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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27 '시선'] 군나르 뮈르달의 통찰력과 복지국가의 역동성

스웨덴에서 들은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미국에 유학 가서 졸업하면 미국에서 취직하려고 하죠." 미국에는 직장이 많고 연봉이 높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한국과는 반대로 미국을 떠나는 '원정출산'이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은 스웨덴이 더 좋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정말 형편없고 학생들의 중퇴율이 높다. 대학 등록금은 세계 최고이다.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자리가 없으면 실업수당으로 살아가기가 팍팍하다. 이에 비해 스웨덴에서는 1살 때부터 보육비와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비가 무료이다. 병원도 공짜이고 장애인과 실업자를 위한 수당도 관대하다.

왜 스웨덴은 이런 복지제도를 만들었을까? 좌파 사회민주당이 오랫동안 집권해서 그런가? 모르는 소리다.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1938년 스웨덴 정부, 노동조합, 기업 대표가 잘쯔요바덴에 모여 자본가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노동자를 위한 사회복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스웨덴의 파업은 사라지고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이룩했다. 결국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대공황으로 망해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살려놓았다.

저출산을 예견한 뮈르달 부부의 통찰력

▲ 군나르 뮈르달. 1947~57년 국제연합 유럽 경제위원회(ECE)의 사무총장을 지냈고,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사실 생산적, 투자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1934년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부인 알바 뮈르달은 유명한 저서 <인구문제의 위기>에서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 고령화가 결국 경제의 쇠퇴를 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가 감소한다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우수한 노동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적자본을 위한 투자'를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정책을 강조했다. 그리고 육아와 가정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스웨덴의 노동조합(LO)과 사회민주당(SAP)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밀접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실업자들에게 단순히 실업급여만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을 추진했다.

▲ 알바 뮈르달. 스웨덴 정부가 핵 포기 의지를 밝히도록 기여한 공로로 198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스웨덴 모델을 설명할 때면, 남편인 군나르 뮈르달과 함께 꼭 등장하는 인물이다.
20세기 초에 앞으로 스웨덴의 인구가 감퇴할 것이라고 예측한 뮈르달의 통찰력이 놀랍다. 실제로 지금도 스웨덴은 인구 약 900만의 작은 나라이다. 서울보다도 적다. 스웨덴처럼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 덕분이다. 2009년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35,934달러이다. 이는 세계 17위로 영국, 독일, 프랑스보다 높다. 기대수명, 교육 등을 고려한 인간개발지수(HDI)는 세계 6위이다. 복지국가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주관적 행복감도 높인다. 영미권 국가보다 북유럽 국가에서 더 행복 수준이 높은 것은 질병, 장애, 실업 등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막아주는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투자를 중시하는 복지국가

성공한 복지국가로 평가를 받았던 스웨덴 모델은 노사합의를 강조했지만 많은 사회경제적 제도는 대부분 국가가 주도하여 이루어졌다. 자유경쟁을 강조하는 영국과 미국 모델과 노사합의를 강조하는 일본과 독일 모델과 다른 점이 많다. 전후 스웨덴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와 다른 '제3의 길'로 많은 찬양을 받았다. 특히 노사타협으로 장기적인 산업안정을 이룩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 경제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경제 불황을 거치면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스웨덴은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1970년대에는 세계 4위였으나, 1995년에는 16위까지 떨어졌다. 결국 1990년대 집권한 우파 정부는 시장 자유화 정책을 확대했다. 정부 재정을 축소하고, 연금 제도를 개혁하고, 복지를 지불 가능한 수준으로 감소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높은 조세를 토대로 하는 보편주의적 사회복지체제는 스웨덴 모델의 핵심적 요소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바뀌어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높은 대학 진학률, 잘 훈련된 노동력, 다수의 하이테크 기업, 높은 고용율과 여성경제활동 참가율 등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 경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와 인적자본 투자로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에릭슨, SKF, 텔리아, 볼보 등 스웨덴 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으로 많은 수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주요 시장인 영국과 독일 경제가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국내총생산이 5% 정도 감소했지만(2009년 경제성장률은 2.7%, 2009년에는 -0.4%를 기록했다), 아직도 주요 기업의 혁신능력과 노동자의 숙련수준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투자이다

유럽의 다른 복지국가들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생산적 관점'을 가지고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노동자를 위한 건강보험 등 복지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는 노동조합을 탄압한 철저한 보수적 정치인이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국민보험을 도입한 로이드 조지 총리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정치인이었다. 이들이 도입한 새로운 복지정책은 노동시장의 효과적인 운영을 통해 다른 국가들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우수한 산업 노동력과 군사력을 충원하려는 목표를 추구했다. 지금 새롭게 개편하는 현대 복지국가도 다시 경제적 목표를 위해 복지국가가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빈곤층을 강제로 규제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구빈법'과 달리 노동시장의 노동이동성과 고용가능성을 강조하는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스웨덴 노인들 ⓒ프레시안

네덜란드 사회학자 안톤 헤머릭은 <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불평등의 저하, 높은 수준의 고용, 적절한 공공지출을 동시에 유지하는 성공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직접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전체 노동력의 30%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세계경제가 침체되면서 수출주도경제인 스웨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4년 실업율은 4%이었으나, 경제위기 이후 2009년 6.3%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실업율은 8.8%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학계에서는 인적자본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고용 증대와 소비 촉진을 통해 내수 부양 효과가 있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한다고 본다. 실제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처음 시작한 스웨덴과 노르웨이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한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실업율도 점차 하락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와 새로운 정치담론

점점 국제화되는 시장에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복지국가의 새로운 역할로 부각되고 있다. 복지가 필요한 시민에게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적 복지국가가 달라지고 있다. 시민의 자활을 격려하고 책임을 강화하며 유급노동으로 이동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제 사회정책은 단순한 복지급여의 전달에서 사회투자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복지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마디로,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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