그런 모델을 우리도 가져올 수 있다 싶었다. 할 말 많은 우리도 우리가 직접 나서자는 취지인 셈이다. 프레시안 : 현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 본 편인가? 김영경 :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당연히 대학 때는 신문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나빠져서 대학을 졸업할 때는 이미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언론고시 공부는 일단 접고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파트타임 강사와 전임 강사를 오가며 계속 학원 강사 일을 했다. 경험해 보니, 제일 먼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무슨 일을 하는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올해는 우선 최저임금 인상과 배달, 편의점 등 아르바이트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 김영경 : 그렇다. 그러나 단순힌 청년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잘못된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우리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내부적으로는 올해 안에 온라인 회원 2000명, 조합원 200명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창립을 준비한 사람으로서는 오늘이 참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60명으로 시작하지만, 이 60명이 앞으로 한국 사회를 강타하는 무서운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창립식을 보며 '쟤들 생각보다 어설픈데' 싶었겠지만 하나씩 채워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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