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로 보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남녀 주인공에 대해 적당한 평을 하고, 안주거리로 스토리, 배경음악, 촬영 등에 대해서 씹는 것이 불편한 영화. 2003년 촬영한 후 6년의 공을 들여 개봉한 <경계도시 2>가 그렇다(3월 18일 극장개봉 예정). 영화는 2003년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후 2004년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로부터 수 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경계도시 2>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100여 분 동안 이어지는 화면은 7년 전 송두율 교수가 방문했던 '경계도시'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기억하게 한다. 국정원과 사법부, 극우 보수단체 외에 송 교수를 밀착 취재했던 주요 언론사 기자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면서 역동적인 상황이 재현된다. 영화는 송두율 교수가 구속되기까지 가속화되는 '레드콤플렉스의 광풍'을 근거리에서 기록함으로써 당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것이 <경계도시 2>가 다큐멘터리로서 수행하는 하나의 역할이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21세기의 한국사회가 이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 뒤풀이의 주제가 한국의 정치현실, 학자 혹은 정치인으로서의 송 교수에 대한 논쟁으로 모아지기도 한다.
▲ <경계도시 2>. 송두율 교수를 향해 취재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
<경계도시 2>가 '작품'으로서 보여주는 빼어난 역할은 경계도시에서 사라지는 '개인'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홍형숙 감독이 이념적 광풍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6년의 세월을 거쳐 재구성한 영화는 두 집단의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 평소 말과 글로 한국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기자들의 뒷모습은 적나라하다. 대박 기사를 위해 자동차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은 오버는 몸 개그에 가깝다. 인터뷰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는 안쓰럽다. 이들이 국민 정서를 운운하며 송 교수에게 전향을 요구하는 말과 행동은 서서히 분노를 일으킨다. 이에 버금가는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행위는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당시 거듭되는 송 교수의 대국민사과와 사실상의 전향발언이 송 교수를 겹겹으로 둘러쌌던 이들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동시에 이것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이 몹시 불편하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송 교수와 부인의 거듭되는 고민은 복잡하고, 저항의 목소리는 작다. 두 사람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이 작은 목소리를 담아낸 홍 감독의 시선이 빛난다. 사실상의 전향선언을 하기 전날 밤, 송 교수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친구들'의 설전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항복하면서 경계도시도 사라진다. 반공(反共)도시만이 남았다.
한 가지 아쉬움은 <경계도시2>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이다. 송 교수의 구속으로 치닫는 과정과 균형을 이루듯 편집된 이후의 국보법 철폐투쟁, 재판, 동원된 방청객의 인터뷰 등은 어색하다. 영화로서의 <경계도시 2>가 갖는 긴장감을 방해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개인들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배려와 염려는 <경계도시 2>가 그동안 짊어졌던 무언의 압력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1980년 광주학살로부터 무려 20여 년이 지난 후 제작된 <화려한 휴가>가 '역사적 소명'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경계도시 2>는 한참 선방하였다. 묵묵히 6년을 보낸 감독의 힘이다.
다른 무엇보다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덧붙여 영화를 계기로 경계도시에서 사라진 '개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개인'의 목소리가 소통의 광장을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2>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추민주 명랑씨어터 '수박' 대표 <1> 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 서복경 서강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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